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공주
아무래도
우리 할머니 인어 같아
허리 아파서 종일 누워 있어
다릿심 없어 걷지도 못하는데
할아버지가 고무옷 입히고 업어서
바다에 퐁당 빠뜨려 주면
아프던 허리는 어디 갔는지
가파도 근처까지 헤엄치더래
며칠 동안 입을 안 열던 할머니가
바다에만 가면
꽃노래도 부르고 열 길 물속 얘기하느라
할아버지보고 먼저 집에 들어가라 한다네
다른 해녀들 밤 되어 다 집에 가도
할머니는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본대
어제는 아빠랑 할머니 데리러 갔는데
할머니 눈에 그 넓은 바다가 다 들어 있어
눈망울이 보름달만큼 커져 있었어
별빛 받은 할머니 얼굴이 소녀 같더라니깐
집으로 돌아와 새근새근 주무시는데
숨소리마다 물거품이 피어올랐어
세 살부터 들어가 놀던 바다에서는
돌아가신 부모 형제 얼굴이며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시나 봐 - P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