잠들기 전에 읽는 쇼펜하우어
예저우 지음, 이영주 옮김 / 오렌지연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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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혀 관심 없던 이름이었다. 독서를 사랑하지만 철학은 전반적인 것을 훑는 형태를 좋아한다. 어쩌면 윤리나 사상을 수능을 위해 공부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는데 딱히 좋아하거나 깊이 사고 하는 철학자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저 그때마다 와 닿는 것을 오래 간직하는 스타일이다. 굳이 찾자면 다산 정약용 정도. 


 그런데 최근 들어 미디어를 통해 마흔이 되면 꼭 읽어봐야 한다는 쇼펜하우어가 등장하면서 우루루 쏟아져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던 때에 베스트셀러는 당장에 손을 대지 않는 청개구리 심리가 발동했고, 무관심해졌다.


 그러다가 이 책을 우연히 인별에서 보게 되었다. 잠들기 전에 읽는다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는지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는 산순한 추측으로 관심이 생겼다.


 작가가 칭화대 베이징대 강사였기 때문인지 비유나 예시가 중국의 문인들이 많다. 그래서 독일의 철학자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동양 철학을 접하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어쩌면 동양이든 서양이든 철학은 결국 인간의 삶을 연구하고 사고하고 체득하는 것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에 표현이나 상황이 조금 다를뿐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상할 일은 아니다.


 쇼펜하우어를 비관주의라고 말한다는데, 읽으면서 느낀 것은 비관주의라기 보다 현실주의라고 말하고 싶다. 지독한 이상을 이야기하거나 공감 못할 괴짜스럽고 어려운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시대와 상황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서 희망을 찾고 현실적인 방안을 찾으려 하기에 그랬다. 이 책에서 쇼펜하우어를 조금더 현실주의로 보여지게 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였는지 몰라도, 적어도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느낀 쇼펜하우어는 MBTI로 치면 T성향을 가진 I 같았다. 왜 T가 아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면이 있지만, 한편 관심있는 것이나 관계의 정도가 밀접하면 감성적이고 따뜻하듯이 쇼펜하우어도 애정이 가득한 인간이라는 대상에 대해 지극이 논리적이고 사실적인 말로 훈계같은 위로를 건내고 있다고 느꼈다. 마치 세월을 그대로 견디고 버티면서 인생을 고스란히 겪는 40대 50대의 현실 남자가장이 하는 이야기같다고나 할까.


 쇼펜하우어를 40세에 읽으라는 이유가 이 때문인듯하다.

20대, 30대의 치열한 희망고문과 도전의식으로는 받아들이거나 위로받기에는 조금 거칠고 덜 다듬어진 것 같기에, 40이라는 숫자의 마법같은 의미부여로 비관주의적인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공감과 위로를 불러일으킨다. 결국 다 '때' 라는 게 있다. 라는 말처럼...


 반면 하나님을 믿는 나로서는 의지를 의존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현실이 비관적이었기에 비관주의 철학이 인정받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지금이 비관적인 것 투성이인것이 현실이니까.  


  낙천과 낙관이라는 말이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는 쇼펜하우어의 비관적인 태도가 되려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그의 말대로라면, 고통과 고난 그 자체가 행복인 것 아닌가. 삶을 고통이라 말했지만 그 자체가 행복이라 여기면 고통도 행복이다. 행복을 얼마나 누렸나보다 액운을 얼마나 피해갔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도 결국은 같은 말이다. 고통 그 자체가 행복이 되면 액운의 횟수가 행복의 실체가 되니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기독교적인 가치와도 크게 이질적이기만 한것은 아니었다.


나를 시작으로, 인생의 행복, 세상에서의 행복, 그리고 수양,고독, 시간을 활용하는법, 그럼에도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살수 있는 삶에 대해서 글이 이어지는 이 책에서 비관적이면서도 적극적이어야 하고 비관적이지만 낙관을 가져야 함을 계속 강조한다. 


  이 책을 통해 만난 쇼펜하우어는 현실점검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현실적으로, 지금의 나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시작이다. 나의 주변환경이 어떠한지를 현실적으로 봐야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나의 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아야하고, 그에 따른 목표가 생겼다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위한 계획이 나와서 행동양식이 도출되듯이. 막연함을 낙관이나 낙천, 희망으로 포장하지 말라고 한다. 


 구질구질, 염세, 투덜이가 아니라, 대책있는 현실감각을 기르라고 말한다. 비관 속에서 비관을 이용해서 낙관으로 실체화시켜야 한다고 말이다.

  간략한 챕터들의 구성이라 읽는것이 어렵거나 고뇌스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다른 작가들의 쇼펜하우어도 궁금해진다. 그들이 이해하고 깨달은 쇼펜하우어는 어떨까?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나의 장바구니가 쇼펜하우어로 채워지고 있다. 나에게 센언니나 센오빠가 필요하다면 애정어린 독설을 해주는 쇼펜하우러를 소장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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