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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 - 강인욱의 처음 만나는 고고학이라는 세계
강인욱 지음 / 김영사 / 2024년 6월
평점 :
'고고학'이란 무엇일까? 고고학을 생각해보면, 뭐...인디아나 존스를 떠올리거나, 엄청난 공룡 화석을 발굴하는 이들을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을 펼치자마자 강인욱 교수님은 고고학이란 역사학도, 인류학도 아닌 또 다른 별개의 학문이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이 셋은 모두 다양한 시간과 공간 사이에서 옛날 사람의 모습을 밝히는 것과 같으며, 단지 그 방법이 다를 뿐이라고 말씀하신다. 역사학과 인류학만큼이나 고고학은, 인류의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독립적이고 중요한 학문이라는 것. 그만큼, 사실 고고학은 인류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고고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부터 시작해서, 발굴 방법, 연구 방법, 고고학이 겪는 어려움, 발굴의 딜레마, 고고학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역시 나에게 흥미로웠던 것은 고고학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크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하시는데, 고고학이라는 학문에 적용되기 시작한 AI 기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디지털 유물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AI는 현재 고고학계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되는 기록, 분류, 실측 등의 1차 작업을 대체하는 일에 사용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미 현장에서도 파편만 남은 유물이나 유적을 복원하거나 숨겨진 나머지 부분을 찾는 일에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AI에게 고고학의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작업을 맡기는 것은 지금 다른 분야에서 AI 사용에 대한 논쟁이 많듯, 적절치 않은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AI를 적절히 사용하고 응용한다면 우리 인류의 더 많은 역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별개로... 고고학의 발굴과 연구 과정을 읽으면서 데이터를 하나하나 수집해 하나의 역사를 연구하는 일이 머신러닝과 그 모습이 유사하다고 생각했는데 교수님이 언급하셔서 깜짝 놀랐다. 과거의 파편을 모아 연구의 결론을 도출하는 고고학과, 단편적 정보를 보아 학습의 결과를 도출하는 AI. 어쩌면... 이 둘, 최고의 상성을 가진 것은 아닌지.
디지털 유물에 대한 이야기는 놀랍게도 저번 주 제주도에서 할머니 댁에 머물 때 할머니와 나누었던 이야기라 굉장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할머니께서도 교수님과 같은 말씀을 하셨었는데, 언젠가 지금의 디지털 기록 시스템이 다른 것으로 대체된다면 그 안에 남겨진 수 많은 정보와 기록물들은 어떻게 남겨지고 전수될 수 있는가?에 대한 말씀이셨다. 그러면서 결론은 결국 내린 결론은 '다 프린트해서 정리하기' 였고, 그 다음날 난 휴대폰의 사진 몇 장을 골라서 사진관에 인화하러 갔었다.
그때는 굉장히 구식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교수님도 똑같이 말씀하셨더라. 중요한 디지털 자료는 책과 같은 유형의 출력물로 보존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구시대의 아날로그가 확실한 보존 방법이라는 말도 덧붙이시며.
그 문장까지 읽으니 굉장히 심란해졌다. 문명의 발전은 우리를 점점 디지털의 세계로 이끌어 갈 것이고, 다시 아날로그의 시대로 역행하기는 이미 글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지금의 유산을 후대에 전할 의무가 있고, 그러려면 적절한 수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수단은 역설적이게도 아직 과거에 머무르고 있다니! 그러나 중요한 자료들을 모두 책으로 만들기에는 당장 현재의 정보의 바다가 너무 방대하다. 우리는 이 파도같이 밀려오는 정보들을 어떻게 보존하고 후대에 남길 수 있을까.
그래서... 학문적 호기심에 찾아보니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의 <디지털시대의 미래 고고학> (배기동, 김경택, 2023) 논문이 있었다... 이 논무에서, 전통 고고학이 당면한 문제는 현 상황에서 디지털시대의 인간 행위에 흔적에 대해서는 사실상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아직 그에 대한 노력은 학문적 수준에서 정리되거나 방법론이 개발되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그러면서 과거의 인공물을 재료로 인류의 과거를 설명하는 고고학이 사이버 공간에 남아있는 흔적을 대상화하지 않는다면 문화희 총체적 복원은 요원하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그래서! 지금 인류는 어떤 방식을 취하고 있는가? 디지털시대 고고학이 제공하는 문화정보의 집적과 분석을 위해 국가 기관들이 기금과 네트워크 시스템 구축을 통해 그 생산과 관리를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해나가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이 새로운 학문 정립을 위한 학제적 융합 연구를 제안하고 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과거와 다르게 디지털 공간에 남는 전례없이 방대한 양의 문화정보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디지털시대 고고학이며, 이를 정립하고 연구하기 위해서는 전 인류 차원의 체계적 정리와 학문 자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내 생각을 덧붙이자면... 학문 정립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 때 고고학자 뿐 아니라 빅데이터 전문가나 프로그래머 등의 컴퓨터 공학과 관련된 사람들이 많이 포함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주 흥미로운 책을 만나서 간만에 논문도 찾아보고 과거 좋아했던 문화재들도 떠올려보며 신나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지식 수준만 된다면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꼭! 시간을 들여 읽어보면 좋겠다.
이 글은 김영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임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