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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길 2
이철환 지음 / 삼진기획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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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길. 제목부터가 벌써 나에게 아득한 그리움을 한 껏 몰고왔다. '연탄길' 이란 합성어 속에서 나는 살 맛나는, 우리 이웃들의 그 끈끈한 정을 본다. 굽이굽이 올라가야만 하는 산동네 길,촘촘히 붙어 있는 똑같은 모양의 집들. 당장은 힘들고 고달픈 삶들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미래에 대한 많은 꿈을 먹고 살던 사람들. 지금쯤 다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몸은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이세상에서 제일 부자였던 옛날 그 골목의 이웃들. 작은 것 하나라도 서로 나눔을 주고 받고, 이웃의 걱정을 자신의 걱정처럼, 기쁨은 자신의 기쁨처럼 여기며 그렇게 이웃사촌으로 진한 사랑을 나누던 사람들. 높은 곳에 살기에 오히려 저 아래 동네들은 내려다보며 '세상 별 것 아니네, 모두 내 발아래 있으니깐 말이야' 라고 말하던 친구녀석이 문득 떠오른다. '공수레 공수거' 라 했다. 사람은 모두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존재가 아닌가. 아무리 부자라도 이 세상 떠날 땐 빈손인 게다 그런 인생이라면 서로 미워하고 헐뜯고 다른 사람을 속이고 배신하기 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깊은 사랑으로 서로 보듬고 어루만져 준다면 정말 살 맛나지 않겠는가? 갈수록 각박해지는 사회를 보노라면 지금보다 훨씬 덜 부자였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사랑이 , 정이 넘치던 그 때 그 시절 연탄길!이 새삼 그리워지는 건 바로 그 까닭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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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클라스 후이징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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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웬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나를 끄는 어떤 마력이 느껴지는 그런 책이었다. 물론 당장 알라딘에 주문을 해서 읽어보니, 과연, 책벌레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클라스후아징의 독특한 문체는 단숨에 책을 읽어내리게 만들었다.

이 책은 18C의 책벌레인 요한 게오르그 티니우스(실존인물)와 20C 의 마지막 책벌레인 팔크 라인홀트가 주인공이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불쑥,뜬금없이,무작정 작가가 뛰어들어 자기의 생각을 말하기도 하고, 독자에게 물음을 던지기도 하고 명령을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정체로 글을 써나가다가 어느순간에는 기울임체가 나오고, 또 갑자기 신문에서나 볼 수있는 다단편집이 나오는등, 한시도 나를 가만두지 않고 긴장하게 만들면서 '다음엔 또 어떤 것이 나올까?' 하는 호기심으로 줄곧 나를 설레이게 만들었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런 기분이었다.

첫 장을 넘겼을 때!(벌써 여기서부터가 심상치 않아서) 작가는 나의 시선을 이 책에다 꽉 붙들어 버렸다. 이 책의 한 주인공인 요한 게오르그 티니우스의 초상화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고집스럽게 꽉 다문 입에 눈을 번쩍 뜨고서! 작가는 이 얼굴에서 독자가 뭔가를 읽어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의 생각을 말하기도 하고, 독자로 하여금 생각의 전한을 유도하기도 하고, 결국에는 일련의 유추의 과정들을 통해, 이 초상화에서 자기가 발견하고 읽어낸 숨은 이야기에 독자들을 동참시키기에 이른다. 자, 이렇게 해서 우리 모두는 이 텍스트(책)를 제대로 읽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요한 게오르그 티니우스는 어릴 때부터 말 그대로 책벌레 였다. 그는 그 만의 독특한 독서방법을 가지고 있었다.(뭐랄까? 일종의 연상기억법 같은...) 따라서 아무리 어려운 책이라도 그에게는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는 갈수록 광적인 독서광이되었고 나중에는 성직자의 신분으로 '책'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우리시대의 독서광 팔크 라인홀트. 그의 삶은 '독서' 그 자체였다. 그의 삶에서 최우선은 늘 '책' 이었다. 읽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보관에 있어서도 거의 결벽증에 가까우리 만큼 병적이었다. 그는 어느날 우연히 고서점에 들렀다가 티니우스가 쓴 책을 구입하게 되고, 결국에는 그에게 빠져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가 쓴 책을 수단, 바업을 가리지 않고 모두 모으게 되고, 급기야 그 책들 속에서 그는 이제껏 어느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진리를 발견하게 딘다. '세상의 종말'이라는. 바로 그 순간 그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주변을 살펴보니, 바로 '지금'이 티니우스가 책 속에서 암시하던 그 '종말' 임을 깨닫게 되고 만다.
이 진리를 터득하고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독서광,책벌레인 팔크 라인홀트는 홀연히 하얀 벽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 후론 아무도 그를 보지 못했다.

결국 이 책은 두 독서광의 삶과 아홉개의 양탄자라는 글을 통해서 책이란 무엇이고, 책읽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누군가 그랬다. TV가 대중화가 되면 라디오는 사라질 것이라고. 하지만 어떤가? 라디오는 아직까지도 그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시대가 첨단으로 발전해서 e-book 이다 뭐다 쏟아져 나온다고 해도, 역시 종이로 된 책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깊은 뿌리를 내리고 서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큼큼한 종이냄새를 맡으면서, 손으로 책장의 질감을 느끼면서 한장 한장 넘겨가며 읽는 그 짜릿한 맛을 어찌 차가운 기계가 대신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나는 21C의 책벌레가 되기 위해 또다른 한권의 책을 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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