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분 생활자 -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중입니다
김혜지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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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즐겁게 독서를 한 적은 오랜만이다. "맞아, 맞아!" 혼자서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침대를 팡팡 치며 웃기도 했다. 혼자사는 20대 직장인으로서 너무나도 공감되는 이야기가 많았다.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일상적인 문체도 마음에 들었다. 작가님의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면도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은 혼자 사는 삶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자취방을 구하며 겪는 우여곡절부터 결혼에 대한 생각, 기성 세대와의 마찰까지 혼자 사는 '요즘 젊은이'로서 겪는 전반적인 경험들을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책에 내용이 얼마나 알차게 들어있던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니 소주제로 나누어 서평을 작성해볼까 한다.

1. 자취에 대한 환상?그게 뭐죠?

가족과 함께 살던 학생 때만 하더라도 자취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나만의 가구를 들여놓고, 맛있는 요리도 해먹고, 친구들도 불러서 놀아야지! 하던 환상은 방을 구하러 돌아다닐 때부터 삐그덕대기 시작했다.

월세는 비싸고, 방은 상상보다 훨씬 허름했다. 막 사회초년생에 들어선 나에게 자취 비용은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열심히 돌아다녀서 겨우 집을 정하고 계약을 하려고보니, 왜 이렇게 어려운 서류가 많은건지..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구해봐야 집 계약할 때는 서류 보는 것조차 쩔쩔 매는 헛똑똑이였다.

작가 역시 동일한 과정을 겪었으며 나아가 현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계약을 맺는 방법, 서류 분석하기, 사기 당하지 않는 방법, 수도관 청소하는 법, 망가진 문을 고치는 방법 등 실생활에 정말로 필요한 교육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등기부등본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이르게는 당장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러한 서류들을 봐야할 수도 있는데 아이들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채 사회로 던져진다. 과학 법칙을 하나 더 아는 것보다 실생활에 써먹을 수 있는 교육이 더 절실하다는 말에 공감하는 바이다. 하다못해 요리 수업이라도 자주 해봤으면 해먹을 수 있는 요리가 하나라도 더 생기지 않겠는가.

2. 혼자서도 잘 살아요: 자기계발

요가와 구몬 학습지. 작가님이 퇴근 후에 하는 자기계발이라고 한다. 요즘은 혼자서도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기는 직장인들이 많다. 사람이 일만 하면서 사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스트레스도 풀고, 새로운 걸 배우며 지식을 채워나가는 행위가 삶의 큰 활력소가 된다.

나 역시도 직장을 다니면서 헬스를 꾸준히 하고 있고, 영어 회화 모임에 참여하고 있으며, 구몬 학습지로 외국어 공부를 한다. 물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큰 활력소 중 하나이다. 일하는 것도 힘든데 왜 하냐고 하면, 나를 위해서다. 나를 위해서 체력을 기르고 배우고 싶은 걸 배운다. 이렇게 혼자서도 알차게 사는 1인 가구 직장인들이 많다. "우리"를 강조했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나"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나"를 위한 인생을 설계하는 멋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3. 우리는 과연 욜로(YOLO)족일까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

몇 년 전에 욜로 열풍이 한참 불고난 후 아직까지도 요즘 젊은이들은 욜로족이 많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인 나는 왜 실감하지 못할까.


"가끔 걸어갈 걸 열받아 택시비를 쓰고 좀 참을 걸 디저트를 사고, 크게 필요도 없는 다이소 1000원짜리 물건을 여러 개 사고, 카누로 타 먹는 것 대신 사먹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두고 요란한 소비 중심 인생이라 하는 거 아니냐며 조소했다.

일인분 생활자, P. 73-74"


위 단락에 공감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20대 직장인인 내 또래들이 힐링하는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돈을 아껴두었다가 주말에 예쁜 카페에 가서 맛있는 디저트를 먹는 것,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맛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다이소 물품으로 나름대로 집을 꾸미는 것. 이것이 욜로인가. 언론에서 떠들어대던 20대들의 거창한 욜로에 비하면 현실은 꽤나 소박하지 않은가.

집 꾸미기 열풍도 그렇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런 인테리어 가구들을 사서 꾸미나 싶을 것이다. 젊은 층에서는 IKEA라는 브랜드를 애용하는데 사실상 품질이 썩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조립식이다. 싸고 디자인은 예쁘니 가성비 만족도가 높기 때문에 이용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지적한다.


"그러나 빈곤한 청년들은 자신의 공간을 꾸미기 위해, 대형 가구숍에 가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가구를 둘러보고 선택하고 큰돈을 들여 배송할 수 없다. 이들에게 이런 선택은 가성비가 좋지 않을 뿐이다. 가성비가 가장 중요한 세대에게는 적은 돈으로 높은 만족감을 주는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인분 생활자, P. 32"



4. 21세기에 여자로서 겪는 일


대학생 때, 친했던 남자사람친구와 톡을 하고 있는데 밤 10시쯤에 갑자기 어디 좀 나갔다 오겠다는 것이었다. 이 밤에 어디 가냐고 하니 밤에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산책하는 게 취미라고 했다. 그 때 받은 충격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나에게 밤 10시는 집에 꼼짝않고 있어야하는 시간이다. 밤에 혼자서 돌아다녀본 적이 손에 꼽는다. 집에서 3분 거리의 편의점을 갈 때도 갈까말까 고민하다가 위험할까봐 결국 포기한 적이 대부분이다. 간혹 저녁 약속이 끝난 후 혼자서 걸어올 때가 있지만 큰 길가를 벗어나면 절대 이어폰을 끼고 걷지 않는다.



혼자 여행을 갈 때는 꼭 호텔에서 숙박하고, 해가 진 후에는 돌아다니지 않는다. 자취방을 구할 때 1순위는 가격도, 시설도 아닌 "보안"이다. 술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밖에선 거의 마시지 않는다. 처음보는 사람의 친절은 믿지 않는다. 이런 세상 속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취미였던 것이다. 그게 가능하냐고, 취객이나 접근하는 사람이 없냐고 하니 그 친구는 오히려 무슨 소리냐며, 갑자기 모르는 사람한테 말을 거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어리둥절해했다.



혼자 너무 사리는 게 아니냐고 하면, 절대 아니다. 내가 조심하는 부분은 뼈아픈 경험이 기반이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에도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여행지에서 밤에 혼자 다닐 수가 없어 한인 민박집에서 동행을 구해야했던 이야기, 귀갓길에 항상 단단한 물체를 손에 쥐고 귀가하는 이야기, 혼자 사는 티를 안 내려고 남자 구두를 놓는 이야기, 택배는 문 앞이나 경비실에 두었다가 찾아가는 이야기 등등.. 나도 혼자 살기 전까지는 이 모든 게 다 과민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폭풍 공감하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리고 있지만. 심지어 요즘은 한 아이돌이 굵은 남자 목소리로 "누구세요! 누구신데 문을 두드리세요!"라고 말한 멘트가 담긴 동영상이 너무 유용하다며 핫한 반응을 끌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담긴 마지막 챕터는 혼자사는 여성분들이라면 정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서평을 작성하다보니 개인적인 이야기도 조금 섞게 되었는데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에 내 삶이 투영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잘 풀어낸 책이다. 각박한 현실에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며 씁쓸했다가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적어져 더 이상 엄마가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에피소드는 뭉클하기도 했다. 비판적이지만 가벼운 유머를 곁들여 무겁지 않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1인 가구인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요즘 1인 세대들의 생각이 궁금한 분들도 읽어보면 좋을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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