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봄, 붉은 여름, 하얀 가을, 검은 겨울. 인간의 네 가지 계절이란다.
여기 여름의 끝자락에 서있는 두 사람이 있다. 테쓰지는 요양을 겸해서 어머니의 집을
처분하려고 미와시에 내려와 있었다. 모친 상을 치르고 나서 회사 앞 역 앞에서 목이
오른쪽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장기 휴가를 받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집에서
몹시 삭막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어느 날 패스트푸드가 몹시 먹고 싶어
졌고, 차를 빌려서 저 멀리 가게로 그것들을 사러가는 길이었다. 그 길에서 만났다, 페코짱을.
사람들이 페코짱이라고 부르는 키미코. 매년 여름이 되면 미와시로 스미듯 찾아온다.
행복과 슬픔, 애잔함이 뒤섞여있는 이 복잡한 감정이 고여있는 이 곳에서 여름의 한 때를
보내기 위해서. 이번 여름도 그리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테쓰지를 만나면서 그 예정은
한참을 벗어나게 된다. 그들의 첫만남이 어땠냐고? 첫눈에 반한 건 절대 아니었다.
테쓰지는 자살을 시도한다. 충동적으로 바다에 뛰어들었고, 그 모습을 발견한 키미코에 의해
구조된다. 그리고 키미코는 테쓰지를 보살피기 시작한다. 그 대신 테쓰지는 키미코에게
클래식을 알려주기 시작한다. 그녀의 아들이 항상 들었던 그 음악을 듣고 싶었지만, 들을
수 없어서 듣지 못했고 듣고 싶었을 때는 보이지 않는 벽을 느끼며 다가갈 수 없었다.
그 음악을 테쓰지의 도움을 받아서 듣게 된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서 키미코씨는 테쓰지를
챙기고, 그가 살고있는 곶의 집을 정돈한다. 바닷가의 그림같은 집에서 그의 센스있는
어머니가 남긴 음반과 서적을 나눠 듣고 읽으며, 함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서 서로의 좋은 점을 알아내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테쓰지에게는 가정이 있었고, 키미코는 그의 가정이 망가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를 떠난다. 이러면 몹시 신파같지 않은가? 결국은 불륜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당사자는 그걸 사랑으로 굳게 믿고 있으며 그게 진실한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가정을 위해서 마음을 접는 한 여자라니...! 하지만 이 소설이 이해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
속을 떠도는 괴상한 이야기라고 한켠으로 밀어둘 수 없는 건, 서른 아홉 살에 찾아온
로맨스를 아기자기하게 꾸려나가는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설레어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제대로 결정을 내리는 것일까 망설이고 고민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위한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속이는 결정을 내리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용기를 내리는 과정이 이 소설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