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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고화질세트] 유리가면 (총49권/미완결)
미우치 스즈에 (저자) / 대원씨아이 / 2020년 6월
평점 :
중국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가난하고 평범보다도 조금 부족하지만 연극을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소녀 기타지마 마야. 그녀의 열정과 재능을 알아본 과거의 대 명배우 츠기카케 치구사에 의해 배우의 길을 걷는 이야기
1976년도 작품이지만 작중 공중전화나 핸드폰 정도의 차이를 제외하면 요즘의 작품과 비교해도 전혀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시대를 뛰어넘는 명작입니다. 76년에 연재 시작, 이제 2년만 더 있으면 연재 50년이 될 거고 그때가 되어서라도 다음의 50권이 나와주면 좋을 정도로 마성의 매력을 지닌 작품이지만 정말로 완결이 날 수 있을까? 하다못해 다음권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앞서게 되는 만화라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만화의 이야기는 다람쥐 챗바퀴 돌리듯 일정한 형태를 반복하는게 대부분입니다. 주인공이 새로운 배역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괴로워 하며 실마리를 발견하고, 주인공을 가로막는 고난이 닥쳐 올 때 마다 응원을 하거나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나고, 주인공의 활약으로 극복하는 단순한 흐름의 반복이지만, 그 단순함이 단순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작품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갈등 및 고난을 배치하고 사용하는 방식이 매우 절묘하기에 시대적인 차이나 눈의 흰자위를 보여주는 표현들 조차 작품을 감상하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게 합니다.
작품은 순정과 근성의 느낌을 오가는데 남녀 관계의 문제는 순정이지만, 연극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상당히 매운 맛을 보여주는 거칠고 자극적인 내용을 자주 사용합니다. 분명 그 시절, 76년부터 연재를 시작하던 그 시절에는 유사과학이 넘쳐났고 근거없는 믿음으로 기이한 짓을 하던 시절이라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전혀 이해가 안 될 내용이 있지만, 그때는 그랬으니까요. 하면 된다의 근성론이 박혀있던 시절이라 그 시대의 느낌으로 주인공이 구르는 내용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실제 상황에서 정말로 해서는 안 될 내용도 나오는터라 그때에만 허용되는 매운 맛이 많습니다. 요즘이라면 아마 모방 가능성의 문제로 편집부에서 못 하게 막을테니까요.
작품이 순정과 근성을 오간다고 했는데 가난하고 기구한 팔자를 지닌 여주인공 기타지마 마야가 평범한 소녀들보다 미숙하고 약한 부분들이 많지만 연기에 들어서면 당대 최고의 라이벌조차 재능으로 누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근성물 스타일의 작품에서 흔하게 보여지는 언더독 스타일과 더불어 그 시절 특유의 체계적인 훈련과 성장보다 근성론 위주의 혹독한 수행을 거쳐 운명처럼 번뜩이는 기회와 발상으로 역전하는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특히 평범 또는 조금 부족한 소녀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점은 단순하지만 관객의 마음에 파고 들며 끌어들이기 매우 좋은 소재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은 남녀를 떠나 다수에게 통하는 매력적인 구성이고 순정만화에서 이런 스타일을 채용했다는 점 또한 과감하고 흥미롭긴 하지만 사실 이 만화 이전에 에이스를 노려라 라는 작품이 먼저 사용한 적이 있으니 이 작품이 선구자격인 것은 아닙니다. 연극과 조합을 했다는 점에선 선구자격이고 이후의 비슷한 작품들도 이 작품의 완성도를 뛰어넘기 힘들다는 점에선 매우 뛰어난 작품성을 지니긴 하지만요. 개인적으로도 언더독 스타일의 작품을 좋아하는지라 순정 요소가 있음에도 거부감 없이 빠질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품의 매력이나 뛰어난 내용으로도 추천하는 작품이지만,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만화에서 보고 배워야 할 내용이 태산처럼 많은 점에서 꼭 이 작품을 봐야만 한다고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퀄리티가 부족한 만화에서 보여지는 변화가 없는 표정과 동작, 뻔하고 무의미한 이야기, 단조로운 구성, 본질에서 벗어난 상황, 전달력 없는 내용, 존재감 없는 캐릭터, 그리고 요즘들어 그 수가 늘어난 매체를 다루는 만화에서 소재가 된 매체의 표현이 부족한 점 등 이야기 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 일이지만, 이 만화를 보는 것 만으로도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수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유리가면의 이야기는 단순하면서도 알기 쉬운 형태라 이 만화가 각 부분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문제를 해결했는지 조금만 신경쓰면 금새 알아차릴수가 있습니다. 특히 매체를 다루는 부분에서 게임이나 만화를 만드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만화가 정작 게임이나 만화의 내용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매체의 내용까지 포함하면 작품의 이야기가 늘어질 가능성이 높고, 이야기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흘러가야 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에 의해서 빛을 발하는 매체를 무시하고서는 주인공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를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할 뿐입니다. 다소 허황된 이야기라도 작품이 관객을 끌어들인다면 그런 허황된 이야기조차 실재한다는 착각을 받게 하지만, 정작 아무런 내용조차 없으면 착각을 받을만한 계기조차 없는 법이니까요.
다만 아무리 이런 명작의 유리가면이라 하더라도 연재기간 중 명확하게 연재가 늘어지고 잦은 휴재로 인해 발매 텀이 길어진 구간에서부터는 점점 뻔한 레퍼토리의 반복과 무리수 남발,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하는 츠기카케, 캐릭터 과거사를 이야기에 녹이지 못 하고 단독으로 남발, 17권 가량 홍천녀에 매달리면서 연기자로서의 능력 향상보다 주변 상황에 휘둘리기만 하는 주인공 등 기존의 폼과 매력을 잃어가는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홍천녀편으로 들어가는 33권 이전까지는 정말 눈을 뗄 수 없는 이야기였다면 홍천녀부터는 그저 그런 아침 드라마 수준으로 전락하여 마치 시청률 30%대의 방송이 3%급의 수준으로 떨어진 느낌입니다.
다음 권이 나온다면 구매하겠지만, 그건 아마도 홍천녀 이전까지 달려온 그 감각이 소중해서 끝을 보고 싶기 때문이지 아마 홍천녀가 어떻게 되는지는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만화에서 내내 전달하던 '하나의 성공은 또 하나의 기회를 가져온다' 라는 내용에 감명을 받았으나 정작 이 만화가 스스로 결말조차 내지 못 하는 점에서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어서 아쉽습니다.
불세출의 명작이고 창작자라면 보고 배울 내용이 많지만, 이처럼 휴재를 밥먹듯이 하고 마무리도 짓지 못 하는 점까지는 배울 필요가 없는 명과 암이 극단적인 작품은 드물것 같습니다.
그래도 작중에 언급 된 존재하지 않는 것을 관객이 정말로 존재한다고 믿게 하는 것, 그것은 모든 창작물을 다루는 직업이 목표로 해야 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것을 가능케 한 픽션은 흔해빠진 이세계물이나 전생물이어도 그 작품이 고유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잘 드러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