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데이즈 제프 다이어 선집
제프 다이어 지음,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엔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부터 걱정했다. 이 걱정은 책의 중반부, 저자가 쓴 독서에 관한 대목(포기의 한 부분, 포기한 독서)에 의해 부서진다.

"어쩌면 작가와 책들은 어린 시절 집 문틀에 키를 적어 놓은 키 성장 눈금처럼 우리가 스스로를 뛰어 넘어 얼마나 멀리 성장하도록 도와주어쓴지를 나타내 주는 지표인지도 모른다." - 131p


지금, 나는 이 책을 다 읽지 못했다. 이번 주가 최근 들어 가장 바쁜 한 주였기 때문이다. 집에서 책 읽을 시간이 없어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틈틈이 읽었고 점차 다 읽지 못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이 책을 다 읽을 예정이다. 지금은 서평 제출 기간이 다 되어서.. 서둘러 반쪽 독서를 마무리한 뒤 이 글을 쓰고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이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독서 경험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소외감과 소속감을 동시에 느꼈다. 책 꽤나 읽었다고/영화 엄청 봤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작품이 너무 많이 나와서.. (당연함) 저자의 연륜이 부러워서.. 지금 당장 나에게는 끝을 생각하긴 커녕 시작을 두려워하고 시작을 위한 시작에 골몰할 수밖에 없어서.. 등등 이런저런 이유로 소외감을 느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내 앞자리에 제프 다이어 교수님이 앉아 계시고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강의를 듣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독서를 포기한 경험에 대해 들었고, 교수님께서 극찬한 작품 제목을 받아 적다가 이디스 워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겹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 사람이 내가 모르는 사람과 음악과 그림과 테니스에 대해 오래오래 설명해도 그렇다.

+

​어제 새벽 잠들기 전 서평에 쓸 문장 하나를 생각해냈다.

나는 그들(모두)에게서 존재를 본다.

이건 내가 (특히) 일할 때 장착하는 태도인데,
상대를 상대로 보지 않고 존재로 보는 것이다.

이 책이 내게 알려준 팁이기도 하다.

그들이 성과를 기억하고
그것은 그것대로 두고
그들 역시 기억하는 것


니체가 데 키리코에게, 데 키리코가 제프 다이어에게, 제프 다이어가 나에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강보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겁이 많고, 언제나 불안과 함께 생활하는 불안 반려자이다. 시작을 알 수 없는 고민, 불안을 종류 별로 나누고 꼬리표를 붙인 다음 그것을 산책시키거나 그것에 빠져 허우적댄다. (앞뒤 문장을 참고하라.) 나는 겁이 많은 사람. 그럴 수 없는 사람. 나는 수혜, 호경, 해규처럼 투명해지기 힘든 사람.. 그리고 결론을 낸다. 내면을 더 들여다보자. 열심히 무의식을 파헤쳐서 나를 사랑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자. 내면을 봐! 그곳엔 모든 답이 있어!라고 말한다. 때문에 나는 지금껏 혼자 방 안에 앉아 요가하고 명상하며 진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애썼다. 그게 다라고 확신하면서. 너무 재밌고 너무 힘들다, 하지만 이건 해야 하는 일이야, 또다시 굵은 선을 긋고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이런 내게 조금 다른 시선, 시점을 선물한다. 낯설고 새로운 곳에서 탄생한 것이 아닌, 적당히 비슷하고 적당히 다른 우리 안에서 발견해낸, 너무 가까워서 알아차리지 못한 이야기를 건네준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내가 전부 감당해야 하는 일만은 아니고, 각자의 치유와 회복은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 더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

세 번째 단편 <신시어리 유어스>와 네 번째 단편 <바우어의 정원>이 이를 뒷받침한다. 나는 신시어리 유어스를 읽으면서 그간 내재되어 있던 막막함과 답답함을 이해했다. 바우어의 정원을 읽으며 틈틈이 울었고 불완전한 건 아름다운 거야 생각했다.

-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을지 모르나, 내가 만든 세계에서는 그것이 진실이었다. 시대착오적이라는 이재 씨의 표현이 머리 한구석을 맴돌았지만 나는 언니의 마음을 그런 식으로밖에 헤아릴 수 없었다. 그것이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영법이었다. 나를 떠받치는 결정적 부력이었다. (295p)

마지막 단편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 속 위 문장은 마침내 흩뿌려진 나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내가 만든 세계에서는 이것이 진실. 인물과 나를 타박하고 어떻게든 바로 서기 위해 이건 아니지 저게 맞지 이리저리 쏘다니던 목소리가 서서히 가라앉고 나는 가벼워진 마음으로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나에게 (호경이 재아에게 선물한 그림처럼) 아무런 맥락이 느껴지지 않는, 텅 빈, 이해 불가능한 어떤 것(82p)에서 자신의 비참함을 잘 간직하겠다 마음먹는 은화(그것만큼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그녀 자신만의 것이었으므로, 169p)가 되었다가 끝내 자신의 세계를 이해하는 동시에 타인의 세계와 연결 지을 줄 아는, 커다란 전체, 세상이 된다.

그것이 나의 오랜 꿈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용기가 없어 미뤄온 일을 소설집 덕에 천천히 해나가게 되었다. 경계를 허물고 세상을 조망하는 일! 그것은 물론 내 안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밖으로 뻗어나가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 가닿을 것이다. 그렇게 뒤섞인 마음이 커다란 희망이 되어 돌아오기도 할 것이다. 때론 나를 화들짝 놀라게 하기도, 눈물짓게 하기도, 안도하게 하기도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크릿을 깨닫다 -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현실 창조의 원리
카밀로 지음 / 정신세계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청난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밤, 당신의 도착지는 숙면입니다 - 잠 못 이루는 당신을 위한 숙면여행
브레이너 제이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받았을 때 가장 두드러지게 보인 건 다채로운 구성이었다.(표지/내부 디자인을 포함해 숙면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가 아주 촘촘히 잘 짜여 있다.)

체크 포인트 속 질문으로 내가 처한 상황을 점검하고 들어간다는 점이 좋았다. 문제를 알아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데, 이 책은 내가 나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끔, 다정하게 질문하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

나는 불안, 걱정, 근심이 많은 사람이라 자기 전에 엄청난 생각 파도를 경험한다. 오늘 했던 실수, 주변 지인에게 했던 말부터 먼 과거 속 후회까지. 제이 님 유튜브를 접하고 마음 챙김/자기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기 전엔 이런 생각을 당연하게 여겼다.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니까, 인정/수용하는 척 회피했던 것이다. 내 안의 여러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상태로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이런 문제들은 꾸준히 생각을 일으킨다. 이건 하지 않으려는 의지와 무관하다. 오히려 하는 의지와 가깝다. 생각을 하고, 왜 그 생각이 드는지 들여다보고, 내가 외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차림으로써 확장이 시작된다.

책 속 수많은 질문은 우리에게 필요한 내면 탐험에 들어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아주 탁월한 가이드인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