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프랜즌의 소설이다. 그의 소설 ‘자유’를 무척 흥미롭게 읽었었다. 적어도 그렇게
기억한다. 그래서 ‘조너던 프랜즌’이라는 이름으로 이 책에 대한 기대를 지나치게 키운 게
아니었던가 싶다. 아니면 적어도 지금이 장마철이 아니었으면 좋았을텐데 싶기도 하다.
습도가 높은 이 계절에 이 소설과 비슷한 스토리 유형을 가진 책을 읽는다는 건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책 자체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이 가진 스토리 자체의 울적함이
이 장마철의 습도와 화학작용을 일으켜서 개인적으로 무척 괴로운 독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습도를 피하려고 집 근처 커피가게로 이 책만 들고 내달린 적 있음을 고백한다.
그랬을 정도로 이 눅눅한 날씨는 이 책을 읽는데 여러모로 영향을 끼쳤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소설이 기저에 깔고 있는 그 울적함과 우울함을 한껏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은 이 시기가
적격인지도 모르겠다. 온 몸으로 이 책을 지배하는 그 끈적한 감정들을 하나 하나 빠짐없이
느낄 수 있을지도... 적어도 나는 그랬었다. 그리하여 페이지는 매우 천천히 넘어간다.
인상깊게 읽었던 ‘자유’도 가족을 다루고 있었고, 분위기 역시 밝지 않았으며 개인적인 갈등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했다는 점에서 ‘인생수정’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솔직히 두
소설에 대해 이렇게 극단적인 인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몇 가지 이유를
찾아봤었는데...‘자유’와 소재나 스토리 전개에서 비슷한 유형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작에 대한 반복으로 인식해서 흥미가 반감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하나는 역시 이
날씨가 아닐까. 하긴 요즘의 난 모든 것을 이 날씨 탓으로 돌리고 있어서 신빙성이 낮기는
하지만 이 무겁기 짝이 없는 날씨는 이 소설 자체의 분위기를 한껏 억누르는 데 일조한다.
‘인생수정’에서도 한 가족이 등장한다. 앨프레도와 이니드 그리고 그들의 세 자녀를 이제부터
이 두꺼운 책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이미 장성하여 독립한 상태이다. 하지만
이들이 과연 제대로 된 어른으로서의 삶을 꾸리고 있느냐? 글쎄, 거기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는 사람마다 각각 다른 결론을 내리게 되겠지만 개인적으로 고개를 젓게 된다. 이 소설
전반을 통틀어서 세 남매의 삶과 감정의 변화 그리고 갈등 유형을 꽤 자세히 살펴보게 되는데
복잡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꽤 무거운 심리상태를 짊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남매는 닮았다.
물론 그들의 문제는 각자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럼 그들의 부모는 어떨까?
조너선 프랜즌의 소설이 인상적인 건 바로 이 부분이다. 자애롭고 넉넉하고, 자식의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해주기 위해 부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거다. 부부는 그들 나름대로의 문제를
가지고 있고,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문제 역시 가지고 있다. 그들이 얼마만큼
나이를 먹든지 사회적으로 얼마만큼의 성공을 거두었는지...이런 것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들은 각자에게 할당되어 있는 문제와 고민거리가 있기 마련이고, 그들이 부부라면 그들의
결혼생활 역시 그 문제를 처음부터 끌어안고 있었고 공동생활이 시작하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문제는 불거진다. 작가의 소설 달랑 두 권을 읽고나서 이런 공통점 찾기를 하는 게
성급한 것 같기는 하지만...일단 두 소설만을 비교해보자면 그렇다는 거다.
이 소설에 나오는 부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이 부부와 세 자녀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여러 가지 문제를 골고루 가지고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보면
답답해진다. 이런 날씨에는 가볍게 코미디나 오싹한 미스터리를 읽었어야 했던게 아닌가
싶어지고 만다. 하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였으니 인내심을 갖고 그들의 삶 속으로,
그들의 문제 많은 일상 속으로 한참 걸어들어 가보도록 하자.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마지막, 그러니까 정말 마지막이 되어가면 그들이 한 걸음 내딛는 걸
확인하게 된다는 거다. 정말 미약하긴 했지만... 이 한 권의 소설에서 그들이 쏟아내던
무겁고 어두운 감정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상큼하고 가볍게 한 걸음 내딛게 되는데...
마치 끝간데 없이 이야기를 궁지로 몰아가던 드라마가 뜬금없이 몇 년 후를 보여주며
서둘러 마무리 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라서 개운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그게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거 정말 장마 끝나고 나서 다시 읽어볼 참이다. 아니면 장마 기간에 ‘자유’를
다시 읽어보거나. 정말 날씨 때문이었을까? 이제 검증만이 남아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