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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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는 상실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애도의 가장 좋은 방법은 떠난 사람을 온전히 다시 만나는 것이다. 다시 만나면 못다 한 말도 하고 포옹이라도 한번 하고 보낼 수 있겠지. 물론 불가능한 방법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 사람을 통째로 기억해서 그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애도가 되지 않을까?
많은 작가들이 이런 애도의 방법을 시도했다. <<애도일기>>는 어머니를 기억하기 위한 롤랑바르트의 하루하루의 기록이었다. 나에겐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 역시 마찬가지로 읽혔다.

아니 에르노는 아버지를 애도하기 위해 그를 기억하고자 한다. 다만 예술적으로 조작되거나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기억이면 안된다. 아버지 그 자체로 돌아와야 한다. 조작된 아버지를 만들어내면 그녀는 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 만약 아버지를 그려내는데 거짓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을 더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를, 그의 삶을 하찮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아니 에르노는 아버지에 대한 객관적인 조각들을 모아본다. 쉬운 작업이 아니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당연히 창작이 될 테니. 이런 작업에서 글쓰기의 행복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을 하지만, 이것은 그녀가 소설을 창작하는 것이 아닌 그녀가 살아가기 위해 해야만 하는 작업이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들었던 어린시절, 사진 속의 아버지와 가족들을 회상하며 차곡차곡 글을 쓴다. 덧붙여 그녀는 아버지와 멀어지고, 아버지의 삶과 멀어진 자신의 이야기도 함께 한다. 이 책의 원제가 '남자의 자리'가 아닌 'La Place 자리'인 이유일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를 그려내면서 그녀가 떠나왔던 아버지의 기억이 있던 그곳까지 같이 그리고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만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닌 아버지가 있던 삶을 기억하는 것이기에. 

그리고 그녀는 "곧 아무것도 쓸 말이 없을 것 같다. 나는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는 것을 머뭇거리며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하며 애도의 시간이 끝내간다.

감정이 배제된 사실을 바탕으로한 단조로운 문장이지만,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가 변해가는 모습에서 내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저녁에 전화 한 통화드려야겠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아버지와 그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사춘기 시절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이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어졌다.계층 간의 거리나 이름이 없는 특별한 거리에 대해. 마치 이별한 사랑처럼. - P19

나는 곧바로 그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중간쯤에 이르자 거부감이 찾아왔다.
최근에서야 나는 소설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중략)...
한 존재의 모든 객관적인 표적을 모아보려 한다. - P20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아버지를 더 이상 먹여 살릴 수는 없었다. <<생각도 하지 않았어. 그댄 모두가 그랬으니까>> - P25

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했다. - P39

나는 천천히 쓰고 있다. 사실가 선택의 집합에서 한 인생을 잘 나타내는 실타래를 밝혀내기 위해 애쓰면서, 조금씩 아버지만의 특별한 모습을 잃어가는 듯한 기분이다. - P40

나는 매번 개인적이라는 함정에서 빠져나온다.

물론 들었던 단어와 문장에 최대한 가깝게 써야 하는 이런 작업에서 글쓰기의 행복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 P40

그 단어와 문장이 아버지가 살았던 세계이자 내가 살았던 세계이기도 한 곳의 한계와 색깔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어떤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받아들이는 법이 없었다 - P40

노동자로서 아버지의 삶이 여기서 끝난다. - P46

아버지는 자신이 사회에 필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그가 <<늘 저랬던 것은 아니야>>라고 말하면서도 왜 그렇게 됐는지 분명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모든 이들에게 출제와 자유의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P47

행복이자 동시에 소외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 P48

어떤 사진 속에도 그가 웃고 있는 모습은 없다. - P49

물건들을 신성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타인의 말이든 내 말이든 주고받는 모든 말속에서 선망과 비교를 의심한다...(중략)...끝을 알 수 없는, 계속되는 결핍을 느낀다.
그렇지만 욕망을 위한 욕망이었을 뿐이다. 사실상 무엇이 아름다운지, 무엇을 좋아해야하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 P51

분수를 알아야 해, 그가 늘 하던 말이다. - P52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을까, 창피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 P52

한 마디로 영리하게 처신했다. 이 경우 열등함을 인식하되 그것을 최대한 숨기면서 거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중략)..우리가 지금의 우리가 아니었다면, 다시 말해 열등하지 않았다면 분명 알 수 있었던 것을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 P53

그토록 세련된 사람들에게 우리와 공통된 어떤 것, 즉 약간의 저급함이 잇다고 믿으며 기뻐했다 - P55

내 기억 속에 언어에 관한 모든 것은 돈 문제보다 더한 원망과 아픈 언쟁의 원인이었다. - P57

우리는 서로에게 짜증 내며 말하는 법 말고 다르게 말하는 법을 몰랐다. 예의 바른 말투는 낯선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 P63

그 이후로 그에게 늘 똑같은 삶이 펼쳐졌지만,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 P69

그가 대화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나는 늘 내가 옳다고 믿었다...(중략)...그의 태도를 바꿔주려고 했던 것이라 정당하다고 확신했다. 어저면 그는 다른 딸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 P73

어느 날 그가 이렇게 말했다. <<책, 음악, 그런 건 너한테나 좋은 거다. 내가 살아가는 데는 필요없어.>> - P74

적어도 나를 먹여 살린다는 것에 행복해했다. - P74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더 이상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글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P75

나는 오랫동안 런던에서 지냈다. 먼 곳에서 그는 추상적인 다정함을 가진, 변함없는 존재가 됐다. 나는 나 자신만을 위해 살기 시작했다. - P80

더 이상 야심은 없었다. 그는 자기 가게가 자신과 함께 사라질 잔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제는 삶을 조금 즐겨보기로 결심했다. - P81

(친구 가족이 초대했을 때는) 내가 왔어도 전혀 바뀜없는 생활 방식을 나눌 수 있었다. 어떤 낯선 이의 시선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세계에 들어간 것은, 그 세계가 내게 열렸던 것은 내가 살더 ㄴ세계의 방식과 생각, 취향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 P83

예를 들자면 그의 집에서는 유리잔을 깨면 누군가 곧바로 이렇게 소리친다. <<만지지마 깨졌어>>
-> 자신의 집에서는 물건을 깼다고 꾸지람을 듣는 것과 대조 - P86

그들의 원래 모습 그대로를 다시 만나게 돼쏙, 나는 나 자신과 분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P87

그는 그로서는 알지 못했던 호화스러운 삶을 살도록 나를 키웠고 그것에 행복했으나, 나의 성공을 증명해줄 뿐인 던롭필로 가구나 옛날 서랍장에 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 P88

그는 점점 더 삶을 사랑하게 됐다. - P89

곧 아무것도 쓸 말이 없을 것 같다. 나는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는 것을 머뭇거리며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 P90

[옮긴이의 말] "아버지의 존재로 소설을 쓰는 것은 일종의 배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을 쓰면 인물을 창조하게 됩니다." - P104

[옮긴이의 말] 분석적 설명에는 미화가 없다..없는 것을 있다고 하지 않는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단조로운 글쓰기다. 필요한 단어로만 기억의 세계로 뛰어드는 일. - P105

[옮긴이의 말] 이 거짓 기억에는 삶을 시어보다, 은유보다 하찮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중략)... 아니 에르노가 옳다. 그 삶은 그렇게 쓰여서는 안된다. - P106

[옮긴이의 말]문학은 인생이 아니에요. 문학은 인생의 불투명함을 밝히는 것이거나 혹은 밝혀야만 하는 것이죠. - P106

[옮긴이의 말]쓰지 않으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어느 불투명한 삶을 구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이보다 더 완벽한 오마주가 어디 있을까? 그녀의 글은 아버지를 향한, 그녀가 내려놓고 떠났던 세상을 향한 오마주다. 그리고 이 오마주는 예술의 편에 서 있지 않다. 삶이 먼저, 문학은 그다음이다. 삶이 문학이 되기 위해 꾸며야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 P107

소설보다 더 큰 삶이 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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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람들
박솔뫼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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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시공간은 4차원이라고 한다. 공간의 3개의 차원과 시간의 1개의 차원. 그중 공간의 차원은 앞과 뒤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지만 시간의 차원은 엔트로피 법칙으로 인해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즉, 시간의 차원 역시 사실은 겹겹이 쌓여 우리가 뒤로도 갈 수 있지만 물리 법칙상 안 되는 것뿐이다. 하지만 갈 수 없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모든 시간은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초끈이론에 따르면 우리 차원이 11차원이라고 한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작은 미시공간의 차원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면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시간의 차원처럼 우리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일 수 있는 공간 차원도 존재하지 않을까?

그런 겹겹이 쌓여있지만 우린 한 방향으로만 움직일 수 없어 무언가를 놓치게 되는 그런 차원... 


박솔뫼 작가의 소설들을 읽으며 그런 차원들을 상상했다. 공간의 차원이 겹쳐있다면 거기에 꼭 누군가가 있다와 없다를 구분지을 수 없지 않을까? 그녀는 공간에 없지만, 동시에 공간에 있는 사람을 겹쳐본다. 그렇게 그녀는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그림자 같은 이들을 생생하게 떠올'린다. 그렇기에 그녀는 공간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듯하다. 하나의 공간을 상상하고 거기에 사람을 둔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린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들만 걸러내어 그들은 연결하고 중요한 맥락을 파악하는 데 익숙해진다. 하지만 그 과정에 놓친 많은 것들이 있다. 각각의 부산물, 각각의 사이에 있던 느슨한 연결 고리들,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어떤 것들.


공간에 사람을 두었을 때 특별한 것만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공간에 있는 사람을 상상하면 그 모든 사소한 것들, 사소한 것들 사이의 연결 고리들이 보인다.  '중요하지 않다'고 바라보지 않는 것은 어쩌면 각자의 존재의 일부를 지우는 것이 아닐까? 마치 '양면 인쇄로 들어가야 할 부분이 앞부분만 인쇄되어 발송'된 글처럼.


뇌과학에서 인간이 가장 창의적으로 될 때는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보여줄 때라고 한다. 그녀는 굉장히 특이한 문장을 쓴다. 그동안 의식의 흐름 기법을 썼다고 생각했던 작품들은 그래도 정제되어 있다는 느낌이라면 박솔뫼의 문장은 정말 의식이 흘러가는 그대로다. 그러다 보니 비문은 당연하고 문장의 앞뒤가 뒤집혀 한 번에 읽히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걷다 보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흐르는 듯 연결해서 하듯 그녀의 문장은 그런 과정을 그대로 적고 있다. 익숙한 일상을 이렇게 익숙하지 않은 문장으로 보여주면서 읽는 이에게 여러 가지를 상상을 하게 만든다. 아마 이것은 중요한 것들만 기억하지 말고 다른 것들을 보고 상상하려 하는 그녀 마음의 발로가 일 것이다.


그녀의 소설은 공간들의 겹침과 거기서 만들어지는 존재의 겹침을 생각하고, 그 겹침에서 일어나는 파동을 꿈에서 들으며 그것을 발화하거나 글로 쓴다는 의미에서 어쩌면 소설가의 메타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꿈은 가끔 글을 쓰는 이들이 술자리에서 말하곤 하는 그들에게 찾아오는 어떤 영감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친구들이 숲에 갈 것이라고 했다. - P9

다른 세계를 생각해도 엄청난 것 대단한 것을 떠올리지않고 같은 나라의 다른 도시의 내가 살 법한 조건들을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선택하지 않은 걸음들을 간 사람을 가정하는 것이다. - P12

졸다 깨다 아직이군,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거리였고 하지만 그래서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12월 31일이 되면 어째서 나 자신과 가족들 친구들이 아니라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그림자 같은 이들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되는 것일까. - P13

친구들은 숲에 가지 않았고 나는 그것을 알고 있지만 어째서 늘 숲에는 친구들만 있는 것일까. - P25

하나가 자꾸 보는 붉은 원처럼 이상한 점들이네 분명히 사람이지만 웃긴 점처럼 보인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몰라 - P33

누군가 드문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 P35

단순한 감정으로는 싶지 않음에 훨씬 더 가깝지만 그중 어떤 감정은 말하고 싶음 써두고 싶음 외치고 싶음이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 P51

동면자들은 꿈을 기록하고 정리하고 이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사라진 시간들을 복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시기에는 잠이 전부이기 때문에 꿈의 흔적을 좇아 동면의 시간으로 떠난 자신이 실은 또다시 어딘가로 떠났음을 그 떠남을 떠올리고 더듬어나가며 자기 자신과 또 어딘가에 있을 자신에 대해 이해해가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꿈들은 기억이 나지 않고 나는 적어도 나는 내가 있었다면 내가 했다면 좋았을 것에 대해 그것은 허황된 꿈과 바람이지만은 않고 사실 했을 법하지만 왜인지 아련한 것들에 관해 쓰기 시작합니다. - P55

동면자들이 기억하려고 애쓰는 꿈들은 가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지 않을 때 그들을 찾아왔다. - P58

동면자들이 기록하는 꿈에 관한 기록은 나 역시도 어디에 있든 조금 보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P62

몸을 숨기고 이름을 숨기고 버티어 살아낸 사람에게는 이름과 자격이 선택적으로 주어진다. - P84

조한이가 길가에 붕 띄운 정신이나 영혼이 어떻게 되었는지....(중략)... 그런 것은 가볍게 몸을 붕 띄워 은행잎 더미가 되지는 못하고 아직 이미 죽은 자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P119

잠을 푹 잔 나와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돌아다니며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는 나가 보였다. - P143

양면 인쇄로 들어가야할 부분이 앞부분만 인쇄되어 발송되었다. - P155

그런데 어떤 장면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런 것은 찍힐 수도 없었다. 보는 사람은 있었을까 그것조차 알 수 없다. - P165

그런데 가끔 내가 그 영화를 지어냈다면, ....(중략)... 내가 보았던 것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면 생각한다. - P171

미래는 꼭 다음에 일어날 것이 아니고 과거는 꼭 지난 시간은 아니에요...(중략)...아니 그들이 반복한 것은 그때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면이 아니라 그때 그곳에 누군가 있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 P177

종종 어떤 곳은 가보지 않았지만 가보았다고, 이해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 P195

내가 본 것이 지금 보는 것과 아주 다른 것일까. 어떤 상이 조정되고 맞춰져 하나의 모습이 될 일은 아니다. 서울은 보는 것이 좋은가 서울에 있는 것이 좋은가. - P205

이대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 여기서 갇혀버리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 그대로 나가버리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 - P216

이 모든 것은 쉬지 않습니다....(중략)...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영원하지 않지만 때때로 놀랄 정도로 반복되는 일이야.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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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이 -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소녀의 이야기
모드 쥘리앵 지음, 윤진 옮김 / 복복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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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인 모드 쥘리앵은 완벽한 아이를 만들어 내겠다는 아버지의 망상과 폭력 속에서 집에 갇혀 살게 된다. 

악기를 배우는 이유는 수용소에 잡혀갔을 때 악기 연주하는 이들은 살 수 있어서이다. 부드러운 고기를 위해 그녀는 살아있는 송아지를 안정시켜야 하고 그 송아지가 도축되는 것을 보고 살덩어리들을 날라야 한다. 캄캄한 지하실에서 죽음을 명상해야 한다...

만약 이 책의 내용이 작가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면, 그 기억 때문에 십수 년을 고통 속에 살고, 이렇게 담담하게 풀어내기까지 십수 년이 걸렸다는 것을 몰랐다면 난 이 내용을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토록 참혹한 정서적 지배가 있을 수 있을까, 아니 그것보다 어린아이가 그런 환경에서도 버티며 살아오고 그러한 피해를 받은 이들을 돕는 직업을 선택할 정도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운동선수들의 폭행 문제나 군대에서 말도 안 되는 폭력이 가능한 이유는 그곳이 갇힌 세계이기 때문이다. 갇힌 세계에서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 구성원이 살아가려면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 거기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며 반드시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아이는 도대체 이 희망을 어디서 찾아낸 것이란 말일까. 

그녀는 네발의 동반자들과 책 속의 눈에 보이지 않는 친구들과 음악들과 대화했다.  개 한 마리, 조랑말 둘, 그리고 오리로부터 사랑을 느꼈고, 몽테크리스토 백작, 변신, 파리의 신비, 지하로부터의 수기, 오디세이아..같은 책을 읽으며 세상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과 대화했다.

그렇게 좌절하지 않은 그녀는 운명이 그녀에게 몰랭 선생님이라는 구세주를 보냈을 때, 그의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결국 자유의 길을 찾아냈다. 

탈출에 성공하고 나서 겪은 후유증 역시 책으로 탈출한다. 책을 통해 '삶의 수단'을 익히고 인문학 등 여러 접근법을 접목한 심리학 서적을 읽으며 치료에 성공했다.

어린아이가 암흑에서 책을 동아줄 삼아 버티며 탈출했던 이야기를 보았으니, 다음은 성인이 책에 대한 기억을 동아줄 삼아 버티고 살아남은 이야기인 유제프 차프스키의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를 읽어보아야겠다. 

만약 나에게 운명이 보낸 구세주의 손을 잡아야할 때가 발생한다면, 그의 손을 잡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

 

48. 나는 선생님의 딸이 '선택'했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 선택이라니, 하라면 그냥 하는 것 아닌가?

70. 말을 금지하는 벌은 생각보다 훨씬 힘겹다. / 내가 죽음의 유횩에 빠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텅빈 침묵 앞에서 찾은 놀라운 위안, 동물들과의 대화 덕분이다.  / 음악도 대화를 한다.

83. 동물들이 우리에게 기쁨을 가르쳐주기도 하는 걸까?

85. 고르는 건 즐거움이 아니다. 나약한 자들만이 고르느라 망설이고, 그렇게 즐거움을 찾는다. 인생은 오락이 아니라 가차없는 전투임을 잊지 말거라

86. 도대체 아버지는 왜 계속 나를 의심할까? 나는 단 한 번도 크리스마스트리를 꿈꿔본 적이 없는데

92. 서로를 바라보는 게 우리에게는 너무 낯선 일이다.

128. "넌 겁쟁이야! 비겁해! 평생 제대로 된 일 하나도 못하고 말 거야!" / 내가 스스로의 비겁함 앞에서 느끼는 그 압도적인 경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132. 아버지의 가르침은 늘 이렇게 끝난다. "우리집 철책 담 밖은 암흑에 빠진 동굴이다. 너는 집 안에서 내가 가져다누는 빛과 자유를 누릴 수 있지. 넥 얼마나 운이 좋은지 기억하거라!"

137. 나는 그레고르다. 하지만 따라가야할 모델을, 본보기를, 이상을 찾았다. 당테스가 나에게 자유의 길을 보여준다.

141. 설사 그것이 쓰레기라 해도, 내 바이 커튼 안감에 정성스레 숨겨둔 나의 소중한 물건들의 가치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 그것은 예기치 않게 찾아왔기에 마치 마법과도 같았던, 경이로웠던 탈출의 도취를 환기시켜준다.

159. 아버지가 우리를 가두어놓은 이 세상 전부가 사실은 탁월한 통찰력이 아니라 은밀한 고통에서 나온 게 아닐까? /  도망쳐

173. 이제는 가구와 물건과 책을 모두 다른 자리로 옮겨 놓고 싶다. 일과표의 일정들도 마음껏 바꾸고 싶다. 마침내 가능한 변화의 문이 열린 듯한 기분이다.

194. 망설임 끝에 나는 지극히 사소한 한 가지 규칙을 어겨보기로 한다.

212. 페리소가 슬픈 눈으로 나를 쳐다볼 때마다, 그 눈이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왜?" / 페리소의 '왜?'가 지금껏 내 머릿속에 맴돌던 모든 '왜?'들과 하나가 되어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214. '눈에 보이지 않는 친구들'과의 대화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해온 일이다.

217. 아니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바보 취급하며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하게 된다.

253. 책에서 읽는 이야기들이 나를 물들이는 걸까?

261. 다행히도 음악과 독서가 내 마음을 달래준다.

293. 집 밖에 한번 나가본 뒤로 나는 마치 마약을 처음 맛본 사람처럼 죽을 듯한 갈증을 느낀다.

310.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벌써 아버지가 그립다. 나는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서 도망치고 싶다.

312. 나는 경이로울 만큼 행복하다 / 내가 있는 곳은 수용소가 아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연주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다.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다른 연주자들, 그리고 다른 인간들과 함께 흥에 젖기 위해 연주한다. / 나는 내 부모의 집을 나왔다. 정말로 나왔다.

313. "언젠가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감탄하리라."

315. 하지만 한참이 지난 뒤, 내 안에 남아 있던 두려움들이 결국 나를 장악해버렸다. 더이상 유년기의 상처를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319. 그 책들을 읽는 시간이 나에게는 진정한 치료였다.

322. 하지만 나는 결국 자유의 길을 찾아냈다. 우선 나에게는 생명 넷으로부터 조건 없는 사랑과 애정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개 한 마리, 조랑말 둘, 그리고 오리다. 나에게 우정을 베풀어준 사람들도 있었다.

323. 그렇게 운명이 나에게 구세주를 보냈을 때, 나는 그의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334. 과거에 갇히지 않으려면 우리는 필사적으로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 모드의 이야기를 읽으면 그럴 용기가 솟는다.

339. 그 속에서 살아온 아이에게는 그런 아버지도 세상의 전부라는 사실이ㅏㄷ. 그래서 어린 모드는 아버지를 수치스러워하고 증오하면서 동시에 그 수치심과 증오심에 죄의식을 느낀다.

340. 모드가 딸을 위대한 인간으로 만들겠다는 아버지의 망상과 폭력의 희생자였다면, 자닌의 감정의 밑바닥에는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유년기의 슬픔이 자리잡고 있었을 테고 / 어린이 된 자닌은 나쁜 엄마이지만, 사실상 그녀는 어른이 될 수 없었던 아이다.

341. 모드 쥘리앵이 이 책에 "식인귀의 첫 희생자였던 나의 어머니에게"라는 헌사를 붙인 것은 끝내 포식자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 어머니를 향한 아마도 불가능할 화해의 기원이었을 터다.

342. 모든 슬픔은 이야기될 수 있을 때 견딜 수 있다는 유명한 말처럼, 내면 깊숙이 눌려있던 고통을 말로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가장 깊이 화해하는 방법이고, 그것을 책으로 내어놓는 것은 그동안 온전히 안에 들어가 머물 수 없었던 세상과 화해하는 방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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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물에 대하여 - 2022 우수환경도서
안드리 스나이어 마그나손 지음,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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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 ~ 2.6

할아버지가 빙하에 있는 할머니를 사진을 찍는다. 손자는 왜 할머니를 더 찍는 게 아니라 빙하를 찍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수십 년 뒤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빙하가 사라졌다. 빙하 같은 거대한 지질 현상이 사람의 일생 중에 사라진 다는 것은 우리의 이해 범위를 뛰어넘는다.


우리는 20세기 내내 지구가 이익을 내야 한다고, 산출을 늘려야 한다고 요구했고 우리는 빈 곳을 점점 더 메워갔으며 그것을 상식이라고 불렀다. 우린 별 쓸모도 없는 가상 화폐 비트코인을 채굴하느라 수백 수천 메가와트를 쓴다.


이제 지구는 지질학적 속도를 버리고 인간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수천만년 동안 생성된 자연이 100여년의 시간 만에 크게 변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인류의 영향이 너무 광범위해져서 우리가 새로운 지질시대에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는 인류세라고 이름이 붙여질 것이고,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 낙원을 물려받아 망쳐버린 세대가 될 것이다.
미래 세대의 경멸이 두렵다.


최근 유엔 보고서는 결론에서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부터 지구를 구원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고 지칭했다고 한다. 절망스럽지만 그래도 아직 무엇인가 해볼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책을 읽다보면 지금 주변에 있는 일회용품, 끄지 않은 화장실 불이 미래 세대에게 너무나 미안해진다. 작가는 환경 파괴의 위험성을 단순히 통계 수치 나열로만 말하지 않는다. 지구의 시간, 우리 보다 윗세대의 시간, 우리의 시간, 그리고 미래의 시간을 이야기로 풀어내며 사실뿐 아닌 감정에게까지 호소하며 말한다. 아마 답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그 나름의 최소한의 해결책이었겠지 싶다.

 

알게된 사실들) 

  •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21세기 말까지 빙하의 30퍼센트가 사라질 것.
  • 지구 온난화를 1.5도 이내로 유지하더라도 빙하는 구할 수 없을 것. 
  •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퍼센터의 1인당 배출량은 가장 가난한 10퍼센트 175명의 배출량과 맞먹는다. 반대로 기후변화의 결과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혹독하다. 이들은 자신을 보호할 형편이 못 되며 자유롭게 이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 현재 상황으로 보건대 지구 온도는 21세기 ㅁ라까지 3도 내지 4도 상승할 것이다. 이 정도의 온난화는 핵겨울 규모의 결과를 동반할 것이다.
  • 중국이 2004년부터 3년간 해마다 쓴 시멘트는 미국이 20세기 내내 쓴 양보다 많았다.
  • 2018년 현재 중국에서 비어 있는 아파트는 약 5000만 채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정도면 독일 인구를 모두 수용할 수 있다. 프랑스까지도.
  • 대기 중 CO2의 50퍼센트는 1990년 이후의 배출로 인한 것이다.
  • 앞으로 80년간 바다의 수소이온농도는 지난 5000만 년보다 더 많이 변할 것이다. 수천 년간 건재하던 고대의 빙하와 영구동토대도 이후 80년간 녹아버릴 것으로 전망된다.
  • 북유럽: 서리에서 생겨난 암소 아움드라에서 네 줄기 젖의 강이 흘러 세상이 시작 / 티베트: 카일라스 산에서 나오는 네개의 강(인도,티벳, 중국, 파키스탄..) => 소, 빙하가 신성시 되는 공통

 

p. 113. 이 세상은 긴밀한 상호 의존으로 엮여 있기 때문입니다.

p. 114. 전문가들은 북극, 남극에 이어 세 번째 극이 있다고 말합니다. 세 번째 극은 티베트 고원을 말합니다.

p. 115 숫십억 명의 사람들이 티베터와 히말라야 산맥에서 흐르는 빙하와 빙하수를 생계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p.130 아움드라를 차지하는 것은 아시아의 주요 물 공급원을 장악하는 것이다.

히말라야 빙하 녹음 -> 계절적 변동 완화 못함 -> 가뭄 등 문제 발생 -> 지역을 차지 하기 위한 전쟁 발생 가능

p.132 많은 과학자들이 자신의 발견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집단 히스테리를 부추긴다는 비난을 들을까봐서다.

p.135. 최근 유엔 보고서는 결론에서 이렇게 잘라 말한다.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부터 지구를 구원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고.

p.137 과학자들은 인류의 영향이 너무 광범위해져서 우리가 새로운 지질시대에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인류세라는 이 이름의 시대는...

p.147 지구는 지질학적 속도를 버리고 인간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대응은 빙하걸음이다. 우리는 다음 회의 장소를 정하기 위한 회의나 열고 있다.

p.153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단 한 사람이 운석 폭풍에 맞먹는 폭탄을 발명할 수 있는 시대고, 한 가지 패션이 유행하는 것만으로 동식물에게 치명적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시대다.

p.156 문제는 인간이 한계를 모른다는 것이다. 인간은 만족을 모르며 자신이 도를 넘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p..157 우린 별 쓸모도 없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채굴하느라 150메가 와트를 쓴다.

p.158 20세기 내내 우리는 지구가 이익을 내야 한다고, 산출을 더욱 늘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리는 빈 곳을 점점 더 메워갔으며 그것을 상식이라고 불렀다.

p.160 동물 종 전체를 구하는 것은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일 중 하나일 테지만, 소규모의 사람들이 수백만 년 묵은 종의 역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얼마나 독특한가를 웅변한다.

p.166 우리는 수치스러운 조상이 될 것이다. 우리의 모든 이야기는 그 결과로 인해 막중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170. 세상은 이야기로 가득하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모든 삶은 필생의 역작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이야기를 살아야 한다. 비외르든 할아버지에게 당신이 태어난 뒤로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것이 언제 같으냐고 물었다. "지난 10년이었지"

200. 바트나예퀴 빙하 같은 지지 현상이 사람의 일생 중에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의 이해 범위를 뛰어넘는다.

나는 할아버지가 빙하에서 찍은 영상을 보다가 할머니의 모습을 더 찍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 적이 있다. 할머니의 젊음은 한때 뿐이지만 빙하와 풍경은 언제든 담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떤 것이다. 알고 보니 빙하는 사람만큼이나 덧없는 존재였다.

208.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협력임을 인류가 깨닫는다면 정말로 힘을 합쳐 해결하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 몰리기 전에는 그럴 리 없을 겁니다.... 그건 생활양식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기 전에 변화를 진지하게 모색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214. 우리가 마침내 측정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들은 우리가 너무 강해지고 커진 탓에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215. 우리에게 중세 아이슬란드 사제인 현자 사이뮌드르의 악마와 같다. 모든 이야기의 끝에서 사이뮌드르는 지독한 곤경에 빠지고 만다. 악마는 사이뮌드르에게 봉사의 대가로 영혼을 내놓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달라고 요구한다.

229. 여분의 에너지는 무척이나 고마운 혜택이었다. 문제는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과소비와 낭비에 빠졌다는 것이다.

236. 우리는 죽음이 되고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고.

237. 우리 시대를 특정짓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말을 둘러싼 투쟁이다.

249. 경제성장은 지속 가능성과 지속 불가능성을 구별하지 않는다. 튼튼해지는 것과 뚱뚱해지는 것, 자궁에서 태아가 자라는 것과 종용이 자라는 것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상상해보라. 그들에게 성장은 무조건 좋은 것이다. 양성이든 악성이든.

250. 찌꺼기와 동물 사체는 언제나 다른 종에게 영양소를 공급해온 반면, 우리는 유독하고 쓸모없고 자연에 해를 끼치는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최초의 종이 되었다.

273. 산성화의 결과 한 가지는 해수의 칼슘 포화도가 감소하여 바닷물이 아포화된다는 것이다....과포화된 바다는 석회를 방출하는 반면 아포화된 바다는 석회를 흡수하여 조개껍데기와 산호초를 녹인다. 아포화 현상은 바다의 성질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으로.

275. 기후변화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예전에도 대소빙기가 있지 ㅇ낳았느냐고 반박할 수 있지만, 해수 산성화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빙기 변동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다.

277. 불확실성을 일으키는 또 다른 티핑 포인트는 알래스카, 캐나다, 시베리아의 영구동토대다. 수천 년간 얼어붙어 있던 토양이 녹으면 미생물이 살아나 아산화질소-일명 웃음 가스-를 내뿜는데, 이것은 C02보다 300배 강한 온실가스다. c02보다 다섯 배 강한 온실가스인 메탄도 배출될 것이다.

278. 우리는 산호초를 희생시키기로 결정한 세대다. 그리고 산호초는 전체 그림의 1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바다는 바다 상층 플랑크톤의 광합성 작용을 통해 지구 산소의 약 60퍼센트를 생산한다.

327. 마하트마 간다의 말이 꼭 들어맞았다. "지구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지만 모든 사람의 탐욕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354. 너희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2260년까지도 살아 있을 거라고!... 그게 네가 연결되어 있는 시간이야. 250년 넘게 말이지. 그건 너희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시간이야. 너희의 시간은 너희가 알고 사랑하는 누군가, 너희를 빚는 누군가의 시간이자 너희가 알고 사랑하는 시간, 너희가 빚는 시간이란다.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어. 너희는 하루하루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단다.

356. 최근 몇 달간의 사태에서 아포칼립스-종말을 연상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리스어 '아포칼립스'의 진짜 의미는 무언가를 '폭로'한다는 것이다.

358. 지난 몇 달간 우리는 최악의 습관 중 많은 것들을 버려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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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집에서 플라스틱이나 병이 생기면 가능한 한 깨끗하게 해서 아침에 밖에 빼둔다. 원래는 저녁에 두어야 하는데, 아침에 빼두어야 할머니들에게 기회가 생기기에 일부러 아침에 빼두곤 했다. 그게 용돈일지 아니면 생계일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그러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얼마나 모아야 돈이 될까? 저분들은 어떻게 재활용품을 모을 생각을 하셨을까? 왜 서울시나 정부에서는 하청업체를 통해 깨끗하게 정리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거기에 대한 답과 함께 더 큰 숙제를 던져준다.


재활용품 수집 노인이 생겨나는데는 재활용품이 과다하게 배출되는 도시와 돈이 필요한 노인, 그리고 재활용 산업이 맞물려 있다.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은 여기서 발생하는 제도적 빈공간에서 재활용품을 '낚아채어' 수입을 만들고, 그걸로 생활한다. 그들은 사회의 복지에서도 희망의 상징인 시간이라는 흐름에서도 그들이 쌓아왔던 가족에게서도 멀어져 있는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사회와 법의 사각지대에 있지만, 생계에 관련된 재활용품 가격은 막상 '시장' 논리로만 정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있다.


현실을 알게 되니 마음이 더 답답해졌다. 사회 구조적으로 너무도 복잡하게 꼬인 노인들의 현실을 정부와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것 같아 더 그렇다.


이 책은 작가가 만난 다수의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의 정보를 이용해 현실적이고 전형적인 70대 여성 노인을 가상으로 만들어내어, 그녀의 하루를 보여주며 그런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 구조, 제도, 시대 등 관련 정보들에 대해 알려주는 방식을 취한다.


가상의 그녀를 통해 우리 사회의 노인 일자리 사업의 민낯. 복지 정책의 민낯을 볼 수 있다. 도대체 왜 나라가 힘들 때 시대의 중심에서 국가와 사회의 변화 때문에 고통을 겪고 그 결과를 사는 이들을 왜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확인했고 문제를 알았다면 문제를 풀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이번 문제는 너무나도 복잡하게 꼬여있어 정부마저도 암묵적인 '재활용품 수집'을 허용할 뿐 풀어낼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기에 희망을 찾기가 너무나 어렵다.


그래도 우린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바로 보아야 할 것이다. 거기가 출발점일테니.


한국사회에서 가난의 모습은 늘 변해왔다. - P9

이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비중이 가장 높은 건 현재의 노인 세대로, 노인들의 가난은 그 구조가 복잡하게 꼬인 산물이다. - P9

노인들은 생존을 위해 자연스레 제도 바깥의 노동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생존 경로가 바로 폐지를 줍는 일(재활용품 수집 노인의 등장)이다. - P10

현재의 여성노인들은 직접 임금노동자가 될 기회가 별로 없었고, 이로 인해 경력과 숙련이 없는 상태였다. 다시 말하자면, 가난한 여성노인은 이전의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 P12

이 책은 가난한 삶의 경로와 우연하지만 필연적이었던 구조들을 가시화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 P13

더 나아가 이것은 70대 중반의 여성의 평균적 존재를 구상해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 P18

과거 넝마주이의 일이 넝마주이와 고물상과 폐품 매입업자 사이의 단순한 거래 관계였다면, 지금 재활용품 수집 노인은 이보다 더 고도화된 ‘관계‘에 갇혀 있다. 이제 노인들이 재활용품을 수집하고 판매하는 행위는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의 자원순환 정책과 재활용 산업에 매개되어 있다. 그렇지만 제도와 산업, 그 어디에서도 인정받지도 보호받지도 못하는 위험한 일에 불과하다. - P31

이렇게 빈곤율의 추이가 나아질 수 있다고 안심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기다림은 잔혹하다. 해방기에 태어난 지금의 노인 세대가 양극화된 사회를 버티다 사망해야만 이루어지는 결과이므로.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노인이 "사회보장제도가 안착되기 전에 이미 노령기에 접어든 이들이라 노후생활의 안정을 위한 도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인구집단"이라는 특이점을 고려해야 한다. - P48

지금의 노인들은 (안정망이 구비되고 노후를 준비할 수 있었던) 이후 세대와 달리 자력갱생의 요구를 받았다. - P51

몇몇 노인들은 가족으로 인해 정부로부터 지우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겪기도 한다...‘부양의무자‘로 인한 문제다....이는 개인이 아닌 가족 전체의 부를 기준으로 사회복지 서비스를 이용할 자격을 부여한 것으로, 가족이 개인을 부양할 의무가 있다는 옅어진 관습의 흔적이다. - P54

그 수치의 정합성을 떠나, 이 170만 명이라는 수는 재활용품 수집을 하는 이가 (당시) 국가의 적극적인 보장을 받지 못하는 계층일 것이라는 당시의 인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으로서 의미가 있다. - P65

1995년 들어 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생겨나면서 상황은 급변하였다. .. 이전까지 넝마주이와 고물상이 재활용 업체와 직접 거래를 해왔지만, 이 시기부터 공공영역이 재활용 산업에 개입하였고, 관리의 직접적인 주체가 됐다. - P68

골목에서의 ‘문전수거 방식‘은 빈틈을 낳는다.... 노인들의 재활용품 수집은 제도로부터 재활용품을 ‘낚아채는‘ 일이다...재활용품 수집은 정책과 제도의 빈틈이 만ㄷ르어낸 변종의 직업이라고 보아야 한다. - P74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은 제도 바깥의 영역에 존재한다. - P76

노인들의 재활용품 수집은 비공식적인 노동이며, 도시가 온전히 공식적으로만 작동할 수 없으며 비공식성으로도 작동한다는 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례다. 그러나 허가와 신고를 거치지 않고, 일종의 사각지대로서 암묵적인 용인 아래 유지되는 상황이다. - P79

이 가격은 제도에 의해 정해지기보다는, 최종 구매자인 제지업체가 정한 가격에서 중간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윤들을 뺀 가격으로 결정되는 형편이다. - P104

고물상과 노인들은 모두 일종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며 사회의 암묵적인 용인으로 유지되는 상황이다...(중략)...
고물상을 통한 ‘지원‘은 사실상 어렵다. 고물상의 불안정한 혹은 불법적 처지 때문이다...(중략)
재활용품의 가격 산정 과정은 ‘시장 논리‘라는 수사 외에는 달리 설멸할 길이 없으며... - P110

제도와 재활용 산업의 먹이사슬 끝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위험한 직업 - P112

영자씨의 주도적인 선택이라기보다 그녀가 휘말렸던 국가와 사회의 유동적인 변화 과정이었다. - P128

국가는 헌법에서 개인이 가지는 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국가는 자신의 의무를 개인에게 전가한 면이 있으며, 개인은 스스로 살 방법을 강구하며 스스로 일어서야 했다. - P131

한국사회의 고용 정책은 65세 전후의 나이인 은퇴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은 더 이상 노동하지 않게끔 계획됐다...(중략)... 산업은 노인을 은퇴자로 이해하지만, 복지 정책은 노인을 복지사업의 참여자로 이해하는 상호 모순적인 상황이다. - P142

노인일자리사업은 한국사회가 지금의 노인들에게 은퇴 후에 더 낮은 질의 노동을 하여 생존하라는 생애경로를 제시하고 있는 예로 여겨진다. - P144

노인에게는 가사노동을 줄일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노동이 필요하다. - P146

재활용품 수집 노인의 문제는 사회복지정책뿐만 아니라 재활용정책이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 P182

재활용품 수집은, 노인들에게 허용된 몇 안 되는 생계 방편이다. 이 현상에는 재활용품이 과다하게 배출되는 (행정력이 부족한) 도시와 돈이 필요한 노인, 그리고 재활용 산업이 맞물려 있다. - P202

그렇지만 이제는 ‘가시적인 빈곤이 사라진‘ 시기다. 단순한 관찰과 입소문으로는 속사정을 알 수 없다. - P205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들은 청소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게 아니라, 재활용 산업에서 발생하는 돈 일부를 스스로 취하고 있을 뿐이다. - P207

누군가의 가난을 보며 사회 체제의 불안정함과 미비함을 깨닫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깨달음은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이 아니라 스스로의 상대적 안정감을 확신하고 불안정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하는 것으로 이어질 따름이다. - P209

현재의 지원 형태는 노인들을 ‘치사‘하게 만든다. - P224

만약 정부에서 이 사업들을 마땅한 ‘일자리‘라 여긴다면, (노동자의 자격 조건을 논하기 전에)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갖춰야 하는 건 아닐까? - P228

근근이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자립보다, 함께 모여 서로에게 의존하는 자립이 필요하다. - P229

한국사회는 노인이 되어서도 일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일하는 즐거움이나 자아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러면서도 충분한 복지 혜택은 없고, 노후의 생계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맡겨둔다. - P230

경로당에는 복지관과 주민센터와 지역의 여러 자원을 잇는 ‘소문을 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 P250

노인들을 선발해 돈 벌 기회를 주는 선별적인 정책으로만 땜질하는 복지로는 문제가 계속될 뿐이다. - P255

이 사회에서 모두가 신체의 속도와 살아가는 방법이 각기 다르다는 걸 이해한다면 좋겠다 - P265

산업 역시 노인계층을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사회복지사업으로 ‘노인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즉, 깆ㄴ의 산업 바깥에서 일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일자리사업이 제공할 수 있는 일이란 질이 낮을 수밖에 없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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