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증상이 없다 해도 몇 미터짜리 벌레가 몸 안에 있다는 건 영 찜찜한 일이다. 게다가 이 벌레의 수명은 20년에 달하고, 최고로 오래산 건 25년이나 되니, 자칫하면 "내 청춘을 광절열두조충과 함께 보냈다"며 한탄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 사실 이 기생충의 진단은 그리 어렵지 않다. 대변과 함께 나온 광절열두조충의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 병원에 가져가면 되니까. 벌레가 말라비틀어지지 않게 식염수에 넣어서 가져오면 더 좋지만, 그냥 벌레만 가져와도 충분히 감사드릴 일이다. 만에 하나 그게 뭔지 잘 모르는 의사도 있을 테니, 대부분의 의과대학에 있는 기생충학교실에 문의하면 훨씬 더 빠른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다. 실수로, 혹은 너무 징그러워서 그 조각을 버렸다고 하더라도 진단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광절열두조충은 엄청나게 많은 충란을 대변으로 내보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만일 당신이 광절열두조충에 걸려 있다면 당신의 변에는 광절열두조충의 특징적인 충란이 무더기로 들어 있을 테니, 대변검사만 해도 얼마든지 진단이 가능하다. 문제는 위 환자가 그랬던 것처럼 벌레 조각을 버린 뒤 약국에 가서 기생충약을 사 먹는 일이 많다는 거다. 약국에 가서 기생충약을 달라고 하면 100퍼센트 회충약을 준다. 물론 회충약도 광절열두조충에 약간의 타격을 입히는지라 벌레의 일부를 끊어지게 만들 수도 있지만, 원래 촌충이라는 건 머리 부분만 장점막에 잘 붙어 있으면 얼마든지 다시 기다란 몸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위 환자가 기생충약을 먹었어도 계속 굉절열두조충의 조각을 배출했던 건 이 때문인데, 기다란 벌레가 나올 때는 회충약 대신 프아지콴텔이나 디스토시드 같은 디스토마 약을 먹어애 한다는 걸 꼭 기억하자. 회충약과 달리 이 약들은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한다는 게 불편하지만 말이다. - P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