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완벽한 하루
멜라니아 마추코 지음, 이현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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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밤의 정적을 흔드는 총성이 누군가의 잠을 깨운다. 연이어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지며 경찰이 출동한다.

 

그리고 시계바늘은 하루 전으로 되돌려진다. 그리고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창문을 마주보며'로 감독으로 유명한 페르잔 오즈페텍이 이 책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Un Giorno Perfetto, A Perfect Day

 

우리 나라에서 이 영화는 '운수 좋은 날'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운수 좋은 날이라니!

 

그리고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떠올리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유명 소설을 토대로 그 영화의 내용을 짐작하게 될 것이다.

 

엔딩을 짐작하게 하는 영화표를 사는 일은 드물다.

 

작년에 이 영화를 스쳐지나 간 적이 있다.

 

영화 프로그램에서 보고 싶은 영화 고를 때, 그런 이유로 이 영화를 예매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제목이 '어느 완벽한 하루'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하루동안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 외에는 제목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다.

 

물론 총성으로 시작해서 '설마...'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책을 읽어가며 주인공들을 파악하면서 그 불안감은 짙어지지만

 

그래도 마지막 페이지를 읽기 전까지 작가가 마음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이런저런 상상을 접어두게 된다.

 

'어느 완벽한 하루'도 '어느'라는 수식어 때문에 미심적인 눈초리를 보낼 수 밖에 없지만

 

생뚱맞게 발랄한 해피 엔딩이 될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조차 박탈해버린 '운수 좋은 날'이란 영화 제목보다는 마음에 든다.

 

이 소설에는 두 가족이 등장한다. 그 가족들의 완벽한 하루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었다.

 

일상 해부학이라는 설명에 완벽하게 화목하고 온기가 느껴지는 가족의 모습을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것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가까이 있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것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거리에 공존하는 것이다.

 

자신에게마저 감추고 싶은 초라함과 치사하고 구질구질한 면모를 들켜버릴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섬세하고 미묘한 무언가를 감지할 수도 있다.

 

이 소설에서는 그런 게 있다.

 

520페이지, 하루를 담아내기에는 넘치는 쪽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의 두께에 뒷걸음을 치고 책장 한 구석으로 밀어내 버리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홉명의 등장인물이 만들어내는 자잘한 사건과 그들의 마음 한켠을 들여다보는 것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가족 잔혹사라는 부제가 붙었다해도 억울할 게 별로 없어 보이는 이 소설은

 

일상의 모순을 통해서 잔인함과 흔들림이 드러나지만 얼어붙을만큼 냉혹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작가의 동정어린 시선이 담겨있는 문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차곡차곡 마일리지 적립하듯 쌓여가던 불안과 갈등의 폭탄에 불이 붙던 어느 하루의 기나긴 여정에 대한 긴장감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영화 검색은 책을 읽고나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영화 리뷰에서 알 수 있는 건 감독과 배우 소개만이 아니니까 말이다.

 

영화 리뷰를 몇 편 읽어봤는데, 조만간에 영화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완벽한 하루'를 읽고 멜라니아 마추코에 신뢰가 생겼다. 그녀의 다른 책들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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