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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팅컬처 - 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
데이비드 캘러헌 지음, 강미경 옮김 / 서돌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정의와 신뢰는 상실되고 있는 개념으로 변모한 것처럼 느껴져 씁쓸해 진다. 어쩌면 누군가를 속이면서 이득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누구나 그러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실을 입기 때문에 그것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이런 행동은 불가피하다'는 변명으로 모든 죄책감을 상쇄시키며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300여 페이지에 걸친 편법과 속임수의 향연을 감상하면서 우리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이 빛을 잃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매몰되어 가고 있지 않은지 불안해진다.
경제적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는 사회구조 속에서 승자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벌어지는 일들은 개인에게 작은 전쟁과 마찬가지인가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모든 것을 쉽게 합리화하고 정당화시킨다. 거짓과 편법까지도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되기도 한다. 게다가 속임수의 규칙에서 벗어난다면 그 집단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서로를 속이고 속는 일은 반복된다.
전문직업군에서부터 학교까지 속임수가 1등급 꽃등심의 마블링처럼 균형있게 퍼져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속임수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은 다분히 충격적이었다.
계층간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자가 된 사람들에게 유리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기는 집단에 속하기 위해 양심에게 등을 돌리는 일은 더 이상 비난의 대상이 아니였다. 정직한 땀으로 승자가 되려는 사람은 괴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길 수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일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속임수라는 쉬운 방식의 유혹에 굴복한다. 처음에는 양심이라는 벽에 멈칫하지만, 속임수에 경력이 쌓이는만큼 무감각해지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며서 양심이란 벽이 높거나 견고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상생활 속의 인물들이 좋지 않은 사람이 없다. 선량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동시에 이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좋은 사람이지만, 때때로 타인에게 냉정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입장이나 상황에 따라서 다른 행동을 하거나 이중적 잣대를 가지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 또 누군가에게 자신마다 인식하지 못한 상처를 입히거나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없으리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그 잘못을 합리화하고 별 거 아닌 것으로 취급해버리는 일이 있을수도 있지 않을까.
이 모든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속임수가 활보하는 사회가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저자인 캘러한은 속임수의 증가가 개인주의를 극심한 이기주의로 바꾸고, 돈이 사람보다 더 중요해지며 경쟁은 훨씬 더 치열해진 반면 약자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 대한 배려의 축소를 야기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사회 속에서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모래알만큼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마냥 즐겁고 떳떳할 수 있을까. 목적을 위한 수단이나 과정이 어떤 모양새이든 상관이 없어진다면 그 목표에 도달한 뒤에 남는 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지만, 이왕이면 가는 길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술수를 쓰지 않아도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사회가 모두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에 가깝지 않을까. 그리고 속임수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면 지금보다는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속임을 당할까봐 불안해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정당한 방법이 너무나 힘이 없고 약해보여서 편법의 대열에 승차하는 일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속임수 문화에서 빠져나오기'이다. 작가는 속임수 문화에 대한 해결책으로 새로운 사회계약과 지금과 다른 차원의 성과주의 그리고 윤리교육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바보가 되라고 한다. 납세신고서를 정직하게 작성하고, 음반을 사고, 직장에서 거짓말을 한다고 남보다 앞서 나갈 수 없다고 말하라고 한다. 속임수를 줄이려면 우선 나부터 '다들'의 범주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면 '다들'의 수가 줄어들 것이고, 속임수의 무리가 작아지는만큼 건전한 사회규범이 자리잡을 것이다.
거대한 속임수에 비해서 마지막 장의 분량은 빈약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기본적이기에 그만큼 중요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바로잡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되겠다. 속임수는 치명적 유혹에 일가견이 있어 보이니까 말이다.
언제부터 해선 안 될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냐는 질문에 화이트칼라 범죄로 수감된 사람이 '배우자와 가족에게 내가 하는 일을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던 시점부터 그랬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엄마규칙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엄마에게 말할 수 없다면 떳떳한 행동일리가 없다. '지금 이 행동을 오늘 저녁 가족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가?'를 자신의 행동을 바로잡는 척도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편법의 합리화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것이 얼마만큼 심각한 문제인지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적은 없는지, 상대를 불신하는만큼 자신이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아닌지, 거짓과 편법에서 얼마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지...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는만큼 생각도 많이 하게 된다. 지금 느낀 것들을 이 책을 덮고 쉽게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구를 지키는 슈퍼 히어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속임수의 유혹이 다가왔을 때 '이건 아니지!'하고 당당하게 대처할 수 있는 모습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