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강보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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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겁이 많고, 언제나 불안과 함께 생활하는 불안 반려자이다. 시작을 알 수 없는 고민, 불안을 종류 별로 나누고 꼬리표를 붙인 다음 그것을 산책시키거나 그것에 빠져 허우적댄다. (앞뒤 문장을 참고하라.) 나는 겁이 많은 사람. 그럴 수 없는 사람. 나는 수혜, 호경, 해규처럼 투명해지기 힘든 사람.. 그리고 결론을 낸다. 내면을 더 들여다보자. 열심히 무의식을 파헤쳐서 나를 사랑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자. 내면을 봐! 그곳엔 모든 답이 있어!라고 말한다. 때문에 나는 지금껏 혼자 방 안에 앉아 요가하고 명상하며 진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애썼다. 그게 다라고 확신하면서. 너무 재밌고 너무 힘들다, 하지만 이건 해야 하는 일이야, 또다시 굵은 선을 긋고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이런 내게 조금 다른 시선, 시점을 선물한다. 낯설고 새로운 곳에서 탄생한 것이 아닌, 적당히 비슷하고 적당히 다른 우리 안에서 발견해낸, 너무 가까워서 알아차리지 못한 이야기를 건네준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내가 전부 감당해야 하는 일만은 아니고, 각자의 치유와 회복은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 더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

세 번째 단편 <신시어리 유어스>와 네 번째 단편 <바우어의 정원>이 이를 뒷받침한다. 나는 신시어리 유어스를 읽으면서 그간 내재되어 있던 막막함과 답답함을 이해했다. 바우어의 정원을 읽으며 틈틈이 울었고 불완전한 건 아름다운 거야 생각했다.

-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을지 모르나, 내가 만든 세계에서는 그것이 진실이었다. 시대착오적이라는 이재 씨의 표현이 머리 한구석을 맴돌았지만 나는 언니의 마음을 그런 식으로밖에 헤아릴 수 없었다. 그것이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영법이었다. 나를 떠받치는 결정적 부력이었다. (295p)

마지막 단편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 속 위 문장은 마침내 흩뿌려진 나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내가 만든 세계에서는 이것이 진실. 인물과 나를 타박하고 어떻게든 바로 서기 위해 이건 아니지 저게 맞지 이리저리 쏘다니던 목소리가 서서히 가라앉고 나는 가벼워진 마음으로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나에게 (호경이 재아에게 선물한 그림처럼) 아무런 맥락이 느껴지지 않는, 텅 빈, 이해 불가능한 어떤 것(82p)에서 자신의 비참함을 잘 간직하겠다 마음먹는 은화(그것만큼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그녀 자신만의 것이었으므로, 169p)가 되었다가 끝내 자신의 세계를 이해하는 동시에 타인의 세계와 연결 지을 줄 아는, 커다란 전체, 세상이 된다.

그것이 나의 오랜 꿈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용기가 없어 미뤄온 일을 소설집 덕에 천천히 해나가게 되었다. 경계를 허물고 세상을 조망하는 일! 그것은 물론 내 안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밖으로 뻗어나가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 가닿을 것이다. 그렇게 뒤섞인 마음이 커다란 희망이 되어 돌아오기도 할 것이다. 때론 나를 화들짝 놀라게 하기도, 눈물짓게 하기도, 안도하게 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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