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여름의 독서에는 미스터리만한 게 없다. 시선을 뗄 수 없도록 몰입을 시켜
더위나 습도로 인한 불쾌함을 잊게 만들도록 하는 것, 역시 미스터리 아닐까?
호러나 공포도 괜찮겠지만, 미스터리와 더위를 쫓는 방법이 역시 다르니까. 순간의 깜짝 놀람
을 준비하기 위해서 그 외의 시간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보내야 하는 공포나 호러와는 다르게
미스터리는 그 과정 내내 심리적인 줄다리기를 할 수 있다. 범인을 쫓고, 트릭을 캐치하고
아직 찾아내지 못한 마지막 한 조각의 퍼즐을 위해서 흰 페이지 위의 검은 활자들 사이를
재빠르게 내달려본다. 그러다보면 더위는 잊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이 해결되었을 때
한 줄기 바람을 느낀다. 그리고 시원해진다. 그런 시간들이 좋기 때문에 여름이 되면 이 책들
읽게 된다. 하긴, 곰곰이 생각해보니 난 겨울에는 미스터리를 읽는다. 여름과는 다른 이유로.
그냥 미스터리를 좋아하는가보다. 그래서 사시사철 미스터리의 행방을 구하고, 꼬박꼬박 성실
하게 챙겨읽고 그러다가 잊지 못하게 재미있는 미스터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미스터리
를 읽을 때면 늘 두근거린다. 이 책이 바로 그 책일지도 모르니까. 기억에 오래 남을 바로
그 책 말이다.
‘부러진 용골’이라는 책 제목만 보고 생각나는 게 없었다. 우선 용골이 무엇인지 몰랐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아닌 것 같기도 해서, 찾아보았더니 선박 용어였다. 용골은
선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고, 게다가 그게 부러졌다니...불안을 저 끝까지 몰고
갈 작정일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다 읽고나면 알게 된다. 정말 마지막 페이지 즈음에
이르면 이 제목의 의미가 확실해진다. 한 가지 살짝 귀뜸하자면 그런 불안함을 느끼게 만드는
그런 쓰임으로 이 제목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 미리부터 의심하지 말고 그저 편안하게
이 책의 흐름에 몸을 맡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라고 시종일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던 내가 이 책을 다 읽고나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흐름에 맡기며 읽는
게 이 소설에는 제일 적당할 것 같다.
시대물과 판타지 그리고 반전이 존재하는 미스터리의 조화가 이 여름의 밤을 조금은 짧게
만들어주는 소설이었다. 매일 밤마다 조금씩 읽었었다. 아름다운 영주의 딸이...참 아미나가
아름다웠던가? 16세라고 나이는 나왔지만 아름답다는 문장을 기억나지 않는데...아름다움을
칭송하는 그런 대목도 없었고, 영주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아름다움을 칭송받지
못하였다면 어쩌면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외모가 꽃같이 아름다운지는 잘 모르겠으나
영민하고 똑똑하고 지적인 면모만큼은 평범한 아름다움을 뛰어넘은 아미나가 있다. 그녀는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후계자 순위에서 제외된 듯한 느낌을 주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그렇게
갑자기 살해되지만 않았더라도 그 판도는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녀의 아버지라면,
그렇게 현명한 아버지라면 그 아들이 얼마나 비겁한 녀석인지 금새 알아차렸을테니까.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살해당했다. 그녀가 살고있는 그 영토에 새로운 용병들이 들어온
바로 그 타이밍에 누군가에 의해서 명을 다하고 말았다. 그녀는 이제 그 살인범을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혼자서는 무리다. 여러 나라 말을 이해할 수 있고, 직감이 아무리 뛰어나고,
상황 판단 능력이 출중하다 하여도 그녀는 그 시대에 적합한 무언가를 배우지 않았으니
누군가의 조력이 필요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게 책만 읽지 말고, 검술이라도 배웠으면
좋았을텐데. 그리하여 그녀의 편에 선 조력자는 팔크와 그의 조수 니콜라.
그들은 성 암브로시우스 병원형제단 소속으로 그들의 반대 파를 제거하기 위해서 길을 나선
참이었고, 소문에 이곳으로 그들이 숨어들었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듣고 작은 섬으로 들어오게
되었던거다. 팔크는 영주가 죽기 직전에 그를 노리는 암살자의 존재를 경고했고, 실제로 그의
말이 실현된다. 이제 그는 영주의 딸을 도와 그 살해범을 찾으려 한다. 그 살해범을 찾는
것이 그가 소속되어 있는 그 집단의 목적과 그의 신념에 일치하는 일일테니까.
그리고 이제 책을 본격적으로 살인자 찾기를 시작한다. 용의자를 줄이고, 알리바이를 검토한
다. 그 부분만큼은 보통의 미스터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역시 시대상황이려나.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다. 이곳은 마법과 마술이 존재하는 세계,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
세상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룰이 다르다. 그 점만 인정하고 독서를 시작한다면 상당히
흥미롭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으리라 짐작된다. 미스터리를 사랑한다면, 그래서 거의 모든
종류의 미스터리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다면 말이다.
‘부러진 용골’로 시작하는 제 2권이 나온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깔아놓은 2권의 아우라를 또렷하게 느꼈으니까. ‘부러진 용골’이 크나큰 히트를 치면
2권을 반드시 나오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시리즈가 될지도. 그럴 가능성이 느껴진다.
이제 남은 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열광적인 성원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