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런 제목이? 제목만 보면 당최 감이 잡히지 않는다.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친다니...공상 소설인가? 판타지??
이랬다는 걸 고백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나말고 또 있다면 일단 이 책을
읽어보라 살짝 권하고 싶다. 왜냐면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나면 이 제목이 더 이상
난해하게 다가오지 않으니까. 오히려 어떤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체스의 바다 속에서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는 한 소년의 모습을 말이다.
한 아이가 태어난다. 입술이 붙은채로. 수술을 통해서 입술을 떼어냈지만 어색한 수술자국이
남았고 그 자리에는 정강이 솜털이 자리잡고 있다. 아이는 또래 친구가 없는 것 같다.
아니, 있다. 벽 속의 소녀, 미라. 벽 속에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한 소녀를 미라라고 이름 짓고
매일 밤 조근조근 끝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친구는 더 있다. 코끼리. 백화점 옥상에 잠시
올라갔다가 너무 커져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지 못하게 된 비운의 코끼리. 그 코끼리는
옥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거기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 코끼리도 아이의 둘도 없는 친구다.
그러던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학교에서 또래 친구가 생겼느냐고? 아니, 그럴
리가 있나. 외려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아이는 수영장에서 한 남자를 발견한다.
그런데 그는 죽어있다. 학교 근처에 있는 버스 회사에서 일하는 기사라고 한다. 아이는 홀린
듯 그 버스 회사를 찾아간다. 그리고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체스와 말이다. 그리고 체스 사부님과!
체스 사부님은 덩치가 큰 남자였다. 그리고 아이는 그에게서 체스를 배우며 소년이 된다.
달콤한 향으로 가득 찬 버스 안에서 고양이 폰을 안고 체스를 두는 소년은 체스의 세계와
사랑에 빠진다. 비록 그는 체스 테이블 아래에서 웅크린 채 체스를 두는 습관이 생겼지만.
그렇더라도 괜찮았다. 그런 걸 괜찮다고 자애로운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사부님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 평온한 날도 끝이 난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소년은 커지는 것에 대하여 무한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스스로의 성장을 멈춰버린다.
몸이 커져서 벽 사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소녀 미라, 엘리베이터 한도를 초과하는 체중으로
결국은 옥상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했던 코끼리, 달콤한 간식을 먹고 또 먹다가 결국에
너무 커져버린 체스 사부님까지. 그들에 대한 기억은 소년이 더 이상 자라는 걸 거부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크기를 고정시키고 성장을 멈춘다.
그 이후에 그는 리틀 알레힌으로 체스는 두는 나날을 보낸다. 일단 체스를 둘 수 있었고,
곁에는 미라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었기에 그는 그 세계를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폭력은 어김없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그의 평온은 망가져버린다. 여전히 소년의
몸인 그는 폭력에 대응하기에 너무 작았고 무력하리만큼 순진했으니까. 그는 거기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그를 아끼고 사랑했고, 있는 그대로의
그를 받아들인다. 동생 역시 그를 따르고 좋아한다. 미라 역시 그를 살뜰하게 보살펴준다.
체스 사부님은 말할 것도 없다. 그의 인생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가르쳐주었고, 그에게는
인생이 지침이 되는 말을 들려주는 사람이었다. 체스를 통해 인연이 닿았던 사람들도 대부분
좋은 이들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만나게 되는 나쁜 사람들이 그의 세계를 부순다. 철저하게...
그리고 그가 나름대로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그 세계에서 떠나가게 만든다. 그런 헤어짐과
떠남은 그를 어떤 방식으로든 성장하게 만든다. 그의 체스에 대한 마음을 더욱 확고하게
만든다. 체스에 대한 마음만큼은 사그라들지도 마모되지도 않는다.
그런 이야기가 이 한 권의 책에 실려있다.
오가와 요코의 소설이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바로 그 요가와 요코.
그녀의 다른 소설처럼 이 소설은 사냥하지만 슬프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삶을 주인공에게
선사한다. 수식을 사랑했던 작가의 이번 선택은 체스였다. 이 책을 따라가다보면 체스 규칙을
알게 된다. 체스에 대해 다정다감하게 설명해주니까 저절로 규칙이 대략을 숙지하게 된다.
이 소설에는 체스를 사랑하는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고, 그렇기 때문에 체스 자체에 대해서도
애정과 따사로움이 넘쳐나서인지 억지로 익히고 외우려들지 않아도 체스의 규칙은 스스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체스를 잘 모르니까, 체스는 별로 흥미없으니까 이 소설도 어쩌면 별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잠시 뒤로 미루기를.
이 책에는 슬픔이 고여있다. 그렇다고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그런 슬픔은 아니다.
적당하게 무게감을 가지고 있는 아련하고 나직한 슬픔이라고 하면 되려나?
그 슬픔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주위를 맴돈다. 그러니까 슬픈 책. 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