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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화질세트] 라이어X라이어 (총10권/완결)
킨다이치 렌쥬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0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붓남매의 사랑이란 민감한 소재를 다룬 이야기인 라이어x라이어.
소재가 소재인만큼 흥미를 끌기에는 안성맞춤이지만 작가는 소재를 자극적인 것을 끌어다 쓰면서도 편안하고 생각없음에 안주한다.
혈연적 근친은 아니지만 가족으로 묶인 이상 의붓남매의 사랑이라도 거부감 없이 담백하게 보기는 힘들다. 당사자가 아닌 제 3자의 시선이나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당사자의 인식이나 여러모로 의붓남매의 사랑이란 요소는 공감이나 이해하기가 난감한 소재이기에 이 둘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고 풀어나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매우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주인공에게는 결벽증이 있는데 그 결벽증의 원인이 바로 동생의 문란한 관계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여기서부터 이미 성립될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를 이성으로 여기고 좋아해야 하는 상황에서 결벽증이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작가는 결벽증을 소재로서 가볍게 바라보고 있지만 실제 결벽증은 강박증의 증상이고 주인공 미나토처럼 자신의 공간만이 아닌 타인의 공간까지 청소하는건 중증이다. 작중에서도 결벽증 때문에 수영장을 못 간다는 이야기도 나오니 타인과 건너건너 접촉도 거부하는 마당에 1:1 관계, 그것도 결벽증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와의 관계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의붓남매의 사랑 이전에 결벽증을 어떻게 극복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관심사였는데 아주 맥빠지게 해결이 되고 만다. 매우 당연하게? 어느 시점부터 결벽증이 고쳐진 것도 아니면서 거부감이 사라진 상황. 그 결과를 위한 과정은 아무것도 없다.
결벽증은 잠시 참을수는 있어도 결국 스트레스가 누적되기 때문에 결벽증 자체를 고치던가 원인으로부터 떨어지던가 뭔가 해결을 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좀 아귀가 맞는다. 그런데 이 만화는 주인공이 사기를 쳤다는 내적갈등만 심할 뿐 그 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극히 무심하다. 차라리 처음부터 없었더라면 싶을 정도로 무성의하기에 더더욱 안타깝고 불만스럽다.
그러면 그 다음 문제인 의붓남매의 사랑은 어떤가. 이 역시도 무성의하다. 1권만 봐도 키스하자는 말에 미쳤냐 라며 마음의 소리로 일축한다. 키스하는게 말도 안 된다는 상황에서 마음이 바뀌는, 태세전환은 채 1권도 걸리지 않고 오히려 미나토가 동생에게 들러붙는 상황이 된다.
얘가 정말 근친에 거부감이 있던게 맞나? 결벽증이 있던게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문제가 없다. 문제라고는 사기치고 있다는 죄책감과 갑자기 찾아온 대인기에 고민하는거 뿐이다.
그 뒤로 남매가 결혼하는 것을 밝혀도 아무도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치지 않는다. 그냥 무한긍정의 세계관이다. 정말이지 속편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단순히 괜찮아 괜찮아로 일관할거면 고민도 없을테니 이야기에 신경 좀 써주면 좋겠는데 대학생이 학교를 다니며 하는 일이라곤 동아리 활동으로 발렌타인데이와 코미케,스키합숙,동아리 미팅 말고는 없으며 이를 매년 똑같이 반복한다. 아 학교 축제도 있었던가? 세상에.. 대학도 그냥 구색만 맞추려고 끼워놓은 배경에 불과하다. 전공수업을 듣고 진로를 모색하고 알바를 하고 취업준비를 하고 그런건 잘 모르겠으니 대충 잘 됐어요로 때운다.
캐릭터도 마찬가지. 쓸모없이 낭비되는 캐릭터들 투성이로 주인공 남매 외에는 들러리나 그보다 못 한 수준이지만 굳이 언급 안 해도 될 주변 인물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에는 방앗간 참새처럼 빠지지 않는다. 매년 코미케에서 인기를 끄는 미남 여성은 이야기에 아무런 영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언급하는 것을 빼먹지 않으며 부장이 유급을 하고 살이 빠지고는 뭐 그리 중요하다고 신경을 쓰며 동아리 미팅 아니면 접점도 없는 타학교 동아리 신입생 또한 아무짝에도 상관이 없지만 굳이 설명을 한다. 그런데 이런거에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않은가. 대차게 차인 소꿉친구와 동아리 선배는 대충 쓰고 버려진 뒤로 더는 이야기에서 활용이 되지 않는데 말이다.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들 필요한 이야기들을 대충 건너뛰고 결국 주인공이 동생에게 사칭사기를 친 이야기는 정말 맥빠지게 싱겁도록 아무 문제 없이 괜찮아로 끝난다.
작가가 흥미를 유발하는 위기와 갈등을 끌어 올리는 전개는 매우 능숙하게 잘 써먹는다. 그러나 그렇게 끌어올린 긴장감을 알맞게 해소하는 방법은 전혀 쓰지를 못 한다. 풍선을 부풀대로 부풀려 놓고는 빵 터트리는게 아닌 맥빠지게 바람빠지는 소리로 대답한다. 짜게 식는다. 뭐할라고 이걸 열심히 봤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냥 다 괜찮단다 아무 문제 없단다. 그래서 나도 안 봐도 문제가 없는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긴다이치 렌쥬로의 다른 만화들도 소재는 매우 도발적인 것들을 사용한다. 하지만 더는 기대되지 않는다. 자극적인 재료를 쏟아붓고는 맹탕을 만드는 재주라면 맛 볼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