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
클라스 후이징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책벌레! 웬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나를 끄는 어떤 마력이 느껴지는 그런 책이었다. 물론 당장 알라딘에 주문을 해서 읽어보니, 과연, 책벌레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클라스후아징의 독특한 문체는 단숨에 책을 읽어내리게 만들었다.

이 책은 18C의 책벌레인 요한 게오르그 티니우스(실존인물)와 20C 의 마지막 책벌레인 팔크 라인홀트가 주인공이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불쑥,뜬금없이,무작정 작가가 뛰어들어 자기의 생각을 말하기도 하고, 독자에게 물음을 던지기도 하고 명령을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정체로 글을 써나가다가 어느순간에는 기울임체가 나오고, 또 갑자기 신문에서나 볼 수있는 다단편집이 나오는등, 한시도 나를 가만두지 않고 긴장하게 만들면서 '다음엔 또 어떤 것이 나올까?' 하는 호기심으로 줄곧 나를 설레이게 만들었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런 기분이었다.

첫 장을 넘겼을 때!(벌써 여기서부터가 심상치 않아서) 작가는 나의 시선을 이 책에다 꽉 붙들어 버렸다. 이 책의 한 주인공인 요한 게오르그 티니우스의 초상화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고집스럽게 꽉 다문 입에 눈을 번쩍 뜨고서! 작가는 이 얼굴에서 독자가 뭔가를 읽어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의 생각을 말하기도 하고, 독자로 하여금 생각의 전한을 유도하기도 하고, 결국에는 일련의 유추의 과정들을 통해, 이 초상화에서 자기가 발견하고 읽어낸 숨은 이야기에 독자들을 동참시키기에 이른다. 자, 이렇게 해서 우리 모두는 이 텍스트(책)를 제대로 읽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요한 게오르그 티니우스는 어릴 때부터 말 그대로 책벌레 였다. 그는 그 만의 독특한 독서방법을 가지고 있었다.(뭐랄까? 일종의 연상기억법 같은...) 따라서 아무리 어려운 책이라도 그에게는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는 갈수록 광적인 독서광이되었고 나중에는 성직자의 신분으로 '책'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우리시대의 독서광 팔크 라인홀트. 그의 삶은 '독서' 그 자체였다. 그의 삶에서 최우선은 늘 '책' 이었다. 읽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보관에 있어서도 거의 결벽증에 가까우리 만큼 병적이었다. 그는 어느날 우연히 고서점에 들렀다가 티니우스가 쓴 책을 구입하게 되고, 결국에는 그에게 빠져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가 쓴 책을 수단, 바업을 가리지 않고 모두 모으게 되고, 급기야 그 책들 속에서 그는 이제껏 어느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진리를 발견하게 딘다. '세상의 종말'이라는. 바로 그 순간 그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주변을 살펴보니, 바로 '지금'이 티니우스가 책 속에서 암시하던 그 '종말' 임을 깨닫게 되고 만다.
이 진리를 터득하고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독서광,책벌레인 팔크 라인홀트는 홀연히 하얀 벽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 후론 아무도 그를 보지 못했다.

결국 이 책은 두 독서광의 삶과 아홉개의 양탄자라는 글을 통해서 책이란 무엇이고, 책읽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누군가 그랬다. TV가 대중화가 되면 라디오는 사라질 것이라고. 하지만 어떤가? 라디오는 아직까지도 그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시대가 첨단으로 발전해서 e-book 이다 뭐다 쏟아져 나온다고 해도, 역시 종이로 된 책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깊은 뿌리를 내리고 서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큼큼한 종이냄새를 맡으면서, 손으로 책장의 질감을 느끼면서 한장 한장 넘겨가며 읽는 그 짜릿한 맛을 어찌 차가운 기계가 대신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나는 21C의 책벌레가 되기 위해 또다른 한권의 책을 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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