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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1
캐서린 스토켓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인종차별에 대한 책이나 영화를 선택할 때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마음이 바스랄질 것만 같은
잔인한 장면을 보게 될까봐.
가끔 그런 생각할 때가 없는가? 인간이란 이기적이고 제멋대고, 때로는 편협하다 못해
징그럽게도 못돼먹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경우 말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착하다고 믿으며 살고 있지만, 어떤 상황이나 사건을 계기로 그 믿음의 기반이
몹시 약해지기도 한다. 차별에 대한 문제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소개글을 읽으며 잠시 멈칫했었다. 주요 소재가 인종차별이었고, 그 차별이 정점에
이르렀던 1960년대가 시대적 배경이었으니까. 이 책을 계기로 인간의 못된 본성을 실감하면
어떡하나 싶어서 손 끝에 닿으려는 책에서 한 걸음 물러서야 할까 고민했었다.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인종차별을 둘러싸고 격렬한 충돌이 일어나던 그 때에
강도높은 물리적 폭력이 동반되기도 했었다고 한다. 폭발이나 피습사건같은...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폭력이 존재하는 책은 언제나 읽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집어드는 데
한참이 걸렸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읽기 전에 조금 걱정을 했다. 이 책의 대부분을 덮고 있는 게
슬픔이나 고통 같은 것일까봐. 많이 망설였지만, 끝내 이 책을 지나쳐버릴 수는 없었다.
이 책에 대한 아마존 평점과 서평에 홀려버렸으니까.
꽤 많은 사람들이 별점을 매겼는데, 어떻게 저 별점이 나올 수 있을까 무척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찬사에 가까운 서평들이 눈에 띈다. 오~! 고전의 탄생이란다. 올해 읽은 최고의 책이었단다.
그런 서평글을 읽었는데 어떻게 쿨하게 이 책에서 등을 돌릴 수 있었겠는가!
그러다보니 입소문만으로 500만부가 팔렸다는데 정보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이 소설만의 특별한 뭔가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조바심이 생겨버렸다.
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뒷걸음질 쳤다가 나중에서야 읽고 진작에 읽을 걸 그랬다며
아쉬움에 한숨을 쉬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냥 읽어보기로 했다. 아마존 평점을 믿고, 서평들을 믿고 말이다.
두 권의 책이었는데 순식간에 읽었다. 물론 요즘 책들은 왜 다 두 권으로 나오나 몰라
툴툴대기도 했지만...그런 불평을 하면서도 1권이 100페이지 정도 남았을 때 허둥지둥 책을 주문했고,
마침내 2권까지 내 손에 들어왔을 때에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다음 내용을 궁금한데 책은 아직 배송중인 상태가 아닐테니까 안도했달까.
이제 이어서 읽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편안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읽는 사람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수집한 정보들을 가지고 인물들의 상황에 간섭하기 시작하게 만든다.
'이봐요, 그건 그런 게 아니라구요!'라며 등장인물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특정 인물에게 그러다가 큰 코 다치는 일이 있을거라고 충고의 중얼거림을 던지기도 한다.
그럴 정도로 책을 읽는 사람에게 친근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달까.
이 소설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이 특정한 1인이 아니기 때문에 책을 읽다보면
꽤 풍부한 상황이나 배경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고 소설의 흐름을 대략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페이지 밖에서 단순히 소설을 읽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어느새 페이지 속으로 한 걸음 정도 걸어들어 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소설과의 거리가
가까워 졌다고 해야하나. 그리고 단축된 거리만큼 이 소설의 등장인물과 상황에 대한 공감은 깊어졌다. 그러다보면 이야기 속에 더 매료되어 가게 된다.
걱정했던 물리적 폭력은 예상했던 것보다 낮은 빈도로 등장했다. 물론 그 자리에는 심리적 폭력이
자리를 잡았고, 물리적 폭력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그래도 걱정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심리적 폭력은 난폭했다. 결코 놓아주지 않는 집요함으로 무장한 심리적 폭력은
이 소설 속에서 무섭게 그려지고 있다.
미시시피의 작은 마을이 이 책에서 주어진 공간이다. 그 곳에서 1960년대에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상황이 2권의 책으로 성실하게 꼼꼼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 작은 마을 바깥으로 시민권 운동은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변화의 물결은
유색인이 아닌 그 마을 사람에게는 반발만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정해진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상해를 입을만큼 린치를 당했지만
범인마저 잡지 못하고, 도둑으로 거짓 누명을 쓰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마음고생하는
가정부도 등장한다. 일상에서 모멸적인 언사에 노출되고 있으며, 인간으로서 대해지는 게 아니라
부리는 누군가로 취급당할 뿐이었다. 그들에게서 도움을 받으면서도 법정된 임금은 지불하지 않았고,
그들이 듣고 있는 자리에서 말을 가리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그럴 권리가 있는 냥 행동한다.
화장실을 따로 쓰고 싶어해서 집 안에 유색인을 위한 화장실을 무리해서 짓고,
식사도 따로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면서 어째서 자신들의 공간에서 일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는건지
무척 의아했지만...그때는 그랬었나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도 그런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한 여성이 있다.
유색인 가정부 손에서 자랐고, 그녀를 길러주었던 가정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의 친구들이 자신의 가정부들에 대해서 가혹하게 구는 것을 견디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진다. 언제까지 친구들의 행동에 맞장구치며 스스로를 속여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녀는 그런 자기기만을 그만두기로 한다.
이제 그녀는 가정부들의 목소리를 모으려고 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녀가 그런 마음을 먹었다고 가정부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의향에 찬사를 보내고
기꺼이 도움을 줄 리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어이없어하고, 의아한 시선을 보내며 한 걸음
물러서는 게 당연지사가 아닐까. 그녀를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그녀는 그들의 편이 아닐 것인데, 그들을 하대하는 대상들의 편에 선 것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우선 그녀는 가정부들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그들의 목소리를 모을 수 있다. 그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자못 감동스럽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차별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 소설 속에서 가정부를 고용하고 있는 부인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듯이 차별적인 대우를 자행하고있는데, 스스로는 어떤 잘못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잘못은 커녕 가정부인 그들이, 유색인인 그들이 나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을 돌봐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동일한 라인에 서 있는 인간으로서의 대우같은 건
상상해 본 적도 없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현재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에 그런 식으로
자행되는 차별이 있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생겼다. 그리고 아니라고 냉큼 대답할 수 없어서
씁쓸함은 느꼈고 답답해졌다.
차별은 존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차별이 없는 상태를 추구하는 건 가능해도,
차별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쩔수없이 차별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차별이라는 대상과 맞딱드렸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그 차별이 동조할 것인가, 그 차별에 침묵할 것인가, 그건 차별이라고 말할 것인가,
차별이므로 이건 안되는거라는 목소리에 힘을 실기 위해 무언가를 할 것인가...
각자의 선택일 것이고, 선택에 따라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우리 안에서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건 너무나도 쉽지만, 쉬운 게 옳은 건 아니고 정당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언제나 기억해야겠다. 그리고 그 순간을 목격한다면 소설 속의 그녀들처럼 용기를
내야 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변화를 만들어 내는 건 용기가 아닐까 한다. 용기로 무장한 행동만이 세상을,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서 조금 용기있는 사람이 되어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씩씩하고 용감하고 움직이는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