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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어던 - 국가라는 이름의 괴물 ㅣ e시대의 절대사상 2
김용환 지음 / 살림 / 2005년 2월
평점 :
원서를 읽을 정도로 뛰어난 언어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대다수의 독자들은 번역판을 통해 다른 나라의 사상을 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때론 번역하는 이의 역량에 따라 독자의 이해 정도가 달라지기도 하고, 때론 본래의 사상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것으로 사상을 받아들이게도 된다. 번역판이 다양한다면 이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양한 번역을 서로 비교하다보면 무엇이 옳고 또 무엇이 그른지 수렴하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까지 풍요롭지 못하다. 홉스의 철학은 이러한 빈곤함의 한 가운데 놓여있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저서라 할 수 있는 '리바이어던' 마저도 서점에서 찾아보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나마 출판되어 있는 경우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어, 전체 4부 중 1, 2부만이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과 국가, 이 두 화두는 홉스 철학의 중심 소재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3, 4부에서 다루고 있는 종교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오히려 후자 쪽이 철학자 홉스를 이해하는데 더욱 많은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는 당대 교황권과 황제권의 대립 속에서 탄생한, 다분히 사회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철학이니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잘못된 철학에 대한 반기, 스토아 철학의 무용성에 대한 그의 목소리는 결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미약한 것이 아니니 말이다.)
이 책은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대한 해석을 충실한 완역과 함께 싣고 있다. 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홉스 그리고 그의 사상에 대한 저자의 해석을 읽은 후 접하는 리바이어던은, 물론 여전히 난해하긴 했으나,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것이다.
오늘날은 홉스가 살았던 시대와는 또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황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정치와 종교는 분리된 지 오래다. 표면상으로 볼 때 우리 사회는 실로 평화로움 그 자체인 듯하다. 교육은 하나의 권리로서 일정 연령에 달한 사람들은 학교에 가게 된다. 국민들은 선거를 통하여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고, 인터넷의 발달은 이전에는 비밀스러움으로 존재하던 공간으로까지 우리를 이끈다. 하지만 표면은 표면일 뿐, 여전히 우리 사회는 혼란 그 자체이다. 강대국에 의한 폭력은 정당화되다 못해 선한 것으로 미화된다. 권리라 일컬어지는 교육은 자본없인 받을 수 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으며, 국민에 의해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국민 아닌 정당 혹은 자기 자신의 이득을 위해 행동하기 마련이다. 갈등의 주체가 조금 변화했을 뿐, 그 양상에 있어서는 그다지 변화가 없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아니, 조금 더 복잡해졌으면 복잡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홉스를 읽어야 하고 그의 사상을 이해해야만 한다.
안타깝게도 그의 사상은 많은 부분 오해를 낳고 있다. 교회의 권위를 부정함으로써 그는 강력한 절대 군주를 옹호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낳는다. 강력한 국가 그리고 통치자, 하지만 그의 사상이 그렇게 보이는 까닭은 다름 아닌 교황권에 대한 부정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황제와 교황의 대결구도, 하지만 이 두 세력이 벌이는 싸움에 승리자는 없다. 인간, 그 존엄성에 대한 전제 없이는 어느 누구도 승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사상은 민주주의와 맞닿아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설정한 군주는 자신의 권력을 극대화하는 막무가내식 인물은 아니다. 그의 권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그가 모든 이들의 욕구를 고스란히 끌어안고 그들을 위해 행동하였을 경우에 한하여서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사상은 대의제를 주장한 로크의 사상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로크 자신은 홉스의 영향을 받았음을 강력히 부인했지만...
잠들어 있던 홉스와 그의 철학과의 만남은 신나는 것이었다. 과거로부터 현재를 읽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진행형의 상태라는 점에서) 그의 철학은 분명 놀라운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