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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화질세트] 이 세계는 너무나 불완전하다 (총11권/미완결)
사토 마사미치 / ㈜소미미디어 / 2025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굳이 가상현실 게임이 아니어도 집에 안 보내주면 회사든 학교든 예비군 훈련이든 다 불태워 버리고 싶기 마련이라 갇혀버린 디버거가 미쳐버리는 것은 특별한 일은 아닐것입니다.
그러나 그 디버거에게 세상을 불태울 능력인 디버그 모드의 접근 권한을 주면 어떻게 될까. 안 그래도 버그망겜에 버그 잡을 디버거까지 미쳐버린 세계에서 안 미치고 버그 잡는 인간이 더 미쳐버린듯한 주인공 하가와 동료의 모험을 그린 만화입니다.
가상현실 게임을 다루는 소설이나 만화는 여럿 있고 QA시점을 다루는 작품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게임 이야기 퀄리티를 보여 준다고 느껴지는 만화입니다. 개발,qa경험이 있어야 나올수 있는 짬밥의 버그나 글리치 꼼수와 집요하게 기행을 반복해서 버그를 잡아내는 qa의 일상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게임을 만드는 것은 자유로울수 있지만 만들어진 게임의 시스템은 합리적인 룰에 기반해야 하니까요. 상당수의 게임픽션들이 이런 시스템의 합리성을 무시한 채 특이한 요소만 넣는 것에 비하면 이 만화는 대부분의 게임에서 사용되어지는 공통적이고 합리적인 요소들을 이용함으로써 지나치게 허술해지는 문제를 막습니다. 다만 버그를 발견하면 보고한다 라는 주인공의 목적과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주인공이 보고 안 한 버그를 사용하는 상황이 상충되어 조금 말의 앞뒤가 안 맞는 경우가 있는 점이 아쉽달까 어느 정도 한계는 있을수 밖에 없구나 하는 점도 있습니다. 초반은 그래도 즉석에서 버그를 찾거나 글리치는 아닌 통상적인 시스템의 한계를 이용한 반면 후반은 주로 버그vs버그 위주가 되어갑니다. 디버그모드는 절대 쓰지 말아야 한다 라는 신념은 디버그모드가 또 다른 버그를 불러올수 있기 때문인데 정작 버그 사용은 거리낌 없이 하는터라 이 신념은 어디까지나 안정성이 확보된 버그에 한해서인지는 몰라도 좀 애매한 인상을 주고 있어 아쉽습니다.
단순히 게임적인 요소만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내의 요소들과 갇혀버린 사람의 정신적인 문제와 사건들을 하나의 스토리로서 잘 엮어놨습니다. 똑같이 사람을 로그아웃 시키지 않았던 게임 픽션인 '소드 아트 온라인'과 비교하면 내부에서 점점 정신이 망가지고 향정신성 요소에 의존하는 모습을 잘 그려냅니다. 다만 시간적인 흐름은 여러모로 허술하다 여겨지는데 1년 2년 지나버리는게 별일 아닌 것 처럼 시간을 너무 잡아 먹는 점이 현실성이 없게 느껴지기도 하여 아쉽습니다. 작중 상당수가 그 1년을 버티지 못 해 변해버렸는데 아무일도 아닌 것 처럼 1년을 한 던전 공략에 쓰는 것은 좀 아니다 싶습니다. Qa들이 사실은 현실인물이 아니었습니다란게 아니라면 작중 두번째 메타ai 시점에 2년 이상이 걸렸으니 마찬가지 속도로 나머지 메타ai를 만날거면 최소가 5년일거고 현실세계의 사람은 그 정도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기는 힘들테니까요. 특히 과할 정도로 여러 회사의 qa를 투입시켰다는 점에서는 버그 잡는 것 보단 데이터 수집에 가깝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만화에 등장하는 버그들은 여러모로 세계관이나 형평성에 잘 맞춘 버그들이라 너무 어처구니 없는 일은 없어서 받아들이기가 무난하여 좋았습니다. 예컨데 '이 세계가 게임이란 사실은 나만이 알고 있다'란 소설에서 등장한 버그들이 너무 상태가 심각해서 정상적인 게임이란 느낌이 들지 않았던 반면 이 만화의 망겜은 그래도 일단 논리적으로 돌아가기는 하는구나란 느낌이 듭니다. 특히 주인공이 버그를 남용하지는 않고 먼치킨 같이 강하거나 게임 지식으로 이익을 취하려는게 아니다보니 적당한 수준의 난관인 버그가 존재해야 아귀가 맞는 형태라 서바이벌의 느낌과 현실적인 고난이 잘 살아있습니다.
다소 아쉽다거나 좀 불안정한 느낌이 드는 부분은 종종 고어적인 표현이 등장하는 점인데 시궁창스런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자극적인 표현을 즐겨 쓰는 것 같아 좀 추천하기가 애매해지기도 합니다. 절단이나 출혈, 그로테스크한걸 싫어하는 분이라면 그런 점에서 추천하기 힘든 만화입니다.
게임쪽으로 관심이 있다면 추천하는 만화입니다. 단순히 게임의 창의적인 요소만을 다루는게 아니라 논리적으로 제대로 굴러가는 것을 구현하기까지의 시행착오 과정을 코딩 작업은 빠졌지만 보여준다는 점에서 왜 게임 개발이 고된 일인지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