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0
뮤리얼 스파크 지음, 서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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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은 세계만으로도 우리는 큰 세계를 표상할 수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브로디 무리가 표상하는 어떤 세계를 볼 수 있었다.

브로디 선생은 자신을 따르는 소녀들을 자신들이 하나의 그룹으로 생각하게 키워낸다. 다른 이들보다 좀 더 똑똑하고 특별한 선택을 하며 매력적인 어떤 그룹. 

읽으면서 브로디 선생, 로즈, 샌디, 메리 등 각자의 매력이 가득한 이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에 빠져든다. 서술하는 형식 역시 미래와 현재를 넘나들고 샌디의 몽상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등 흥겹다.

거기에 배신자는 누구인가라는 작은 장치까지 더해져 소설이 지겹지가 않다.

하지만 읽다보면 무엇인가 이상한 점을 느끼기 시작한다.

매력적인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자평하는 브로디 선생에게 이상한 점들이 보인다.

연애의 부도덕한 부분들, 브로디 무리를 자신의 입맛대로 키우려고 하는 점, 소녀들의 성장마저 조종하려 하는 모습 등

그리고 그것들을 정당화시키려고 하고 자신의 '전성기'를 주장하며 자기 확신을 통해 특별한 존재로 남는다. 그 모습은 그녀가 소설 이곳저것에서 힌트를 주던 그녀의 파시스트적 모습이다. 

그리고 미술 선생과 음악선생과의 관계를 통해 볼 때 그녀는 도덕적이지도 않다.

브로디 선생이 가장 믿던 샌디는 결국 미술 선생의 그림에서 브로디 무리의 모습들이 전부 브로디 선생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본다. 그렇게 각자의 개별성 회복에 실패한 것을 보고 브로디 선생을 배신한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도덕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부터 성장, 파시즘으로 설명할 수 있는 집단의 모습 등 겨우 160페이지 남짓하는 작품에 수많은 내용들이 들어 있음이 신기했던 소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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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김민철 지음 / 미디어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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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해외여행이 삶에서 필수이거나 필수에 가까운 요서는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국내 여행파이고 이유는 단순하다. 비행기 값으로 술 사 먹기 위해서. 즉 내게 있어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내가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술 마시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보단 술에 방점이 찍혀 있어서 해외여행만을 고집하진 않는다.


김민철 작가님은 술이나 여행 스타일에 있어서는 나와 같지만 여행의 중요도는 정반대인 것 같다. 그녀는 여행을 가야 하는데 여행을 갈 수 없기에 기막힌 방법을 찾아낸다. 그렇게 나온 책이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이다. 김민철 작가님은 '모든 요일의 여행'에서 처음 만났고, 그 책은 나에게 있어 최고의 여행기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또 여행에 관련된 책이 나왔으니 어찌 읽어보지 않을 수 있을까(선물 받은 것이다)


그녀가 찾은 방법은 과거에 갔던 여행지에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과거의 여행을 회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 인화된 사진을 보며 그때가 좋았지라며 잠시 즐거워한다. 하지만 그건 단지 회상일뿐이다.


김민철 작가님이 원하는 것은 정말로 여행을 떠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상상의 여행을 간다. 과거의 여행지로 여행을 갔다고 상상하고 그 여행지를 다시 느끼기 위해 그녀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 여행을 떠난 감각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에게 그 경험을 설명해버리는 방법을 취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여행 중 만난 할아버지, 열쇠공, 자기 옛 친구, 이모, 남편 등에게 편지를 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기서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이 모든 것이 왜 여행에서 중요한지 등등.


내가 편지를 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상상을 해보고 내가 이 편지를 쓰고 있다고 상상을 해보면, 여행 간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 여행지에서 겪은 일들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그 마음이 생겨난다. 이것도 여행자의 마음 중 하나이기에 난 잠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된다.


책의 타이틀인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는 여행을 가지 못한 우리가 여행을 떠난 우리를 잊지 못한다는 의미인듯 싶다. 민철 작가님은 아무래도 여행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기에, 여행을 포기할 수 없는 이들에게 "이 시간을 건너면 다시 여행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는 말을 건네며 이 책을 통해 우리를 잠시 여행지로 떠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 책은 단순한 여행지에 대한 감상이 아니다. 거기서 느낀 것들을 여행자의 모습을 고찰하고, 자신의 변화, 환경 문제, 소수자에 대한 문제로 까지 연결시키는 모습에서 진정한 여행의 가치까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은 '술을 마셔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리스트 이기도 하다. 브라보.

꿈을 꿨습니다 - P11

하지만 아름다움이 언제부터 고정되어 있던가요. - P24

여행자는 우연을 운명으로 바꾸는 사람이죠 - P25

목적지가 없었지만, 바다가 보인다면 순식간에 목적지는 바다가 되지. - P32

병뚜껑이 습관이 아니라, 당신이 습관이 된 거야.
파도가 계속 밀려오듯이 당신 생각이 자꾸 밀려와서 발목을 적셔. - P37

이 결정을 여행자의 마음으로 밖에 설명할 수가 없네요. 어떤 것에도 정박하지 않는 , 매 순간 낯선 지명을 향해 돛을 펴는 여행자의 망므이라고 설명할 수밖에요. - P41

여행자인 주제에 여행자들이 많은 곳은 피하는 이 고집은 도대체 어디서 생겨난 걸까요? - P43

결국 저는 여행자의 본분을 택하기로 했어요. 약간이라도 익숙한 것들을 뒤로하고, 낯선 것들 사이를 헤매기로 했어요. - P46

경험한 적도 없는 보뉴의 모든 순간들이 이미 그립거든요. - P47

효율적인 아름다움의 세계에서 막 건너온 나는 그 광대하고도 찬란한 빛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던 기억이 나. - P56

물론 그 순간이 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 도대체 어떤 소용이냐고 묻는다면 입을 다물게 되지. 하지만 이미 경험한 사람의 별은 아무나 훔쳐 갈 수 없어. 그 별은 누구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는 너만의 별. 여행자라면 누구나 이마에 박고 살아가는 자신만의 별. - P58

이런 골목 안에 나를 떨어뜨려놓으면 나의 목표는 오직 하나가 되는 거. 길을 잃어버리기. - P61

더 빨리 가고 싶어도 속도를 조절하며 또 멈춰 서야 해. 더 가고 싶어도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멈춰 서야 해. - P65

이 모든 것을 만나기 위해 나는 기어이 여기까지 온거야. - P66

하지만 무슨 상관이겠어. 행복의 연금술이 이미 내게 있는데. 어디서든 순식간에 행복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 P67

마법같은 일이 우리에겐 일어나는 법이죠. 여행 중에는 좀 더 자주 일어나고요. 우리가 여행자의 영혼을 데리고 다니니 말이에요. 기꺼이 탄복하고, 사소한 물음도 오래 곱씹고, 매 순간 진심인 여행자의 영혼 말이에요. - P94

추천과 선물의 공통점이 있죠. 둘 다 상대의 마음에 꼭 맞길 원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잇다는 것. 다만 선물은 오롯이 상대의 취향만을 생각하면 되죠....(중략)
근데 추천은 좀 이야기가 다르죠. 내게 좋았던 것 중 상대에 마음에 꼭 맞는 것을 골라내는 과정을 거쳐야 하잖아요. - P101

그 여행을, 좋았던 순간을, 해맸던 순간을, 좀 돌아가고도 싶었고, 좀 더 오래 머물고도 싶었던 그 순간을 작은 기념품에 담고 싶으니가. 절박하게 기억의 한구석을 손에 잡히는 무엇으로 바꿔서 가지고 싶으니까. - P120

딱 소화하기 좋을 정도로 작고 가벼운 사고. 여행자의 이 간사한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 P174

사람이 희미해져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그 사람의 어던 부분도 남아 있지 않은 무채색의 존재가 거기 서 있더라고요. - P181

구체적인 행복을 열망할수록 가난해지는 기분. - P182

한 도시의 영혼은 어디 한 곳에 고정되지 않는 법이라고, 당신 영혼에 꼭 맞는 이 도시의 영혼을 찾아보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 P183

매순간 이 여행이 내 마음에 꼭 들도록 만드는 것을 나의 유일한 목표로 삼으며 여행하고 있어. - P226

움직이는 여행자의 몸속에 이토록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라니. - P228

나에게 공항은 거대한 불확실성의 세계, 원치 않는 우연이 자꾸 개입하는 세계, 빨리 통과하고 싶은 세계에 불과해
..(중략)...
희박한 시나리오들이 그 짧은 순간에도 끝없이 반복돼. 그러다가 결국 여행 떠나온 걸 자책하는 순간까지 있다니까. - P248

여행자 김민철은 내 여행의 범위를 자꾸만 고민하는 사람이네요.
...(중략)...
고민 없는 사람보단 고민을 하는 사람이 낫겠죠. 심지어 좋아하고, 닮고 싶은 사람이 온몸으로 던져준 고민이라면 나도 그 고민을 정면에서 온몸으로 받아야 마땅하겠지. - P261

근데 그거 아세요? 기억하려고 애쓸수록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들은 다른 것들이었어요. 거침없이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사람들...
(중략)
‘정상‘에 대한 비정상적일 정도의 집착. 조금만 달라도 ‘정상‘이 아니죠. - P271

목소리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 목소리를 낼 땐, 귀 기울여야 하죠. - P282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지. 사람의 부드러운 위로가 아니라 거칠고 명징한 바다의 위로가 필요하다는 걸. 아무도 없는 겨울 해운대라면 그런 위로를 해줄 수 있다는 걸. - P284

마음이 이미 바닷가에 도착해 있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몸이 무슨 힘이 있겠어요. 재빨리 마음을 따라잡으러 달려 나갈 수밖에 - P291

과장법이 심하다고요? 여행자잖아요. 과장법은 여행자의 특권인걸요. - P292

고치려면 시간이 걸릴 거예요. 어쩌면 오래도록 제자리걸음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하죠. - P298

제 곁의 양지를 조금 넓혀봐야겠어요. 그곳에 어떤 씨가 싹을 틔울지 알지 못하잖아요. - P299

공항 밖으로 나서면 갑자기 무대 조명이 꺼지고 관객석에 형광등이 켜진 것 같은 그 돌연한 환기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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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동자 안의 지옥 - 모성과 광기에 대하여
캐서린 조 지음, 김수민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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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의 서평단 활동으로 케서린 조의 『네 눈동자 안의 지옥』 의 초반부를 받아서 읽어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논픽션이다. 캐러신은 아이를 출산한 후 갑작스레 '산후 정신증'이라는 정신적 문제가 발생하고 정신병원에 갇힌다. 그녀는 처음에는 자기 자신마저 현실이 아니게 느껴질 정도였으나 남편과 자기 아들을 적어둔 가계도를 시작으로 차츰 기억과 현실을 찾아간다. 이 작품은 그 과정에서 남편이 준 노트에 적어나간 기록들이다. 주인공의 노력들에서 우리는 기억을 기억하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기록이 인간 정신에게 얼마나 건강한 행위인지를 다시 깨닫게 해준다.

서평단 활동으로 받은 부분까지에는 케서린이 아직 정신증 발작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 그 원인이나 극복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확인하고 싶게 만든다. 구매각? 문장이나 문단의 호흡 역시 굉장히 짧고 빨라 읽기가 좋아 다른 일을 하면서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재밌는 것은 작가의 이름에서 드러나듯 한국계 미국인이다. 작품 시작부터 한국의 출산 전통 이야기로 시작하여 중간중간에 한국 사람인 내가 보기에는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는 설화, 전래 동화, 민간 전설 등을 삽입했다. 나에겐 식상할 수 있겠지만,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신기한 이야기들과 풍습이 아닐까? 그런 이야기를 한국계 미국인이 쓰고 그렇게 쓰인 외국의 한국 이야기를 한국 사람인 내가 읽는 순간순간의 매력은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다.

 

#네눈동자안의지옥 #캐서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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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세대 -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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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사회를 만들겠다고 자신들을 희생해가며 운동하던 사람들을 지도 권력으로 만들었고 변화된 세상을 기대했다. 자유로운 개인이 서로 존중하고 사회적 위험을 분담하고, 노동의 대가를 적절히 공유하는 사회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더 안 좋아진 것도 같다. 왜 일까?

이철승의 <불평등의 세대>는 그 이유를 들려준다. 

핵심은  386 세대가 자신들의 네트워크와 세대의 기회(운)를 통해 이 위계 구조의 상층을 '과잉 점유'하면서 세대와 위계가 얽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네트워크는 민주주의 투쟁 등 이념으로 만들어진 연대와 그 이념으로 만들어진 노동조합 등 단체이다. 운은 금융위기와 베이비붐이라는 시대를 타고났다는 것, 세계화와 디지털화가 진행되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산업화 세대는 동아시아 특유의 벼농사 문화로 인한 '협업'과 '위계'의 원리를 국가 성장을 위한 국가 관료제와 기업 조직에 최초로 이식했다. 이후 세대인 민주주의를 외치던 386 세대는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토대로 중심부로 진입해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를 결합시켰다. 금융위기 때 비정규직이라는 유연화된 위계구조를 만들어 그들의 시스템을 공고히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그들은 윗세대에서 배운 부의 세습을 그대로 반복한다.

그들이 약속했던 평등은 오간데 없고 세대 간, 세대 내 불평등은 더 늘어가고 있다.

결국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는 한 정부의 지키지 못한 약속이 아닌 이 세대의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리고 아직도 그 거짓말을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인다.

<빌리어드>, <재즈>의 작가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 토미 모리슨은 1992년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지식 없는 지혜, 데이터 없는 지혜가 단지 직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참으로 쉽게 잊곤 합니다." 소설가마저도 이러는데 사회를 해석함에 있어서 데이터는 당연히 뒷받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좋은 점은 모든 주장은 그 데이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 사회의 문제를 세대론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그 주장 하나하나가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고, 충분히 맞아떨어져서 책이 밑줄 투성이다.

세상에 불평하고 변화를 꾀하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단순한 감이 아닌 과학적 분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면, 뭔가 위화감을 느끼는데 정확히 뭐라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매우 좋은 인사이트를 주는 책이다.

386 세대가 권력을 잡고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어쩌면 더욱 심화된 ‘불평등 구조‘를 가진 사회가 되었다. - P16

이 책은 ‘민주주의의 완성‘과 ‘불평등의 심화‘가 공존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해명하기 위해 ‘세대론‘, 즉 ‘세대의 정치‘를 이야기한다. - P17

왜 386 세대의 네트워크가 문제가 되는가?
첫째는 그 규모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그 규모에서 다른 모든 세대를 압도한다.
둘째는 그 네트워크의 응집성이다. 이 세대의 네트워크는 ‘평등주의‘ 혹은 ‘분배 정의‘라는 기치 아래 20대 초부터 선후배 및 동년배간.. 등의 조직을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셋째는 ..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겪었다는 점이다.
넸재는 세대 내의 이념 충돌이다... 산업화 세대가 협업과 위계의 원리를 국가 관료제와 기업 조직에 최초로 이식했다면, 이 세대는 그 위에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를 결합시켰다. 한 세대 안에 ‘평등주의‘와 ‘시장주의‘가 동시에 태동한 셈이다.
다섯째는 이 네 요소가 ‘정치, 경제적 이익 네트워크‘로 전환되어 ‘권력의 과두제화 독점‘이 장기화되면서 발생하는 문제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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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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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는 상실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애도의 가장 좋은 방법은 떠난 사람을 온전히 다시 만나는 것이다. 다시 만나면 못다 한 말도 하고 포옹이라도 한번 하고 보낼 수 있겠지. 물론 불가능한 방법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 사람을 통째로 기억해서 그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애도가 되지 않을까?
많은 작가들이 이런 애도의 방법을 시도했다. <<애도일기>>는 어머니를 기억하기 위한 롤랑바르트의 하루하루의 기록이었다. 나에겐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 역시 마찬가지로 읽혔다.

아니 에르노는 아버지를 애도하기 위해 그를 기억하고자 한다. 다만 예술적으로 조작되거나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기억이면 안된다. 아버지 그 자체로 돌아와야 한다. 조작된 아버지를 만들어내면 그녀는 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 만약 아버지를 그려내는데 거짓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을 더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를, 그의 삶을 하찮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아니 에르노는 아버지에 대한 객관적인 조각들을 모아본다. 쉬운 작업이 아니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당연히 창작이 될 테니. 이런 작업에서 글쓰기의 행복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을 하지만, 이것은 그녀가 소설을 창작하는 것이 아닌 그녀가 살아가기 위해 해야만 하는 작업이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들었던 어린시절, 사진 속의 아버지와 가족들을 회상하며 차곡차곡 글을 쓴다. 덧붙여 그녀는 아버지와 멀어지고, 아버지의 삶과 멀어진 자신의 이야기도 함께 한다. 이 책의 원제가 '남자의 자리'가 아닌 'La Place 자리'인 이유일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를 그려내면서 그녀가 떠나왔던 아버지의 기억이 있던 그곳까지 같이 그리고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만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닌 아버지가 있던 삶을 기억하는 것이기에. 

그리고 그녀는 "곧 아무것도 쓸 말이 없을 것 같다. 나는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는 것을 머뭇거리며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하며 애도의 시간이 끝내간다.

감정이 배제된 사실을 바탕으로한 단조로운 문장이지만,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가 변해가는 모습에서 내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저녁에 전화 한 통화드려야겠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아버지와 그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사춘기 시절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이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어졌다.계층 간의 거리나 이름이 없는 특별한 거리에 대해. 마치 이별한 사랑처럼. - P19

나는 곧바로 그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중간쯤에 이르자 거부감이 찾아왔다.
최근에서야 나는 소설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중략)...
한 존재의 모든 객관적인 표적을 모아보려 한다. - P20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아버지를 더 이상 먹여 살릴 수는 없었다. <<생각도 하지 않았어. 그댄 모두가 그랬으니까>> - P25

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했다. - P39

나는 천천히 쓰고 있다. 사실가 선택의 집합에서 한 인생을 잘 나타내는 실타래를 밝혀내기 위해 애쓰면서, 조금씩 아버지만의 특별한 모습을 잃어가는 듯한 기분이다. - P40

나는 매번 개인적이라는 함정에서 빠져나온다.

물론 들었던 단어와 문장에 최대한 가깝게 써야 하는 이런 작업에서 글쓰기의 행복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 P40

그 단어와 문장이 아버지가 살았던 세계이자 내가 살았던 세계이기도 한 곳의 한계와 색깔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어떤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받아들이는 법이 없었다 - P40

노동자로서 아버지의 삶이 여기서 끝난다. - P46

아버지는 자신이 사회에 필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그가 <<늘 저랬던 것은 아니야>>라고 말하면서도 왜 그렇게 됐는지 분명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모든 이들에게 출제와 자유의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P47

행복이자 동시에 소외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 P48

어떤 사진 속에도 그가 웃고 있는 모습은 없다. - P49

물건들을 신성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타인의 말이든 내 말이든 주고받는 모든 말속에서 선망과 비교를 의심한다...(중략)...끝을 알 수 없는, 계속되는 결핍을 느낀다.
그렇지만 욕망을 위한 욕망이었을 뿐이다. 사실상 무엇이 아름다운지, 무엇을 좋아해야하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 P51

분수를 알아야 해, 그가 늘 하던 말이다. - P52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을까, 창피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 P52

한 마디로 영리하게 처신했다. 이 경우 열등함을 인식하되 그것을 최대한 숨기면서 거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중략)..우리가 지금의 우리가 아니었다면, 다시 말해 열등하지 않았다면 분명 알 수 있었던 것을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 P53

그토록 세련된 사람들에게 우리와 공통된 어떤 것, 즉 약간의 저급함이 잇다고 믿으며 기뻐했다 - P55

내 기억 속에 언어에 관한 모든 것은 돈 문제보다 더한 원망과 아픈 언쟁의 원인이었다. - P57

우리는 서로에게 짜증 내며 말하는 법 말고 다르게 말하는 법을 몰랐다. 예의 바른 말투는 낯선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 P63

그 이후로 그에게 늘 똑같은 삶이 펼쳐졌지만,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 P69

그가 대화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나는 늘 내가 옳다고 믿었다...(중략)...그의 태도를 바꿔주려고 했던 것이라 정당하다고 확신했다. 어저면 그는 다른 딸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 P73

어느 날 그가 이렇게 말했다. <<책, 음악, 그런 건 너한테나 좋은 거다. 내가 살아가는 데는 필요없어.>> - P74

적어도 나를 먹여 살린다는 것에 행복해했다. - P74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더 이상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글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P75

나는 오랫동안 런던에서 지냈다. 먼 곳에서 그는 추상적인 다정함을 가진, 변함없는 존재가 됐다. 나는 나 자신만을 위해 살기 시작했다. - P80

더 이상 야심은 없었다. 그는 자기 가게가 자신과 함께 사라질 잔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제는 삶을 조금 즐겨보기로 결심했다. - P81

(친구 가족이 초대했을 때는) 내가 왔어도 전혀 바뀜없는 생활 방식을 나눌 수 있었다. 어떤 낯선 이의 시선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세계에 들어간 것은, 그 세계가 내게 열렸던 것은 내가 살더 ㄴ세계의 방식과 생각, 취향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 P83

예를 들자면 그의 집에서는 유리잔을 깨면 누군가 곧바로 이렇게 소리친다. <<만지지마 깨졌어>>
-> 자신의 집에서는 물건을 깼다고 꾸지람을 듣는 것과 대조 - P86

그들의 원래 모습 그대로를 다시 만나게 돼쏙, 나는 나 자신과 분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P87

그는 그로서는 알지 못했던 호화스러운 삶을 살도록 나를 키웠고 그것에 행복했으나, 나의 성공을 증명해줄 뿐인 던롭필로 가구나 옛날 서랍장에 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 P88

그는 점점 더 삶을 사랑하게 됐다. - P89

곧 아무것도 쓸 말이 없을 것 같다. 나는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는 것을 머뭇거리며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 P90

[옮긴이의 말] "아버지의 존재로 소설을 쓰는 것은 일종의 배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을 쓰면 인물을 창조하게 됩니다." - P104

[옮긴이의 말] 분석적 설명에는 미화가 없다..없는 것을 있다고 하지 않는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단조로운 글쓰기다. 필요한 단어로만 기억의 세계로 뛰어드는 일. - P105

[옮긴이의 말] 이 거짓 기억에는 삶을 시어보다, 은유보다 하찮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중략)... 아니 에르노가 옳다. 그 삶은 그렇게 쓰여서는 안된다. - P106

[옮긴이의 말]문학은 인생이 아니에요. 문학은 인생의 불투명함을 밝히는 것이거나 혹은 밝혀야만 하는 것이죠. - P106

[옮긴이의 말]쓰지 않으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어느 불투명한 삶을 구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이보다 더 완벽한 오마주가 어디 있을까? 그녀의 글은 아버지를 향한, 그녀가 내려놓고 떠났던 세상을 향한 오마주다. 그리고 이 오마주는 예술의 편에 서 있지 않다. 삶이 먼저, 문학은 그다음이다. 삶이 문학이 되기 위해 꾸며야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 P107

소설보다 더 큰 삶이 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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