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가 병을 부른다 - 20년간 투병했던 어느 의사의 생활처방전
이동진 지음 / 이상미디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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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채식주의에 관한 잘못된 사실들을 설명할 줄 알았던 책 이었는데, 막상 책장을 덮고 나니, 채식주의에 관한 것은 그리 머리에 크게 남지 않았다. 왠지 이 책의 제목을 잘못 정한 느낌이 강하게 들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실하지 않나 싶다. 이 책은 저자가 20년동안 투병으로 시작 되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서양 의학과, 한의학으로도 치료 하지 못하는 환자들을 예로 들며, 이들의 빈틈을 메꾸려 하고 있다. 이 때 등장하는게 대체 의학 중 자기 요법인데, 저자는 이를 통해 20년 간 고치지 못하는 병을 고칠 수 있었고, 더 나아가서 서양 의학과 한의학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을 고치는 사례를 보여준다. 

 

사실 의학 역시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결코 완벽할 수 없다. 아무리 인간의 의학 기술이 많이 발전한다고 해도, 고치지 못하는 병들은 언제든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의학이 최선이 아닌 차선이라고 생각한다. 부족한게 많고, 결점이 많아도, 보다 많은 환자들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의학이 '모두'를 고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비판을 하며, 그렇게 고치지 못한 몇 명을 치료해서, 마치 대체 의학이 옳은 것인 마냥 말한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 책에서 말하는 대체 의학으로도 '모두'를 살리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는 피차 일반인 것이다. 오히려, 그나마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의학이기에, 대부분이 현대의 의학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분명 이 책에서 얘기하듯이, 사람마다 각자의 체질이 있고, 그에 맞는 음식을 먹고, 생활 습관을 가지는게 중요한 것은 맞다. 어느새 모둔 분야에서 '표준화'와 '일반화'가 이루어진 현재, 이런 표준화와 일반화에서 벗어난 사람들에 대해서는, 딱히 대책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체 의학을 현대 의학의 중심으로 만든다 하더라도, 결국은 이것 역시 표준화가 되고, 일반화가 되는 과정을 밟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결국 뭐든지 규모가 커지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거기에 맞는 '틀'이 생기고, 그 '틀'에 맞춰서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되버린다. 그런 점에서, 대체 의학은, 지금에 있는 틀 속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챙기는 역할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말하는 한 가지 핵심이 있다면, 바로 '골고루' 섭취하라는 것 이다. 제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 할지라도, 어느 한 쪽에 결코 편중 되지 말고, 골고루 섭취를 한다면,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결국 '과유불급'이라는 옛 말은, 우리의 건강에 있어서도 지극히나 옳은 말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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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심리학 - 오해와 이해 사이, 심리학으로 다리를 놓다
루이스 디콘 지음, 박선령 옮김 / 시그마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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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다 보면, 나의 전공 분야와는 사뭇 다른, 새로운 분야에 대해서 배우는 일이 많다. 나는 공학도 임에도 자기계발서 부터 시작해서, 철학과 인문학 서적을 읽다 보니 이제는 조금씩 이나마 이런 쪽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있고, 그 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배웠다. 경제에 관해서, 역사에 관한 것은 물론, 스피치, 여행, 바둑, 와인, 맥주 등, 학문 뿐만 아니라 단순한 취미에 관한 분야에 까지, 나는 정말 많은 것들을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이런 것들을 배웠다고 해서, 당장 이런 다양한 것들을 능숙하게 할 수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지식을 접하다보니 관심이 생기고, 기회가 생겨서 실제로 배워본 것도 몇개 씩 있다. 이게 바로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제까지 '심리학'에 대한 책은 거의 본 기억이 없다. 복잡하게 사람 심리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흥미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감정이라는게, 오직 good 과 bad, 즉 좋고 나쁨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심리학은 이런 good과 bad 사이에 수 많은 것들을 분석해 놓은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내가 무척 좋아하는 작가가 쓴 '심리'에 관한 책 마저 읽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일종의 '입문서' 역할을 했다. 다른 심리학 책을 읽어보지 않았기에 이 책이 입문서로서 적당한 책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심리학 책을 거의 읽지 않았던 내가, 조금이나마 심리학에 대해서 알게 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었음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감정에 있어서 good과 bad 말고는 그다지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나 였는데, good과 bad 사이에도 수 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오히려 그것들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어떤 식으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삶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랍기도 했다.

 

이 책에는 많은 예시들이 나온다. 그 중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들은 인지적 평가, 외모, 창의성, 죄수의 딜레마, 암환자들의 낙관적 생각, 기억의 오류, 그리고 프로이트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이 중 가장 놀라은 부분은, 바로 예술가들의 정신분열증에 관한 부분이었다. 작가 워크숍에 참여한 이들중 80퍼센트 이상이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창의성과 정신건강이 서로 깊은 연관관계가 있다는 것인데, 이는 곧 많은 시인, 화가들이 정신분열적 경험을 했다는 사실이 신빙성을 더 해준다. 나 역시 작가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역시나,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더 짙어질 수 밖에 없는 걸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인간은 워낙 불완전한 존재이고, 무엇보다 특히 인간의 '뇌'에 대해서는 아직 완벽한 연구가 이루어 지지 않은 만큼, 때로는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건들이 일어날 때가 있다. 바로 이러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틀'에서 벗어난 것들에 대해서 연구함으로서, 그것을 또 하나의 틀에 끼워 넣으려는 작업이 바로 심리학이 아닐까.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인간 자신이, 스스로가 만든 틀 안에 과연 완벽하게 들어갈 수 있는 날이 올까. 이 책이 나에게 이러한 의문 하나를 던져주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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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
토마스 바셰크 지음, 이재영 옮김 / 열림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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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화의 함정 - 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을 읽고 


​대부분의 인문학 서적이나, 철학 서적의 주제에는 항상 '노동'에 관한 문제가 나온다. 비단 현대에만 일어나는 현상이라기 하기에는, 옛 철학자들 중 많은 수가 이 '노동'에 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하였다. 그 이유는 바로, 인류의 생존과 '노동'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이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든, 부정적으로 보든, 결국엔 죽는 날 까지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것 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제 살을 파 먹을 순 없고, '일'을 통해서 무언가를 생산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 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노동'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애초에 '노동'이란 단어의 어감 조차, 밝고 긍정적이긴 보단, 어둡고 부ㅈ어적으로 느껴진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노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면, 왠지 하기 싫고, 왠지 힘들고 성가신 일 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예전 산업 사회만 해도 '노동'이 삶에서 가장 우선시 된 가치였는데에 비해서, 지금은 '노동' 보다는, 보다 인간적이고, 보다 여유로운 '여가'와 같은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실제로 사회도 그런 방향으로 흘러 가고 있다. 우리나라가 '주 5일제'를 실시하는 것만 보더라도, '노동'의 양을 줄이고, '여가'의 양을 늘리자는 취지이니 말이다.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이른바 '살기 좋다'라고 말하는 유럽의 많은 복지 국가들도, 결국은 이런 '살기 좋다'라는 의미가, 주 평균 노동 시간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적으면서도, 여유로운 생활을 누린다는 것 인 만큼, 세계는 '노동'을 줄이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이 책은 '노동'에 대한, 이런 일반적인 관념에 맞서, '노동'의 좀 더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 말하며,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다. 이에 있어서, 단순히 인간은 필연적으로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며, 구세대 적인 논거로 말하고 있지 않다. 여러 얘기들이 나오지만, 이 책의 핵심은, '좋은 노동'을 하라는 것 이다. 여기서 좋은 노동 이라는 것은, 노동이 주는 좋은 이점들을 충분히 활용하면서도, 한편으론 그것이 돈 벌이가 되면서도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만드는 것 이다. 하지만 논거가 여기서 머문다면, 결국 이 책의 내용도 이제까지 주장해오던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가긴 했지만, 결국엔 제자리를 맴돌 수 밖에 없을 테다. 책에서 '좋은노동'을 강조하면서, 노동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으로 무장 되어 있는 우리에게 가하는 비판은, 바로 '개념화의 함정' 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노동'과 '여가'라는 말을 마치 대립되는 단어 인 마냥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일'과 '삶'에 대해서도, 늘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마치 두 개의 단어가 완전히 반대의 단어인 마냥 여기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저자가 그토록 비판하고 지적하는, '개념화의 함정'이 아닐까 싶다. 책에서 나오는 것 처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인간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사냥와 채집생활을 해 왔고, 시간이 지나서는 농사를 지어왔다. 이들에게는 노동과 여가의 구분이 따로 필요가 없었다. 그냥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는 사냥을 하거나 농사를 지어야 했고, 일 자체가 곧 삶 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사냥이나 농사를 단순히 '노동'이나 '일'로 치부하기에는, 이들에게 이런 행위는 '생존'을 위해서 해야하는 필수적인 것 이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우리 인간은 '노동'과 '여가'를 굳이 각자 개념화 하려 하였고, '일'과 '삶' 또한 계속해서 개념화를 하려 하였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아주 먼 옛날부터 계속해서 이어지던 것들 조차, 각기 개념화가 되면서 구분지어 졌고,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투영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노동'의 순수한 가치가 점점 훼손 되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겼던 행위가, 갑자기 부정적이고, 하기 싫은 것으로 되버린 것 이다. 만약에 인류가 이렇게 개념화를 지은 덕에, 정말 노동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필연적으로 노동을 해야 하는 존재이기에, 결국은 어차피 해야하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를 투영해서 '하기 싫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 셈 이다.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좋은 노동'을 주장하는 이 책의 핵심 논거이다.


사실 나는 '노동'에 대해서 무척 부정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애초에 공대생임에도 취업할 생각이 없어서 계속 딴 짓을 하고, 딴 길을 알아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일 것 이다. 결국 노동을 한다는 것은, '사회'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고, 그것은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이다. 노동에 참여하는 순간, 이런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는, 모든 일들을 '돈 되는 일'과 '돈 안되는 일'로 나누게 되고, 결국 '돈 안되는 일'들은 모두 가치 없는 일 인 마냥 여기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랬던 나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 해 주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그럴듯한 말로 현혹하는 게 아닌, '노동'의 순수한 가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내가 이제까지 '개념화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노동은 오래전부터 우리 인류와 함께 해 왔다. 그리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형태나 방법만 바뀌었을 뿐, 노동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 필연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요소이다. 그럼에도 현대에 들어와서야, 인류는 이런 노동을 굳이 개념화 하고, 삶과 여가라는 긍정적인 것들과 대립되는 이미지를 덮어 씌운 것 이다. 노동 자체는 가만히 있는데, 우리 인간이 개념화하고, 대립 시키면서, 난리를 피운 것 이다.


결국 노동 자체는 나쁜 것도,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노동'이 될 수 있고, 무엇보다, 어쩌면 나의 '꿈' 역시, 결국은 노동을 수반할 수 밖에 없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에게는 '글쓰기'가 노동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중요한 건, '노동' 자체의 좋고 나쁨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돈', 즉 '자본'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노동을 좋은 노동과 나쁜 노동으로 나눈 것도, 노동은 힘든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 것도, 여가와 노동을 나눈 것도, 결국은 '돈'이 개입되면서 일어난 일이 아닐까 싶다. 농작물을 돈을 주고 팔기 전의 시대만 하더라도 농사가 굳이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고 그 순수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문제는 '노동'이 아닌, '자본주의가 개입한 노동' 일 것 이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돈'이 개입하지 않는, 순수한 '노동' 그 자체 이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실현되기 힘든 일이긴 하지만, '돈'에 연연하지 않고 그 일을 열심히 할 수 있을 때, 그것이 바로 이 책에 얘기하는 '좋은 노동'이 되는게 아닐까. 그리고 이렇게 '좋은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사회 역시 이런 '좋은 노동'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노동'은 더 이상 부정적인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을 필요가 없어질 것 이다. 이게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의 방향이자, 사회의 방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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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형님들의 진짜 운동 - 20대 체력이 그립지 않냐고? 나는 지금이 최고다!
최영민 지음 / 한문화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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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대 중반을 맞이하는, 어쩌면 신체적으로 가장 건강한 나이인 내가 어째서 '40대'들을 위해 쓴 책을 읽게 되었을까. 그것은 내가 '불량헬스'와 '다이어트 진화론'을 쓴 '최영민' 작가님을 무척 좋아했기에, 비록 주 타켓은 다를지라도, 이 분이 쓴 다른 책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저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론이나 가치관은 한결 같다. 타켓이 바뀜에 따라 그 전달방식은 조금 달라지게 될 지 몰라도, 결국 전하고자 하는 그 '핵심 내용'은 똑같다. 내가 40대를 위한 이 책을 읽었어도, 충분히 많은 걸 얻을 수 있다는 것 이다. 

 

이 책의 전반부에는, 우리 시대의 40대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이가 적다고도 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많다고 하기에도 힘든, 그런 '어중간한 나이'에 머물러 있으면서 겪게 되는 '사추기'에 대해 말을 한다. 하지만 이 책이 그저 40대에 대한 한탄을 늘여 놓는 에세이는 아닌 만큼, 이야기는 40대에 급격히 감소하는 남성 호로몬과, 육체적으로 많은 부분이 약해지고, 퇴화한다는 말로 이어진다. 물론 그렇다고 육체적인 능력을 노화시키지 않는다 해도, 결국 노화 자체는 찾아 온다. 하지만 그 시기를 늦출 수 있고, 육체적으로 노화를 늦춘다는 것이, 정신적인 노화를 낮출 수 도 있다. 신체가 건강하다고 무조건 정신이 건강한건 아니지만, 정신적인 건강을 위한 좋은 조건 중 하나가 신체적 건강 임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강조하는 40대의 '육체적인 젊음'은, 분명 '정신적인 젊음'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이다.


이 책 역시 저자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스쿼트'와 '데드리프트', 그리고 '켈트벨'에 대한 상세한 정보들이 나와 있다. '맛스타드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저자는, 아니나 다를까, '찬양' 수준으로 이 3가지 운동의 이점에 대해 말하고, 강조 하고 있다. 이 책은 분명 40대를 위한 책 이지만, 이 점에 있어서는 결국 운동의 '본질'을 말하고 있고, 우리가 어떠한 방향으로 운동을 해 나가며, 어떤 걸 추구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20대에게도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보다 보면, 결국 '운동'은 20대나, 40대나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해 보이는 것'을 위해 운동하지 말고, '진짜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고, 단기적인 감량이나 좋은 몸을 추구하기보다는, '운동' 자체를 즐기며,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보는 것.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극적이고 복잡하고, 때로는 정확하지도 않은 운동 지식이 넘쳐나는 현 피트니스 센터 시장의 현실에서, 좀 더 단순해지고, 좀 더 우직해 지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 저자가 이 책을 통해, 40대만이 아닌, 헬스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던지는 메세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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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후 대한민국 - 대한민국을 뒤흔들 신기술
서양원 외 지음, 매일경제 산업부 엮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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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책 - '3년 후 대한민국' 을 읽고 by 힐리


​'엔토로피'로 유명한 '제레미 리프킨이 한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인류는 0.1%의 창조적 인간과, 0.9%의 선구적 인간, 그리고 99%의 잉여 인간으로 구성 되고, 인류의 진보는 이 1%들이 이끌어 왔다'

생각해보면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인류 모두가 인류 발전에 공헌 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이제까지 역사적으로, 창조적이고 선구적인 인간은 항상 핍박과 업박을 받아 왔다. 제 아무리 혁명적인 것 일 지라도,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자기가 안주해 있는 것에 만족하고, 새로움을 추구하기보다는 익숙한 것을 선호 해 왔다. 그렇게, 역사는 늘 1%와 99%의 싸움 이었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끈질지게 버티고 살아남은 1%가, 결국은 세상을 바꾸었고, 99%의 인간은 이렇게 바뀐 세상에 또 안주 한다.

 

이 책에는 많은 신기술들과, 새로운 미래의 모습들이 묘사 되어 있다. 스마트카 부터 시작해서, 탄소섬유, 사물인터넷, 5G 시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차세대 디스플레이까지. 이런 기술들은 까막득한 미래의 일이라기보단, 단지 가격이나 실용성 면에서 상업화가 덜 되었을 뿐, 이미 개발된 기술이라는 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러한 많은 기술들은, 그야말로 1%의 사람들이 창조하고, 선구적 역할을 하는 것 들 이다. 우리는 그저, 이런 기술들이 사용화가 되면, 또 다시 '세상 많이 좋아졌네' 라고 말을 하면서, 기술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갈 것 이다.

 

 

물론 우리가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현재의 세상 속에서, 이런 트렌드를 정확하게 읽고, 미래에 어떤 세상을 펼쳐 질 지 정확히 예상한다는 건, 분명 비범한 능력이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은 결코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를 읽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선, 우리는 끊임 없이 '통찰력'을 키워야만 한다. 자신의 분야만 공부하는 것이 아닌, 보다 다양한 분야의 것들을 열심히 익히면서, 학문의 경계를 계속해서 넘나들면서, 어떤 식으로 융합이 되면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갈지, 끊임 없이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이다. 특히,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20대로서, 이러한 역할의 중심에 서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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