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골목의 추억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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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가 이렇게 말했단다. “지금까지의 제 작품 중 가장 좋아합니다.”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의 바나나씨의 작품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어요, 라고.

그녀의 소설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었다. 친하기는커녕 오히려 맞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대체로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큰 상처를 받은 소녀나 여자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회복해 나간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그려진 소설 속의 시간의 흐름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볼 수 없었다. 그래서 페이지를 휙휙하고 넘기기 일수였었다.

그리고 왜 사람들은 그녀의 소설을 그토록 좋아하는지 늘 궁금했었다. 난 그 정도로

좋아지지 않았으니까. 그러던 차에 그녀의 에세이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바나나씨 어쩌면

재미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글에서 오롯이 드러나는 솔직함이 인상적이었고,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야 할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후로

바나나씨가 다시 보였고, 그녀의 소설도 챙겨 읽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내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드디어 내 취향인 바나나씨의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막다른 골목의 추억’, 단편소설집이고 이 책 속에 책 제목과 똑같은 소설이 마지막에

참하게 자리잡고 있다. 막다른 골목의 추억이라니, 어딘가 삭막한 이미지가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오해는 말자. 그냥 술집 이름일 뿐이니까. ‘막다른 골목의 추억외에도 4개의

이야기를 더 만날 수 있다. 명랑, 쾌활, 유쾌, 통쾌한 내용은 아니다. 바나나씨의 소설에서

그런 걸 기대하기는 좀 어렵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톤이 한결 높아진 듯 하다. 색도

선명하고 또렷해졌다는 인상도 받았고. 등장인물들은 이전의 소설에서보다 훨씬 강하고

단호하다. 소설 속의 한 부분을 인용하자면,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들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그녀들이 등장하기에 이 소설집을 바나나씨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아닐까.

유령의 집’, 무서운 이야기 같지만, 전혀 무섭지 않다. 유령이 나오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포지수는 제로에 가깝다. 오히려 유령이 존재하기에 소설 속의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엄마는 감기약이 잔뜩 든 카레를 먹고 무기력한 상태에 빠진 한

여자의 일상이 펼쳐진다. 일단 독극물 테러의 피해자가 되었고, 금새 털고 일어섰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지만 그 믿음은 허상이었다. 그 외상은 그녀의 어린 시절을 상기시켰고

그 기억은 그녀의 일상을 흔들어 놓는다. 과연 그녀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도모짱의 행복5년 간 짝사랑을 한 사람에게 한 걸음씩, 반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고난을 겪었지만 도모짱은 행복해져야 마땅한 성정을 가지고 있고,

그녀 몫의 행복을 위해 우직하게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과연 그녀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따뜻하지 않아는 어린 시절의 친구를 추억하는 한 여자가 등장한다. 천사같이 어여쁜

친구와 함께 했던 아름다운 시절. 하지만 그건 그녀의 입장에서 아름다웠다는 것이지,

그 친구가 지냈던 시간들 역시 그렇게 반짝거렸을까?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을 알아챈 그녀의 어린 시절 해설이 펼쳐진다.

막다른 골목의 추억’, 만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쩌면 헤어짐. 이 소설 속의 그녀는

약혼자에게 정리당한다. 감은 잡고 있지만 확실하게 매듭을 짓지 못한 상태. 거기에서

멈춰서서는 안 된다. 정리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 정리란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 정리를 조력해 줄 멋진 친구가 생겼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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