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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크리파이스
곤도 후미에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가슴 뜨거운 스포츠의 감동과 미스터리의 카타르시스를 절묘하게 결합한 2008년 최고의 소설!
반전을 거듭하는 진상, 되풀이되며 무게를 더해가는 주제, 마지막 순간 희생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감동의 극적 반전
이 소설의 처음 2쪽을 읽어버린 순간 어쩔 수 없이 끝장까지 쉴새없이 읽게 될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로드레이스 선수들 사이에 갈등과 계략 그리고 치밀한 두뇌싸움을 기대했었다. 책소개글에서 '미스터리'와 '반전'라는 단어에 매료되어 추리소설이려니 생각했었던 것 같다.
추리소설이라고 미리 지레짐작하고 '속지 않겠어!'라는 마음을 먹고 결연한 자세로 읽었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작가가 촘촘히 쳐 둔 그물에 걸려서 허우적거리는 것도 책을 읽는 재미라는 걸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낚여도 좋다라는 자세로 아무것도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성격 급하게 뒷장을 넘겨보지도 않는다면 이 책이 전해주는 감동을 온전히 읽는 사람의 몫이다. '새크리파이스'가 팽팽한 긴장과 범인색출보다는 감동과 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만 유의한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로드레이스는 생소한 경기였다. 책의 초반부를 읽을 때는 그러고보니 언젠가 텔레비전 중계에서 본 것도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즈음에는 신사의 스포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스포츠라고도 불리우는 로드레이스가 조금은 친숙해진 느낌이 들었다.
로드레이스는 에이스와 어시스트의 역할이 분담되어 있고 개인경기로 보이지만 실제로 단체경기에 가까워 어시스트 선수는 비록 자기 순위가 뒤쳐진다고 해도 에이스를 이기게 하기 위해 달리게 된다고 한다.
기록상으로는 승자로 이름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자랑스러운 기분으로 결승점에 들어올 수 있는 로드레이스에 매료된 시라이시.
골인지점에 맨 먼저 뛰어드는 의미를 모르는 그는 어깨 위의 무거운 누름돌을 떨쳐내고 이기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로드레이스에서 어시스트로서의 역할로 만족하고 있다. 그가 속한 팀 오지는 힐클라이머인 이시오를 주축으로 정비된 팀이었는데, 이시오를 어시스트하던 시라이시가 스테이지 우승과 종합 1위의 기록을 세우게 되고 비로소 갈등의 양상이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일방적이고 부분적인 정보들이 오해와 반목만을 부추기고, 이시오 선배가 과거 라이벌이었던 후배 선수의 사고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굴러가는 눈덩이마냥 의혹은 커져만 간다. 하지만 '새크리파이스'라는 제목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은 지금부터다. 거듭되는 반전을 통해 주제는 더욱 또렷해지고 감동은 더해간다.
새크리파이스는 번외편이 있다고 한다. 이사오와 아카기가 함께 달렸던 7년간의 시간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속내를 알 수 없었던 이시오와 조연처럼 등장했던 아카기가 어떤 인물로 그려졌는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속편 연재도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데 크게 기여한 로드레이스 자체에 대한 세밀하고 꼼꼼하게 묘사와 흥민진진함을 잃게하지 않는 탄탄한 구성을 다시 한번 만나볼 수 있다니 꽤 기대가 된다.
'새크리파이스'는 대대적인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점 직원들이 가장 팔고 싶은 책을 뽑는 서점 대상에서 이사카 고타로의 '골든 슬럼버'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오야부 하루히코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주제가 부각되면서 짙어지는 짠한 감동과 스포츠와 미스터리의 극적이고 적절한 조화가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서인지도 모르겠다.
감동과 미스터리의 멋진 조화가 인상적인 책이었다. 로드레이스만의 독특한 룰이 만들어낼 수 있는 승리의 방식을 읽으며, 골인 지점에 뛰어드는 의미에 대해서도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지 않을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