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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권 ㅣ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2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홋카이도이기에 이 소설의 제목은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 자체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폭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소설의 거의 대부분의 줄거리가
이런 식으로 진행될 수 없었을 테다.
눈이 존재하기에, 사람의 발길을 잡는 거대한 눈이 내리는 공간이었기에
이 소설 속의 분위기와 전개가 유효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게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이 책을 읽다보면 '이게 모두 눈 때문이다'라는 핑계를 댈 수 있는 부분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눈이 오지 않았다면, 폭설이 내리지 않았다면 이 소설의 흐름을 완전히 달라졌을 것 같다.
눈이 오면서 등장인물들은 한 공간으로 모이게 되고, 눈으로 인해서 그곳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눈으로 인해 원래의 계획은 어김없이 틀어져버리고,
방향감각을 상실한 등장인물들은 우왕좌왕하며 소설 속의 사건은 얽히고 설킨다.
강도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인질들은 감금되고, 눈 속에서는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누군가는 돈을 훔치고 도망치는 중이고, 불륜을 감추기 위해 필사적이기도 하고,
의붓 아버지의 추악한 폭력에서 탈출하기 위해 가출하기도 한다.
각기 다른 사연으로 폭설이 예상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왔지만,
결국 그들은 폭설로 더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한 펜션에 모이게 된다.
눈에 쌓여서 단 한 걸음도 옮길 수 없는 상황에서 그 공간은 적막하고 섬뜩한 공기만
흐를 뿐이다.
이런 저런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소설이었다.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치는 사람들도 많고, 눈 속에서는 시체가 발견되고,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또다른 사건을 계획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등장인물들도 상당수인데 어쩐지 소설 속의 분위기는
조용하기만 하다. 소란스러움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도 역시 눈 때문이었을까?
현실의 눈처럼 소설 속에 내리는 눈도 어쩌면 소리를 흡수해버리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만큼 책 속의 분위기는 고요하기만 하다.
덜컥하고 방문이라도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깜짝 놀랄만큼 말이다.
경찰소설로 유명한 사사키 조의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2권이다.
그리고 시리즈의 주인공인만큼 카와쿠보 경관은 이 소설 속에서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활약상이 크지 않은 편이다. 눈은 카와쿠보 경관의 발목 조차도 잡아버리니까.
자연재해는 현실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다는 것을 무던히도 알려주는 소설이었다.
폭설 속에서 발이 묶인 그 고요 속에서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같이 휩쓸려 버릴 수
있는 상황 속에서 한없이 약해져버린다.
슈퍼 히어로가 아니니까, 사람의 삶은 단 한번 유효하기에 그들은 눈 속에서 발생한
타인의 위기에 대해 자신있게 나설 수가 없다. 물론 카와쿠모 경관 조차 말이다.
카와쿠보 시리즈를 읽으면, 사사키 조의 소설을 읽으면 어쩐지 주위가 조용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소설 속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탓이 아니었을까.
잡다한 소음이 전혀 없는 그의 소설을 계속 기다리게 되고, 신간이 나오면
바로 읽게 되는 건 그 분위기에서만 가능한 소설 세계가 흥미롭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카와쿠보 시리즈가 앞으로 쭉 계속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