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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문명의 수수께끼
요시무라 사쿠지 지음, 김석희 옮김 / 프레스21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일반인들이 가질 수 있는 역사의 현장에 대한 관심들을 자극시키고 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땐 도무지 어떠한 용도로 사용했을지 알 길이 없는 물건들에서부터 시작하여, 굉장히 발달한 문명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역사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문명들에 이르기까지, 세계 전역에 걸쳐있는 역사의 현장을 책 한 권으로 훑을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언론을 통해 몇 차례 부각되어 온 나스카 평원의 거대한 지상 그림에서부터 시작하여 고대의 주술적 신앙을 엿볼 수 있는 풍만한 모습의 여성 조각상, 그 당시의 생활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동굴의 벽화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발달을 이루었지만 생산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점점 더 각박한 마음을 지닐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이러한 문화 유산들은 일종의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많은 문화 유산들로부터 마음의 평안, 여유 등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몇몇 유산들은 현실의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인해 보존되지 못하고 심지어 의도적으로 파괴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유적의 경우, 탈레반 정권의 참혹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듯 했다.
책의 중간중간 엿볼 수 있는 유적들의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사진에서도 멋지고 웅장함이 느껴지는데 실제로 그 앞에 선다면 어떠한 기분이 들지, 나의 기대감이 증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책의 제목이 불러일으키는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에는 무언가 많이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엄청난 기대감을 가지고 추리 소설의 첫 장을 펼쳤으나, 그 구성이 너무도 허술해 한숨을 푹푹 쉬는 꼴이라고 해야 될까. 너무도 단편적인 내용으로 단지 1-2장 정도의 분량으로 세계사적 문화 유산을 모두 다루려 든 점은 작가의 욕심이 너무도 지나친 듯 느껴졌다.
또한, 문화 유산을 다룸에 있어서의 공정성이랄까. 물론 어느 나라의 문화재이기에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본 작가의 눈에 우리 나라의 문화재는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은 듯 하다. 가야가 일본의 뿌리는 아니었을까 라고 조심스레 던지는 그의 문제제기는, 고대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보다 자세한 고찰 없이는 피상적인 문제제기에 머무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발해가 백두산의 폭발로 인해 멸망하지는 않았을까 라는 점 역시도 너무 단편적인 의문제기로 느껴진다. 발해의 수도인 상경용천부는 백두산과는 멀리 떨어져있으며, 설령 백두산이 폭발하여 주변 지역이 모두 초토화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지역이 발해의 중심적인 지역이 아닌 만큼 그것이 발해 왕국 전체의 몰락을 가져올 정도였을까 싶다.
과거는 하나의 진실을 담고 있지만, 그 진실은 후대에 해석하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서 서로 다른 양면성을 지니기도 한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아직까지 하나의 의문점으로 남아있는, 검증되지 않은 역사인 것이 많다. 어떠한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서 문명은 위대한 것이 될 수도 있으며 초라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은 미래 지향적이라고 하지만, 나는 인류의 과거에 대한 고찰이 현 인류의 정당성 확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며, 각 국가의 국가경쟁력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기를 쓰고 지난 식민 역사를 부정하는 것, 없는 역사, 문화재까지 양산해가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찾고자 하는 것 모두가 이러한 이유에서가 아닐까. 이 책을 읽는 것이 세계의 신비한 문화 유산들 만큼이나 우리의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