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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Paris 리얼 파리 - 아티스트 차재경이 만난 파리지앵 15인
차재경 지음, 이정우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리얼 파리'에는 파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과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각자 다른 직업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의외로 이들의 공통점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의 일에 열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어떤 곳보다 지금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 넉넉하고 따뜻한 애정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꼭 닮아 있었다.
파리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파리에서의 삶을 말해주는 책, 그래서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15명의 '리얼 파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직업관,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 일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 그리고 그들에게 파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도시에서 즐겨 찾고, 다른 사람에게도 슬쩍 자랑하고 싶은 장소도 각자 몇 군데씩 추천해주고 있다. 참 마음에 드는 서점이라던지, 오후의 기운을 일깨울 것 같은 예쁜 카페와 비스트로, 하루쯤 시간을 내서 꼭 걸어보고 싶은 얀의 산책길 그리고 멋진 명소와 정겨운 작은 공간들이 파리의 매혹에 힘을 실어준다.
그리고 사진이 멋지다. 팝업북을 읽는 기분이 들 정도다. 그만큼 파리가 옆 동네처럼 가깝게 친근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사진이 이 책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게 아닌가 한다. 인물사진을 보며 항상 하게 되는 생각을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반복했다. 사람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봐야 이렇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거지라는 아직 말끔하게 풀지 못한 미스테리가 마음 한켠에서 잊혀져 있다가 다시 잠에서 깨어난다. 아무튼 사진도 참 좋은 책이다.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면 지금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될 것 같다. '그냥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돼. 네 마음이 시키는대로 쭉 따라가면 되지 않을까'라는 간단한 진리를 옹알거리기에는 '그딴 소리 들으려고 이야기한 것 같아'라는 심드렁한 표정을 상대방에게서 발견하게 되리라는 걸 너무나 잘 안다. 그리고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은 영화속의 금자씨만이 하는 대사가 아니기에 그런 말을 쉽게 꺼낼 수 없을 것 같다. 우선 나부터 잘하고 있는지 아직은 자신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건네주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멋진 모습이 담긴 책이니까 말이다. 천마디 말도 좋지만 스스로의 문장력과 단어구사능력을 책망하면서 짜내고 짜낸 한문장을 쓴 쪽지와 함께 한권의 책을 두 손에 꼭 쥐어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좀 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봤으면 더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생긴다. 2권을 기대해봐도 될런지...
그리고 그 속에서 지금 파리에서 논란의 정점에 있는 사회적이나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그들의 생생한 의견을 들어봤으면 좋을텐데라는 생각도 했다. 조금은 가볍게 일상적인 접근으로 말이다.
'리얼 파리'에서 보여준 새로운 스타일의 파리접근법이 아주 마음에 든다. 파리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통해서도 그 도시에 대해 알아갈 수 있겠구나 느꼈다. 그리고 파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 도시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어쩌면 파리를 더 멋지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왠지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도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 같다는...
파리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단 한달만! 여행은 아니지만 생활이 되지 않는 기간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한달로 이 도시에서 살아봤다는 오만한 소리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에 쫓겨 발걸음을 재촉하며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그저 지나치는 게 아니라 마음을 빼앗은 그림 앞에서 내가 원하는만큼 실컷 체류하고 싶으니까, '리얼 파리'에서 알게 된 멋진 공간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리고 파리라는 도시를 아름답게 하는 건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아무래도 한달로는 부족할 것 같다.
파리에서 살아보았다는 걸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을만한 기간은 아무래도 그곳에 가서 살아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