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토시는 점심을 먹으러 맥도날드에 들린다. 그 남자의 휴대전화를 훔칠 생각은 없었다.
그 사람이 내 쟁반 위에 휴대전화를 올려놓았다. 단순한 착각이었을 거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 쟁반 위에 놓여진 그 사람의 휴대 전화의 존재를.
그 휴대 전화로 무언가를 할 생각은 없었다. 장난을 쳐볼까 했지만 그 역시 귀찮고 시시할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엄마다, 그의 엄마였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히토시는 그의 엄마를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었다. 보이스 피싱 비슷한
걸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왠 일? 너무나도 손쉽게 그 사기가 성공한다. 이제 어쩐다?
돈은 손에 들어와 있지만, 이런 게 성공하리라고 예상하지도 못했었기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하지만 히토시가 어떻게 하기로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그의 어머니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를
아들이라고 부른다. 당황한 히토시, 그는 오랜만에 자기 본가로 돌아가본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한 남자가 나와서는 자신이
히토시라고 한다. 그는 나였다. 이 소설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겉잡을 수 없이 스케일은 커져만 간다. 이 책은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해서
사기극으로 가는가 싶더니 급기야 판타지로 바뀌더니 스릴러로 간다. 시시때때로 이 소설은
형태와 모습을 바꾸며 책 속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그리고 막바지에 가면 제법
섬뜩해지기도 한다. 피가 튀고 죽고 죽이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처음에는 그저 평범하게 회사에 다니는 청년이 나왔을 뿐이었는데, 그냥 장난삼아 ‘오레오레’
사기를 흉내내어 봤을 뿐인데...그러다가 또 다른 나를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게 전부인 줄만
알았는데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그 나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도란도란 즐겁게
지내게 되지만 그건 정말 한 때 뿐이었다. 끔직하고 비극적인 결말로 향하기 직전의
잠시 잠깐의 평화랄까. 그리고 세상은 나로 가득찬다. 나로 가득 찬 세상...
히토시가 나를 2명 발견해서, 그들이 삼총사처럼 뭉쳐서 놀러다니고 수다를 떠는 부분에서
‘나’가 많아진다는 것에 대해서 큰 반감이 없었다. 오히려 재미있었다고 해야하나.
있을 수 없는 소설적 상황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히토시들을 보며 나와 누군가의 뒷담화나
험담을 한다는 게 얼마나 신날지 상상해 보았었다. 싫어하는 포인트가 정확하게 일치해서
쿵짝이 맞게 떠들어댈 수 있다는 것, 비난의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고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설득할 필요도 없이 순수하게 누군가의 흉을 신나게 볼 수 있다는 건
그들이 나이기에, 그들이 내 자신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 사람에게서 평소에 인식하지
못했던 나의 버릇을 발견해내고, 그의 마음은 내 마음을 통해 읽어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히토시들이 만들어내는 상황들이 재미있었다. 그들이 떠들어대는 수다를 느긋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즐거웠던 시간들은 이내 지나가고, 이제는 나의 나쁜 점과 조우할 시간이 왔다.
나지만 그들은 조금씩 달랐고, 그래서 분열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다. 그리고 이때를
기점으로 이 소설의 성격은 완벽하게 변한다. 여기에서부터 ‘나’가 무수히 많은 세상의
무서운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들로만 모여있는 세상, 남의 마음을 내 마음같이 볼 수
있는 세상이 얼마만큼 잔혹해질 수 있을지 이 소설의 후반부는 시간을 들여서 들려준다.
모든 내가 나로 있을 때, 우리 모두 각자가 제대로 정체성을 갖추었을 때...세상은 비교적
잘 돌아가게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남과 내가 구분되지 않는 세상은,
각자의 정체성이 모호하기 짝이 없는 공간은 답답하고 혼란스럽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첫 페이지를 넘기며 기묘한 발상에 궁금증이 증폭되었다면,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는 작가의 의중을 헤아려보게 된다. 몹시 독특한 소설이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