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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화질세트] 도우미 여우 센코 씨 (총12권/완결)
리무코로 / S코믹스 / 2024년 1월
평점 :
판매중지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픽션은 자신의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또는 일어나지 않을 일을 다룬다. 여우 소녀가 밥을 해 주고 집안 살림을 해 주며 응석을 받아주는 일 따위는 설령 미래에 증강현실 컨텐츠가 디폴트처럼 되어 어디서나 여우 소녀 아바타가 돌아다니는 걸 보게 되더라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그렇듯 픽션은 일어나지 않을 일을 다루며 대부분은 자기만족,대리만족형의 성격을 지니며 일어나지 않을 일을 즐기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힐링물은 다른 여타 컨텐츠의 성격들과는 달리 대립이나 긴장의 요소가 적다. 세상만사가 쉽게 풀리고 원하는대로 이루어진다. 등장인물들과 세계가 전부 주인공을 치켜세워주고 떠받들기 위해 준비된 것 처럼 진행되는 것도 있고, 소소한 일상속에서 잔잔하고 느긋하며 분에 넘치지 않는 정도의 행복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는데 아쉽게도 이 작품은 후자를 지향하는 것 같지만 충분하지가 않다.
주인공 나카노는 블랙기업을 다니며 야근에 상사의 꾸지람에 업무 떠넘기기에 심심하면 발주 변경을 겪으며 심신이 망가져 간다. 그런 그에게 센코라는 신의 사자인 여우 소녀가 나타나 집안일을 해 주며 응석을 받아주어 쌓여있는 구미호의 독기를 정화한다 라는 것이 이 만화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 만화는 지나치게 결함이 큰 것이 첫째로 주인공 나카노가 심하게 욕구가 없는 점이고, 둘째로는 센코가 800살 먹어서는 어린 소녀 모습에 귀와 꼬리를 제외하면 여우 같은 점이 없다는 것이다.
일단 한번 상상을 해 볼까 한다. 눈 앞에 나에게 우호적이며 친근하게 다가오는 여우 한마리가 있는데 기생충이나 바이러스같은 위험 요소가 전혀 없으며 위생적이며 사고를 칠 일이 없는데다 어느 부위든 만지는 것을 허용한다고 치면 당연히 제일 먼저 할 일은 꼭 끌어안고 온기를 느끼는 일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털에 얼굴을 파묻고 냄새에 취하거나 콧잔등이나 머리,등,배 등을 긁어주고 발바닥을 만져보고 콧등키스도 하고 팔배게를 해 주어 곁에서 재우기도 하고 식사를 함께 하기도 하고 귀여운 옷을 입혀보고 싶다던지 하고 싶은 일들이 무궁무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만화의 주인공은 눈 앞의 여우에게 꼬리를 만지는 것 말고는 원하는 것이 없는 지극히 한심하고 재미없는 인간이다.
아마도 작가는 800살이긴 하지만 여자 아이 모습을 한 캐릭터에게 아저씨가 이런 짓 저런 짓을 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꼬리 만지기 선에서 그치는게 아닌가 싶지만 그런데 솔직히 잘 생각해보면 아저씨가 여우 소녀의 엉덩이 근처에 나 있는 꼬리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는 사실은 뭘로 보나 아웃이다. 현실이었으면 그냥 유치장감이다.
애초에 독자는 이게 비현실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있고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안다. 아저씨가 앳된 소녀의 엉덩이 근처의 꼬리에 얼굴을 파묻고 냄새를 맡더라도 이게 변태적인 욕망이 아니라는 걸 안다. 좀 심하게 이런짓 저런짓을 하더라도 작가가 변태라서 이런걸 그린다고 생각하지 캐릭터가 이거 아주 위험한 놈이네 라고 판단 할 일은 아마도 적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자꾸 변명이라도 하듯이 주인공과 여우 소녀의 관계를 주변인에게 들키고 둘러대는 것을 신경쓰지만 정작 그렇게 긴장감을 조성하고서는 맥아리 없이 아무 문제없이 넘어간다. 그럴거면 뭐하러 걱정을 하고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지 알수가 없다. 이 만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조성은 하고 싶어하는데 그것을 푸는 방법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 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아저씨가 눈 앞의 여우를 두고 할 수 있는 일이 꼬리 만지기 뿐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결함 투성이다. 고작 그 정도에서 멈출거면 차라리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말것이다. 아니면 일본의 미야기 자오 여우마을 동영상이나 보는게 더 힐링이 된다.
센코가 소녀 모습을 하고 있어서 만지는게 허용될수 있는 부위도 적고 수위상 문제가 된다면 차라리 좀 큰 여우로 둔갑시키던지, 연령을 좀 높인 모습으로 변하게 하던지, 아니면 몸의 털 비율을 조절한다던지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애초에 여우는 픽션에서는 둔갑에 능한 이미지이기에 별 문제도 없고, 여우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반대로 여우가 되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이 만화는 한심하게도 끝까지 소녀 모습을 일관한다. 스스로 작품의 범위를 줄이고 즐길수 있는 요소를 죽여버린 것이다.
그런 멍청한 선택을 하더라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2권은 안마도 하고,메이드 복도 입고,눈싸움도 하고 벚꽃 구경도 한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꾸준히 블랙기업에서 고생하며 매일 힘들어하고는 꼬리를 만지는 것이 전부고, 캐릭터가 늘면서 나카노와 센코의 이야기는 어중간하며 뻔한 패턴을 반복한다. 오히려 나카노보다 주변 등장인물들이 더 즐거운 모습이다. 대체 무엇을 위한 이야기인지 알기 힘들다.
사직서를 낸 후 자유로워진 8권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카노 스스로가 원하는 바가 없기에 자유로워졌는데도 정작 이야기의 흐름은 2권의 에피소드만도 못 하다. 여유가 생겼는데도 하고 싶은 일이 없어 기껏 하는게 게임이나 하거나 본가에 들른게 고작이다. 놀이공원을 간다던지, 마술쇼를 보러 가거나 수족관이나 동물원을 가거나, 피크닉을 가거나, 맛집을 찾거나 하다못해 이전에 보여줬던 영화 보기 에피소드를 연장해 영화관을 가거나 여름에 바닷가를 갔으니 겨울이면 스키장을 간다거나 하다못해 센코에게 뭔가 선물을 주는 것도 아니다. 이벤트며 에피소드며 뽑아낼 것이 무궁무진한데 그 어떤 것도 써먹지 않는다.
다시 취직을 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나카노 스스로가 원하는 바가 없어 그저 이력서를 넣고 기다리는게 고작이다. 나카노 스스로가 원하는 일이 있었으면 좀 더 상위의 대기업 지원도 노려본다거나 그걸 주변의 여우 사자들이 도와준다거나 하는 흐름도 연결시킬수 있을텐데 고작 문제를 푸는 방법이 술취해서 부딪혀 놓고 적반하장으로 나온 사람이 떨어지는 간판에 부딪힐걸 도와줬던 인연으로 해결한다. 그런데 독자 입장에서 본다면 첫 만남의 인상이 꽝인 사람이 선심성으로 합격시켜 준 일이 와 정말 다행이다 착한 일 하는 보람이 있구나 라고 생각 할 까 아니면 작위적이네 지금까지 해 온 경력이랑 업무량이 얼만데 능력을 알아주는게 아니라 옛다 합격 먹어라 하는 전개라고? 생각 할까.
작가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든 것이 바로 이런 부분들이다. 대체 뭘 힐링하고 싶은건지를 알수가 없다. 직장인은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고 연봉도 올려주고 승진도 시켜주는게 좋지 와 절 구해주셨네요 취직시켜드릴게요 하는게 좋은게 아니다. 취준생 입장이라면 그럴수도 있는데 취준생도 아니고 경력자가 선심성 구직에 성공한다고 기뻐할까? 작가는 만화만 그리고 사회에서 일은 안 해 봤나? 눈 앞에 여우 소녀가 있는데 고작 하는게 꼬리 만지기에 여유가 생겨도 같이 놀러가는게 아니라 게임이나 끄적이고 본가에 내려가는게 전부라고? 주인공 주변에 인간 여성이 둘에 동물 여성이 셋이나 있고 호감을 받는데도 아무런 연애 감정도 없는 것은 주인공이 고자라서 그런게 아니다. 작가가 주인공에게 아무런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작가가 주인공을 꿔다놓은 보리자루처럼 그저 배치만 할 뿐 사명도 욕망도 살아가는 이유도 꿈도 감정도 없이 소모하고 있기에 이런 꼴이 된다.
마찬가지로 또 다시 새 직장을 구하는 것이 친구의 선심성 고용이고 주인공은 끝까지 능력을 인정받지 못 한다. 작가는 사람의 욕구 중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를 이해하지 못 한다.
애정욕도 없고 소유욕도 없다. 그런 주제에 뜬금없이 등장인물 여성 셋 중 하나랑 결혼을 하란다. 주인공 나카노는 고자에 가깝게 무욕의 수준, 그 중 애정욕이나 성욕은 눈꼽만큼도 보인적이 없는데 결혼을 하라니 이 무슨 얼토당토 않는 흐름인가. 작가는 이게 말이 되는 흐름이라 생각한 건가? 보여준게 없으니 당연히 흐름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이루어진 것은 쾌락없는 책임인 구미호 아이..... 작가는 대체 무슨 생각인가. 아니 지금까지 회사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아 왔는데 이번엔 육아 스트레스라고? 장난하나? 대체 이 만화 어디에 힐링이 있고 위안을 주고 응석을 받는게 있는가?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주기만 하고 고자 주인공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 뿐인데.
작가가 그리고 싶어하는 내용은 이젠 뭔지도 모르겠고 초반의 여우 소녀에게 위안받고 좋아하는건 딱 2권까지다. 그 뒤로는 꾸준하게 답답한 이야기에 생뚱맞은 인물들만 재밌게 노는 것이 이어진다. 누가 주인공인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구미호의 힘이야 어찌되었든 지금 중요한건 주인공이 위안을 받고 힐링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오히려 구미호 이야기가 나온 이후로는 꾸준히 주인공을 괴롭히기만 하고 보상마저 끊겨버린다.
소재를 다룰 능력이 없는데 어쩌다 운 좋게 얻어걸려 연재하는 만화가처럼 보는 입장에서 한탄스러운게 없다. 좀 특이한 소재를 쓰는게 전부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이야기에 녹이는지가 더 중요한 일이란걸 알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