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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대학살 - 프랑스 문화사 속의 다른 이야기들 ㅣ 현대의 지성 94
로버트 단턴 지음, 조한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제목만 듣고는 고양이들을 소재로 한 하나의 소설일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하지만 웬걸, 역사였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주로 왕조나 국가의 지배층들의 것들에 초점을 두고 있는 역사와는 또 다른 의미의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최근 들어 각광 받고 있는 일반인들, 민중들의 생활상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가 다루고 있는 시대는 프랑스 사회의 신분제가 깨어지는 동시에 새로운 지배 구조가 다져지던 시대였다. 무엇보다도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고양이 대학살’이었다. 고양이 대학살 사건은 축소된 의미의 프랑스 혁명이었으며, 그 자체로서 프랑스 혁명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비록 그 당시를 살아가던 이들은 프랑스 혁명의 가능성에 눈뜨지 못했지만, 그 시대는 직인들은 장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잃었으며, 자신들의 노동이 자기 자신을 소진시킨다는 사실에 눈을 뜨고 있었다. 수시로 이루어지는 고용과 해고 속에서 그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았으며, 신분제 자체에 대한 부조리까지는 아니었지만, 분명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지배층에 대해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지는 않는다. 냉소적인 태도로 지배 계층을 바라보지만, 신분제 자체를 비판하는 모습은 보이지 못한다. 그런 그들이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지배 계층을 상징하는 고양이를 통한 응징이었다. 당시 고양이는 마법, 마녀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이런 이미지를 이용할 줄 알았다. 그들에게 고양이를 해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닌 지배층이었다. 그리고 그 명령은 여주인이 아끼던 그리스에 대한 처형을 정당화시켜주는 일종의 역설적인 면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명령을 즐겼다. 그들은 고양이를 잡아들이면서 지배층을 잡아들이는 희열을 느꼈고, 고양이에 부여된 부정적 이미지를 지배층에 투영시켰다. 동시에 그들은 고양이를 재판에 회부하고 처형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을 속박하는 지배층에 대한 재판과 처형을 경험하였다. 그것은 대리만족이었으며, 신분제에 대한 (간접적인) 반항이었다.
그 외에도 이 책은 서로 다른 듯 하면서 연결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처음에 나와있는 ‘마더 구스 이야기의 의미’의 경우,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에 퍼져있는 농부들의 이야기 속에서 하나의 전형적인 특징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 시대를 가장 평범한 모습으로 살아갔을 이들에 대한 조명이라는 면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모든 이야기들에는 가장 기본적인 식생활에 대한 욕구 불만이 표출되어 있다. 그 시대에 팽배했던 가난은 그들에게 음식 이외의 욕구를 모두 거세시켜 버렸다. 그들의 소원은 모두 먹는 것에 고착되어 있다. 동시에 프로이트 학파 학자들에 의해 이야기되듯이, 그 안에는 ‘성’을 둘러싼 논쟁들이 살아있다. 그것은 어쩌면 지배층의 입장에서 보았다면 저속하게 여겨질, 일종의 하층 문화일런지도 모른다.
‘한 부르주아는 그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한다’의 경우, 프랑스 사회의 전통적 의미의 신분제가 무너지는 속에서 드러나는 지배층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한 경찰 수사관은 그의 명부를 분류한다’의 경우에는 감시, 수사의 차원에서 쓰여진 자료들에 저자가 숨결을 불어넣어 하나의 역사화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방면에서 프랑스 18세기의 역사를 살펴본 저자의 노력은 그 시대의 정치,경제, 사회적 요인으로부터 파생된 문화적 요인을 엿볼 수 있다는 아날 학파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한다. 동시에 저자는 역사는 과거의 한 영역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해석되고 의미를 부여받는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기존의 아날 학파의 입장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독특한 관점에서 프랑스 사회를 꿰뚫는 역사적 진리를 바라본 이 책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 의해 새로이 해석되어질 수 있을 것이며, 그 해석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저자와의 조우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