迟子建, 额尔古纳河右岸, 人民文学出版社, 2010년
1. 샤먼
신에게 기원하든, 귀신을 쫓아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의식을 치르면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 대신 자신의 목숨만큼 중요한 것 - 자식의 목숨을 내놓아야한다. 신이 데려가려는 목숨 하나를 남기려면, 다른 목숨하나를 건네주어야하는 것이 섭리니까. 신에게 선택받았으므로,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칼을 꽂으며 샤먼은 그 일을 해낸다. 생명에는 차등이 없으니 내 재산을 훔쳐가려던 이를살리기 위해 자식의 목숨을 내놓는다. 차등이 없는 생명이라면 왜 내 자식을 대신 죽여야하는가. 신이 그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자식을 살리라고. 그 능력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원했던 적 없고, 자신이 선택된 이유도 알 수 없지만 일단 신의 선택으로 부족의 샤먼이 된 이상 그렇게 해야한다.
그렇다면, 샤먼의 자식으로 태어난 이의 목숨은 누구의 것인가. 샤먼으로 선택된 운명은 그렇다치고, 그 자식으로 태어난 이 역시 운명으로 여기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샤먼의 마지막 남은 딸은 결국 도망친다. 그리고 결국 살아남는다.
묘하게 현실적이다. 소중한 것을 얻으려면,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내어주어야만 한다. 하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많은 이들이 생명을 쏟아낸다.
2. 한국의 치병굿은 이틀을 한다던가 사흘을 한다던가. 무당은 아픈 이를 먼저 만나고, 그의 말을 한참 듣는다. 테라피스트를 찾아 편안한소파에서 자신의 얘기를 두서없이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치료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신의 대리인을 향해 호소든 넋두리든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픈 것은 어느 정도 경감될 것이다. 그리고 굿판이 열리고, 굿을 하는 이며 받는 이며 보는 이들까지 모두 감정이 고조되어 말을 하고 또 듣는다. 쌓아놓은 말들을 토해내는 이는 그렇게 치유를 받는 것이고, 주변을 둘러싸고 함께 울고 웃는 이들 또한정화를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당은 자신이 가진 모든 체력과 정신을 쏟아내야만 한다. 요즘에는 굿판을 차릴 돈도 돈이거니와 그런 치병굿을 하는 무당은 없다고.
3. 소설에서는 샤먼의 막내딸이 떠난 뒤, '현대문명'이 들어온다. 병원이 생기고, 약품이 들어오고 그렇게 샤먼의 자리는 사라진다. 그는자신의 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을 슬퍼하지 않고, 더 이상 자식을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4. 내몽고 초원에 사는 어느 유목민의 이야기다. 주인공의 어린시절부터 시작해서 그 일생을 관통하는. 샤먼의 이야기는 그 여러 이야기중 하나인데, 유독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