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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습작 -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쏟아져나오는 스토리텔링책들의 지시사항을 따라가면서, 이렇게 하면 제대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건가 의구심이 든다. 그리고 그 순간 일시정지 버튼이 눌러진다. 그런 의심따위는 한구석으로 몰아넣고 책에서 시키는 대로 한번 해봐도 좋을텐데 '여기서 그만!'을 외치고 만다. 그동안 몇권인가의 책을 읽으면서 이것저것 해야할 것들은 잔뜩 제시하기만 하지 결국은 그들에게서 비슷비슷한 모습을 발견했었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이 책에 마음이 끌렸던 것 같다. '따뜻한 글쓰기 특강'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글을 쓰는 기술이 아닌, 글을 쓰기 위한 마음을 준비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 했었다.
글을 쓰려면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가 항상 궁금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된다면 최소한 내 마음이라도 잘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러면 섣부른 오해나 편견으로 상대나 세상을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도 크게 줄어들지 않을까. 그러면 이전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내가 바라왔던 태도로 일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일상의 기록을 멋지게 남길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예전부터 일기를 잘 쓰고 싶었다. 얼마전에 책장 정리를 하다가 초등학교때 쓰던 일기장을 발견했다. 일기는 역시 남이 쓴 걸 봐야 재미있는 것 같다. 내가 쓴 일기는 속이 울렁거리고 손발이 오그라들어 한페이지를 마저 읽지 못했다. 이 일기장을 어찌 해야 하나 지금도 고민중이다. 봉인을 해버려야 할까, 아니면 슬쩍 재활용박스에 넣어야 할까. 후자를 택할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지고 있어서 어쩌자는 건지도 모르겠다. 읽어낼 자신도 없으면서 말이다.
강압에 의해서긴 했지만 6년이나 일기를 작성했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불리우는 때에도 무언가 적어오기는 했었다-물론 그때의 기록은 그때그때 적당한 때에 전부 파기한 것 같다. 가지고 있는 게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수납과 정리의 기본과정인 버리기를 선택했던 그 당시의 나를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일기쓰기가 영 서툴다. 쑥스럽기도 하고, 일기에서마저 미화하고 포장하며 허술하게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다. 허탈하게 웃으며 넘기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다. 그래서 가끔 글쓰기 관련 책을 찾아 읽었더랬다. 언젠가 멋진 일기를 써보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거해라, 저거 해라에 지쳐서 금새 책장을 덮어버려서 별다른 성과도 없고, 일기글은 이전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전에는 일기를 쓰는 시도라도 했지만 요즘은 아예 손을 놓고 있으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따뜻한 글쓰기 특강이라는 '천년습작'에 또다시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런 자신을 바라보며 선택적인 학습능력을 가지고 있는 종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런 근거없는 희망은 무엇이든 쉽게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그렇다고 열정적으로 집중하는 것도 아니라서 좀 그렇기는 하지만- 긍정적 측면도 있으니까 나름대로 가치있지 않을까.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며 따뜻하게 진심을 담은 글을 쓸 수 있는 훈련을 다시 한번 시작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던 것 같다.
책표지를 보면서 저 책상과 컵을 가지고 싶다부터 시작해서 온갖 잡념과 공상의 실타래를 풀고 있는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잠시 티타임을 가져야 했으니까.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쓸 때 입는 옷부터 시작해서 기타등등 글쓰기 플랜을 위한 허무맹랑한 준비물품들이 한도 끝도 없이 줄을 지어 떠올랐다.
그런 꼬리에 꼬리에 무는 잡생각의 파워에 순간 멈칫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책의 내용이 마음에 들어서 알찬 독서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동안 찾고 있었던 글쓰기 책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럴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느낀게 있다면 글 쓰는 삶이란 참 고단하겠구나였다.
어느 하나 허투로 해서는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 한 줄, 단어 하나가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것을 잡아채서 종이 위에 묶어두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기 위해서 준비할 것도 배워야 할 것도 많은 듯 하다.
이 책을 다시 한번 더 읽어 볼 생각이다. 이번에는 좀 더 본격적으로. 함께 읽을 작품 목록에 있는 책도 구해서 말이다. 아직 읽지 않은 책도 있지만, 예전에 읽었던 책도 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더 읽어볼 생각이다. 나의 기억에는 없는 책의 일부분을 이 책에서 읽으면서, 안 읽은거나 다를 게 하나도 없겠다 싶었다. 이번 기회에 꼼꼼히 다시 한번 읽어 볼 참이다. 영화 두편은 이미 봤던 것이지만 이 역시 다시 한번 볼까한다. 그리고 아니 에르노의 책을 꼭 읽어보아야 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정식으로 강의를 듣듯이 이 책을 읽어나가면 좋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분명히 무언가를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책을 펼치기 전에 가졌던 목표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한다.
이미 한번 읽었지만 다시 한번 제대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일기 쓰기가 그다지 즐겁지 않고 만족스럽지도 않아 항상 불만스러웠다면 이 책을 읽어봐도 후회하지 않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