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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 갈무리 신서 32
존 홀러웨이 지음, 조정환 옮김 / 갈무리 / 2002년 6월
평점 :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학문을 통해 우리의 문제를 꿰뚫어보고 더 나아가 그 안에서 변혁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실천이라 부른다. 마르크시즘은 항상 그 실천의 흐름에 앞장서왔다. 공산주의 진영의 붕괴와 더불어 마르크시즘은 그 생명력을 잃을 것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말했다. 하지면 여전히 이 사회를 바라보는 가장 뚜렷한 통찰력을 지닌 학문(?)으로서 나는 마르크시즘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아마도 대다수의 이들이 그럴 것이다. 이 책은 그런 학문적 사조 속에서 탄생한 책이 아닌가 싶다. 기존의 마르크시즘이 가지고 있던 한계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지만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유일한 희망으로 존재하는 마르크시즘으로 다시금 회귀할 수 밖에 없는 저자의 발자취는 어떻게 보면 다소 모순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억지 주장으로 혹은 울며 겨자먹기로 되돌아섰다면 이 책은 별다른 반향을 불러 일으킬 수 없었을 것이다. 권력이라고 하는 화두를 통해 저자는 마르크시즘에 전혀 다른 색채를 입힌다. 노동자 혁명을 통해 국가 권력을 쟁취함으로써 세상이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을 부정함으로써 그는 마르크시즘을 배신한 듯 했다. 하지만 그에게 국가권력의 쟁취는 권력을 통한 또 다른 지배를 불러 일으킬 뿐이었다. 그것은 권력의 재생산일 뿐 해방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었다.
저자는 근본적으로 마르크시즘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푸코의 사상을 바라보며 그 안에 해방의 가능성이 존재치 않음을 비판할 수 있었고, 안토니오 네그리의 한계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지배력 아닌 지향력을 꿈꾸며, 국가 권력을 장악치 않고 세계를 변혁하라고 외치는 저자. 그의 외침은 결코 공허한 것이 아니었다.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며 전진했던 멕시코 사파티스타들은 국가 체제의 전복을 이야기하지 않았노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그것은 과거와는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운동이었고, 그 안에서 우리는 분명 해방감을 맛보았다. 동시에 저자는 수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망각하고 간과했던 물신주의를 다시금 마르크시즘의 핵심으로 복원했다. 계급 아닌 물신주의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야기했듯 단선적이고도 쉽지만은 않은 싸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싸움의 주체는 결코 '그들'이 아닌 '우리' 자신이었다.
그에게 국가는 타도의 대상일 수 없었다. 존재치 않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은 결국 우리 자신을 무너뜨릴 뿐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서 국가는 수많은 기존 좌파들이 이야기했듯이 타도해야만 하는 실체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는 우리에게 권력이 세상을 변혁하는 유일한 수단이 아니며, 더 나아가 권력의 쟁취 없이도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음을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그 주체는 앞서 언급했듯이 제 3자 아닌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집단적 번역 작업이라는 지금까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방법을 거쳐 우리 곁에 나타난 이 책은 어쩌면 그로 인해 풍부한 저자의 생각이 더욱 깊이 있게 번역될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1년 넘게 교류하며 이 책을 탄생시킨 모든 이들에게 깊이 감사하며, 변혁을 부르짖는 어설픈 좌파인 나의 부족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노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