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격자의 차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6
연여름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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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세계관의 세팅이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를 떠올리게했다. 이상적으로 통제되는 세계에서 그 세계를 탈출하고자 하는 인물이 나오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 세인이 속한 사회는 외부의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해지기 위해 1세대 사람들이 인공지능 모세를 중재자로, 사람들을 실무자로 하여금 설계한 도시이다. 도시의 지속성과 안전을 위해 사람들의 직업, 수명, 이름은 모두 통제되고, 심지어 감정과 생각, 탄생과 죽음마저 제한당하는 통제 사회이다. 다만, 여타 다른 통제 사회 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들과 대비되는 점이라면 그것이 사람들과 인공지능의 합의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 있겠다.

아무튼, 이 통제 사회의 이름은 ‘중재도시’이다. 중재자인 모세의 중재에 의해 유지되고 있기 때문. 사람들은 그 안에서 9세대에 걸친 세월을 보내왔고, 지금은 귀에 꽂은 ’모세’ 기기를 통해 도시의 중재자와 실시간 소통하기도 한다. 이 도시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허구죄’로 일컬어지는, 꿈과 상상과 공상을 금기시하는 통제이다. 특히, ‘몽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게 되기도 한다. 이런 허구죄와 기타 여러 가지의 죄목들은 개개인에게 결점으로 누적되고, 결점이 7회 쌓이면 부적격자로 판단되어 통제내에서 정해진 수명을 다 채우지 않았더라도 죽음, 즉 소거 당하게 된다.

이런 상황 속, 9세대 실무자 중 ‘세인‘이 우리의 주인공이다. 중재도시에선 전임자의 유전 정보를 이용해 동일한 이름과 동일한 직무를 수행하는 후임자를 만드는 방식으로 세대 교체를 해왔다. 세인은 병원에 근무하는 실무자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또 다른 실무자로는 ’레드‘가 있다. 1세대 때부터 건축가의 직무를 맡아, 지금은 도시 방벽을 살피고 수리하는 일을 한다.

오류 사건으로 인해 생애수명이 연장되고, 그래서 소거를 담당하는 병원 부서의 실무자인 세인의 일이 잠시 중단되자 그는 일반 병동에서 임시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레드가 방벽 수리 중 낙상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오게되고, 그는 세인의 담당 환자가 된다. 레드는 통제 사회에서 여태 당연시 여겨졌던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의문을 표하기 시작하고, 세인은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기에 점차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 둘이 겪고, 듣고, 나눈 일들과 말들은 세인에게 중재도시 밖으로 눈길을 돌리게 만든다. 중재도시 밖은 여전히 사람이 살 수 없는 전염병으로 가득한 곳일까?

책을 다 읽고 굉장히 산뜻한 기분을 느꼈다. 그게 왜인지 생각해보니, 총을 쏴대거나 누가 누구를 쫓거나 누구에게 쫓기거나 싸우고 갈등하는 과정 없이 주인공이 용기를 얻고 본인의 의지가 단단해질 때 즈음 자연스럽게 통제 사회에서의 탈출을 생각하는 그 과정이 이 전 유사한 설정의 글들에서는 보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꿈을 꾸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지금의 경지에 다다른 기술들을 사용하고, 그에 그치지 않고 더 성장하고자 시도하고, 그러면서도 닥쳐올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우리가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더나,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아끼는 마음도 그를 꿈에 그려볼 수 있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 아닐까.

전염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후손들의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 시작된 중재 도시는 분명 처음엔 전염병으로부터 도망쳐다니느라 더 이상 인간답게 살지 못 하고 있다고 생각한 1세대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구축한 도시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점점 흐르고. 9세대인 세인의 시대에 와서는 오히려 그들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세인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꿈을 꾸고 생각을 하며 살고, 감정을 나누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중재 도시 바깥을 바라보게 된 것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용기를 내었을 때, 그를 막고 가두려는 사회의 독재자 없이 그가 그의 선택대로 삶을 매끄럽게 바꾸어나갈 수 있었다는 점이 나에게 큰 감동으로 와닿았던 것 같다.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 당신도 꿈을 꾼다. 우리는 꿈을 꾼다. 비록 그 꿈이 때로는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고, 좌절하게도 하지만, 우리는 꿈을 꾸기 때문에 그것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도 하다. 우리를 인간으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꿈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글은 현대문학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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