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맷하시겠습니까? - 꿈꿀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여덟 가지 이야기
김미월.김사과.김애란.손아람.손홍규.염승숙.조해진.최진영 지음, 민족문학연구소 기획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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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명의 작가 그리고 여덟 가지 이야기. 제목은 포맷 하시겠습니까?’.

제목만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어지간히 우울한 내용이리라는 것은. 보통 그렇지 않은가?

모든 상황이 쌩쌩 잘 돌아가고, 몸과 마음은 평온하고, 피곤하지만 씩씩하고 성실하게 일단

살아가고 있다면 포맷을 갈구하지 않을 것이다. 포맷을 원하는 그 순간 그 사람은 이미 그가

속해있는 그 상황에 진절머리치는 것을 넘어서서 지쳐있을 거다. 그래서 포맷을 선택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하지만 어쩐다. 포맷은, 인생에서의 포맷은 그다지 쉬워 보이지 않으니까.

이 책에서 여덟 개의 소설을 읽으며 그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해야 했다. 포맷을 원하는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건 소설 속의 세상에서건 힘겹게 힘겹게 견뎌내고 있다는 것을.

20~30대가 읽는다면 더 우울한 내용들, 그 속에서 발견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의 잔재들이

답답함을 불러일으킨다. 아지랑이를 지글지글 피워올리는 8월의 아스팔트 위를 걷고 있는

듯한 인물들을 이제 만나보도록 하자. 맨 처음 소설은 김미월의 질문들이었다. 원래 처음이

중요하지 않던가. 대체로 기억에도 강인하게 남아있기 마련이고. 그래서일까?

이 소설이 책을 덮고나서도 가끔씩 생각난다. ‘죽일까. 말까.’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등단을

목표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면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리 매가리가 하나도 없어 보이는 걸까?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 걸까 걱정이 슬며시

들었을 정도로 기운이 없어 보이는 주인공. 매일 글을 쓰고 있지만 아직 결실를 거두지 못한

상태이고 스스로에 대한 불안과 의심도 없지 않다. 그러던 차에 오빠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결혼을 한단다. 전세금 좀 쓰자고 한다. 흔쾌히, 순식간에 그러마라고 결정을 내리는 주인공.

돈 거래는 부모 자식간에도 하는 게 아닌데...하물며 오빠. 게다가 걱정을 빙자해서 동생의

그나마 있던 기력을 꺽어버리는 오빠와는 돈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 빌려주지 말아야 한다.

그럴 돈이 있으면 30분에 한 번씩 전원이 나가서 29분마다 저장을 해줘야 하는 그 노트북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 하지만 정에 못 이겨 돈을 빌려줘야 한다면 차용증을 쓰고, 이자도

제대로 받고...그래야 한다고 본다.

네가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야’...나는 이런 말을 싫어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치고 진짜

걱정하는 이가 있을까? 매번 드는 의구심, 대체로 그럴리 없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의 오빠가 그런 인물이다.

용기를 주지 못하고, 기운을 북돋아주지 못할망정 고생고생해서 모은 전세금이나 날름

집어가려는 오빠...누군가가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한 적이 없었고, 물론 전세금 빼달라는

오빠는 더더욱 없음에도 슬며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분명히 그 말 때문이었을 거다. ‘네가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인데...’. 그 말만 아니었다면

동생에게 어렵게 돈 이야기를 꺼내는 오빠를 안쓰럽게 생각했을 거다. 미친 집값과

본인이 스스로 부담할 수 없는 전세값에 한숨 쉬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빠는 동생을 말로

걱정하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에게 자비는 없었다. 이 오빠가 내내 싫었고, 지금도 싫다.

그런 감정 이입이 있었기 때문에 이 소설은 강렬했고, 이 작가의 다른 소설도 찾아읽어

보리라 마음 먹게 되었다. 조만간에 꼭!

완전한 불면은 최근에 열대야로 고생하고 있어서인지 몹시 끌린 제목이었다. 잠을 산다,

잠을 살 수 있다면...하지만 잠을 사지 못했고 그녀는 꿈 속인 듯 헤매고 있다. 결국은

마네킹이 되어버리는 그녀를 보는데 왜 이리 슬퍼지는 걸까. 대체로 이 소설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대체로 슬프기는 하다. 위태롭고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들에게 안정은 없었다.

김미월, 김사과, 김애란, 손아람, 손홍규, 염승숙, 조해진, 최진영의 여덟 명의 작가...

이 중에서 내가 책으로 만나봤던 작가는 단 세 명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나서 그 세 명

외에 관심이 향하는 작가가 세 명이 늘었다. 그 세 명의 작가 소개를 살피며 다음에 읽을

책의 목록을 끄적끄적 만들어 보았었다. 여러 명의 작가의 소설이 모인 책을 가끔씩 읽는

편인데, 가끔 이렇게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가를 만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비록 소설의 내용이 전반적으로 톤이 낮고 우울하고 어둡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진 작가들의 소설을 한 권의 책으로 읽을 수 있어서 독서

자체는 보람있었다. 이 내용에 공감할 수 밖에 없고, 이 소설과 비슷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일단 우리는 페이지 바깥에서 살아가고 있어서,

그 특유의 우울함은 일상의 번잡함에 쉽게 가려져버리지만 가끔씩 그 존재감을 느낄 때

분명 약해질 것이다. 그런 순간의 우리의 모습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우울해서 읽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일단 읽고나면 우울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복닥복닥 살아가고 있는, 살아내고 있는 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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