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 작가님의 <고통에 관하여>를 읽고, 작가님만의 독특한 세계관 설정과 이야기의 중심 소재를 정하시는 능력에 반했다. 나머지 소설들이 스릴러, 호러 장르라 못 읽고 있다가, 작가님의 <아무튼, 데모>를 읽고... 다른 글들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소설집을 골랐다. 그 책이 바로 <너의 유토피아>.
<아무튼, 데모>를 읽고 왜 작가님의 다른 글들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느냐. 작가님께서 연대하는 것의 힘을 아시는 분이셨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편에서, 약자의 편에서 부당한 사회에 그것은 틀렸다고 소리내어 말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분이셨기 때문이다. 힘있는 사람들이 숨기기 급급한 참사와 죽음에 대해 애도할 줄 아시고, 그래야 한다고 온 몸으로 외치시는 분이셨기 때문이다. 그 점에 반했고, <너의 유토피아>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도 그 외침을 담고 있어서 1시간 만에 읽어버렸다.
<영생불사연구소>에서는 노동의 일반성에 대해 쓰시고자 하신 것 같다. 우리는 영생불사를 엄청난 능력이자 꿈의 산물이라고 여기지만, 정작 죽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들조차 당장 다음날의 먹고 살 길을 고민하고 평생 밥 벌어먹을 고민을 하며 노동해야한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은 이들과 같다는 것을. 그런 사람들조차 일반적인 회사원, 노동자와 같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눈치보고 비위 맞추며 살아가야하는 그런 노동의 일반성을... 이야기하시는 것이 현실적인 한편 '영생불사'라는 소재를 이렇게 일상적인 이야기로 담아냈다는 것에 가장 재밌던 이야기였다.
<너의 유토피아>에서는 애도의 목소리를 느꼈다. 비생물 지성체인 기계 또한 인간을, 그리고 또 다른 기계를 애도하고 계속되는 질문에 답해주고 그를 위해 본인을 희생해서라도 난방을 틀고... 하는 모습을 보았다. 성치 않은 상태가 되었음에도 끝까지 애도하고 슬퍼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는 이유는 그것이 기계에게 있어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옳기에 애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은? 누군가를 애도하고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것이 옳은 일임에도 우리의 사회는 그것을 잘 해내고 있는가? 세월호를, 용산을, 이태원을 잊지 말자 소리내는 사람들의 편에 우리는 여전히 서있는가?
<여행의 끝>...은 인간의 잔혹함을 보여주시려고 하신 것일까... 사실 이 책에 실린 글 중 제일 길었지만 제일 호러틱하여 이런 글을 못 보는 관계로... 집중해서 읽지 못했다... 다만 굉장히 신선하고 충격적인 설정에 반전의 결말이었다는 점을 말해본다. 취향이시면 아주 재밌게 읽으실 듯... 잔혹한 전염병이 지구에 퍼지고, 비감염자들을 인류의 생존을 위해 우주로 보냈으나 그것마저 실패하게 되면서 우주선에서 탈출한 주인공과 그의 동료 한명, 지구엔 더 이상 희망이 없으나 그들은 결국 지구에 도착하게되고 지구에 홀로 남게 되었을 때... 그 것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인데, 사실 나는... 이 전염병. 지구에 인류가 다 없어진 이유. 그것이 사실은 지구가 한 번 즈음 정화되는 그런... 필요한 일 아니었나... 싶기도 해서 오싹했다. 인간이 없어도 지구는 잘 돌아가더라... 우리는 지구에 꼭 필요한 존재인지.
<아주 보통의 결혼>. 이것도 오싹! 했다. 보통성에 대해 다룬 것인지? 계속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아내를 의심하는 남편, 사실 아내는 계속해서 매일매일 상관에게 무언가를 보고해야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보통에 속하지 않는 존재였고... 그 사실을 알게된 남편이 그 '보통성'을 깨려고 할 때 벌어지는 소름끼치는 일들. 그러면서 공포 속에서 그 '보통'을 유지해야하는 모습이... 우리 편견이, 차별이 두려워 사회가 말하는 보통의 모습 유지하려는 소수자들을 생각하게 해서 마음이 씁쓸했다.
<One More Kiss, Dear>가 가장 속상하고 슬픈 이야기였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는 것이 두렵다. 아직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인공지능이 말하는 것처럼... 나도 죽음을 아직 이해할 수가 없다. 의문 투성이이다. 그런데 답해줄 존재도 없다. 53층의 할머니를 대하는 이 인공지능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그가 가진 병과 죽음에 대한 의문을 보면서 결국 늙어갈 수 밖에 없는 인간과 어쨌든 맞게 될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다 읽고 조금 서글펐다. 아직은 성숙하게 받아들이기가 힘든가보다.
<그녀를 만나다>는 명확한 메세지를 갖고 있다. 성소수자들과 연대하는 글이다. 글을 읽고 나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주인공은 마치 작가님을 떠오르게 하는 것도 같다. 미래에도 끊이지 않는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테러의 우여곡절 끝에 소통과 연대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그들에게 해를 가한 이들을 향한 증오가 아닌 이 자리에 모이고 마음을 나누는 다른 이들에게 사랑과 희망의 메세지를 전하는 것을 보면서 울컥했다. 우리의 미래가, 모두의 마음이 이런 모양이었으면 좋겠다.
<Maria, Gratia Plena>는 가정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많은 여성이 죽어나가고 아이들은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이 이야기는 가정폭력을 겪은 마약사범의 기억을 (마치 이터널 선샤인) 처럼 추적해나가는데, 결국 그녀는 가정폭력범인 아버지의 손에 잃은 어머니와, 동생을 다시 보고 싶은 것 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가정폭력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다... 이젠 다들 알법한데도 법은 솜방망이고 여전히 사람들은 죽어가나고 아이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이젠 바뀔 때가 되었다.
<씨앗>은 극단적인 인공 사회와 자연 사회의 간극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나무와 결합해 진화한 인류가 한 축을,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부터 죽음까지, 그리고 자연물도 인공적으로 생산해 사용하는 한 축의 인류 사이의 갈등을 그린다. 이는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환경 문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과 자연은 단절되어버렸다. 연결점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인간 편의에 맞춘 개량과 조작, 자원 남용으로 자연은 원래의 모습을 잃어가고있는데 힘 있는 사람들은 그게 잘못된 것인 줄을 모른다. 연결성을 잃은 인간은 무자비하게 자연을 착취한다. 그러다간 우리가 다 죽는데도... 비건지향의 이유에 환경문제가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연결고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그 점에 깊이 동감하며 읽었다.
모든 이야기가 꼭 필요한 메세지를 담고 있음과 동시에 작가님만의 독창적 세계로 꾸려져서 깊이있으면서도 흡입력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정보라 작가님에 대해 알게 될 수록 작가님의 책을 더 읽어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