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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집
가토 유키코 지음, 박재현 옮김 / 아우름(Aurum)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초록 색의 예쁜 표지가 이 계절과 잘 어울린다. 그리고 노란색 책끈에서는 향긋하고 진한 벌꿀 냄새가 날 것만 같다.
200페이지가 채 안되는 아담한 책은 반년간 같이 살았던 남자친구가 짐가방을 돌돌 끌며 떠나버리고, 엄마와도 이미 오래전부터 사이가 틀어져버린 리에의 좌절극복와 자아찾기가 소복히 담겨있다.
알고보니 친구와 사귀고 있는 집나간 못돼먹은 전 남자친구와 지긋지긋하고 정떨어지는 회사생활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련없이 정리해버리고, 일상적인 짧은 전화통화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모녀 관계에서도 잠시 벗어나고자 하던 때에 그녀는 운명처럼 '꿀벌의 집'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녀는 '꿀벌의 집'에 양봉조수로 채용된다. 산에 둘러싸인 그곳에서는 도시에서 즐겨보던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과 가을패션전망을 전하는 여성지는 더이상 그녀의 관심을 차지하지 못한다. 북덕거림속에서 적당히 즐겁게 지내는 시간들을 더이상 없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사라지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던 냉랭함을 데리고 갔다. 회사에서 전표를 만들고 있을 때, 선술집에서 시끌벅적 흥에 겨울때, 만원전차 속에서, 특히 아파트 문 안쪽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찾아오던 그 냉랭함이 벌꿀의 집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연의 방식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연의 힘은 그녀를 치유하고 삶의 태도를 바꾸어 놓는다.
범상치않은 '꿀벌의 집' 사장인 기세 씨와 미국에 살면서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의 아들 조지, 꿀벌을 사랑하며 마음의 상처를 극복해가고 있는 아케미, 꿀벌에 대해서만은 따뜻하고 성실한 그리고 수다스럽기까지한 폭주족 리더 출신 겐타, 그리고 이들을 돕는 마을 사람들 모두는 자연과 묘하게 닮아있다. 그들 역시 이곳에서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꿀벌을 돌보는 동안 그녀는 마냥 싱그럽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강하고 단단한 자연속에서 이전의 삶의 방식을 지워나간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란다. 마음의 키가 비가 온 다음날의 죽순처럼 쑥쑥 자란다. 그리고 이전의 수면을 표류하듯 살아가던 방식을 떠나서 그녀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는 삶을 선택하게 된다.
이 책은 그녀가 그동안의 상처와 아픔을 직시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따뜻하지만 담담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제멋대로인 인간과 한없이 너그럽고 포근하지만은 않은 자연을 과장없는 어조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그리고 꿀벌과 양봉에 대한 기초 상식도 알 수 있다. 평화롭게 보이는 꿀벌의 세계가 성실하게 자연의 규칙을 따르고 있는 것과 그 꿀벌들을 돌보는 양봉가의 모습을 보면서는 자연과 인간 어느 쪽도 편들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향을 엿볼 수 있었다.
뒤죽박죽 방치해두었던 문제들은 하나하나 스스로 해결해나갈만큼 성숙해진 리에의 모습에 왠일인지 내가 기운이 났다. 어른스러워진다는 것의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벌꿀의 집'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또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을 어떤 걸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꿀벌의 집'을 읽으면서 꽤 오랫동안 도시에서만 지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묘사한 풍경을 상상하면서 잠시잠깐 삼림욕을 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맑은 공기, 푸른 숲의 청량감이 느껴지는 문장으로나마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책의 내용이나 분량이 산책할 때 가져나가면 딱이다. 천천히 걷다가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벤치에 앉아서 책을 펼쳐도 좋고, 근처에 마음에 드는 찻집을 발견하면 벌꿀이 들어간 음료를 마시면서 여유롭게 읽어도 즐겁지 않을까 한다. 끝장을 덮고나서는 책표지처럼 산뜻하게 초록색 옷을 입은 나무사이를 걸으면 어떨까한다. 불안하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 초록색을 보면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한던데, 초록의 향연을 맘껏 즐기다보면 책에서처럼 자연의 힘을 발견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