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회경제사 범우고전선 47
백남운 외 / 범우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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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대립으로 인해 우리 학계는 좌파 성향에 기반한 많은 연구를 잃어야만 했다. 백남운의 경우, 일제하에서 한국 고대사에 대한 가장 독보적인 연구를 행한 인물이지만 미군정 하에서 이루어진 극심한 사회주의자 탄압 정책으로 인하여 월북할 수 밖에 없었다. 동시에 그의 저서 <조선사회경제사> 우리에게는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연구라는 간단한 수식어 외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우리 역사를 세계사적 보편성에 기초해 해석하려 들었으며, 마르크스주의는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우리나라의 아내, 남편 등 몇몇 단어가 가지고 있는 언어적 기원을 살펴보는 독특한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방식의 연구를 통해 그는 우리의 역사에서도 원시 공산제 사회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고 장담한다. 혈연가족과 푸날루아 가족, 대우혼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있어서 고조선 사회는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해 본다면 원시씨족사회였던 것이다. 계급과 사유재산제도의 발생에 있어서도 그의 분석의 독특함은 빛난다. 특히 농경사회의 도래와 함께 기존에는 살해하던 전쟁 포로를 노동력, 즉 재산으로 활용하게 된 것을 노예제도로 해석하는 부분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사회에 이르기까지 그의 분석은 읽는 이에게 낯선 감동으로 다가왔다. 기존 왕조, 지배층 중심의 역사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볼 순 없었지만, 국정 교과서를 통해 접했던 역사와는 또 다른 방식의 역사를 읽는 내내 나는 금지된 영역을 몰래 훔쳐보는 듯한 쾌감에 빠져들었다. 아마도 이는 역사 해석이 민족의 고대 국가 형성 과정을 자본제 사회의 형성을 위한 각기 다른 계급 간의, 특히 남성과 여성 간의 권력 투쟁으로 바라보는 그의 시각의 독특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세계사적 보편성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우리 사회만의 독창성을 파악하는 데는 실패한 면모가 있지 않나 싶다. 그에게 있어서 역사는 현재 사회가 마르크스주의에 부합하는 길을 따라 걷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일종의 증거와도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백남운은 역사를 현재와의 대화, 더 나아가 현재를 정도(正道)로 이끄는 추동력으로 파악했던 것 같다. 이런 그의 역사관에 기반할 경우, 현 남/북한 사회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 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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