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의 끝
정해연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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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매듭의끝 #정해연 #현대문학


“극한까지 처절한 모성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소설을 쓸 자신이 없습니다.”-정해연


인우는 부모님과 함께 떠난 캠핑에서 밤에 부모님 몰래 다슬기를 잡으려다가 물에 빠지고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아빠가 나무에 줄을 매달고 목을 매달았다고 한다. 형사된 인우는 아빠의 사건을 파헤쳐보는데 정황 뿐 증거는 없고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아빠는 누가 죽였어?”


코스메틱 브랜드로 성공을 눈앞에 둔 희숙은 못 미더운 아들이 하나 있다. 그러나 기업을 물려줄 생각에 지방에 영업소에 보내서 정신 차리기를 바랬는데 어느 날 아들 진하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통.

“엄마, 큰일 났어.”

“사고를 쳤어.”

“사람을 죽였어.”


진하의 아파트에서 죽은 시신으로 발견된 회사 경리직원 현재경. 진하는 사망 추정 시각에 집에 없었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졌다. 현재경은 그 시간에 왜 그곳에 있었으며 누가 그녀를 죽였는가.


그러던 중 또 하나의 시신이 발견되고 범인은 같은 방법으로 시체를 처리했다.


지방의 도시에서 일어난 시신 방화사건을 맡은 인우는 냉정하고 침착한 수사로 용의자를 지목해 수사망을 좁혀간다. 한 도시에서 벌어진 두 건의 시신 방화 사건은 너무나 닮았고 그 끝은 누구를 향하고 있을까.


사건 현장에서 수사하는 인우와 범죄를 감추려는 이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흥미로움을 더해 역시 손에서 놓을 수 없는 페이지 터너의 귀환이다. 이번에는 아들을 살인자로 만들 수 없는 어머니와 어머니를 살인자로 의심하는 아들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모성의 극과 극을 보여준다.


“지금까지처럼 가만히 있어. 갑자기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나대지 마. 내 뒤에 어린애처럼 숨어 있어. 넌 그러면 된거야.”

“엄마라면 그럴 수 없다. 자식을 살인자의 아들로 만들 수는 없어. 그런데도 자기가 죽였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하나뿐이야.”

“자식을 지켜야 할 때. 자식이 살인자일 때.”


자식을 범죄자로 만들 것인가, 평생 의심 받는 부모로 살 것인가. 무엇 하나 선택하기 어려운 질문이고 정해연은 이런 질문으로 과연 ‘모성’이란 무엇이냐고 묻는 것 같다. 책속의 모성은 삐둘어지고, 어쩌면 너무나 희생적이기도 한데 나에게 선택의 순간이 닥친다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될 터이다. 그렇다. 자식이라는 존재는. 모성에 대해 진지한 질문이 남는 <매듭의 끝>이다. 매듭은 빨리 풀자,제발…


@hdmhbook 현대문학출판사의 서평단으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홍학의자리 #장편소설 #장르소설 #추리소설 #스릴러소설 #반전 #책 #책추천 #hongeunk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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꿰뚫는 기후의 역사 - 1만 1700년 기후 변화의 방대한 역사를 단숨에 꿰뚫다
프란츠 마울스하겐 지음, 김태수 옮김 / 빅퀘스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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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꿰뚫는기후의역사 #프란츠마울스하겐 #김태수_옮김 #빅퀘스천


바야흐로 끝이 시작되었다

춤추고 노래하자 안팎의 새것을 마중하자

이번이 마지막 끝일지도 모른다

이 시작이 처음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첫 시작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이문재(<끝이 시작되었다>,<혼자의 넓이> 중에서)


기후 위기를 직접적으로 느껴 본 적이 있을까? 매년 발표되는 우리나라의 기상 관측은 해를 거듭할수록 전년에 비해 더 무덥고 매우 추운 겨울이 될 거고 예측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찜통 더위가 예상되는데 그것이 기후 변화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막연하게 온실가스와 탄소 배출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아마존의 열대 밀림이 개발로 사라져서 지구가 숨을 쉴 수 없다고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왜 그렇게 된 거지? 그 시작은 어디인가?에 질문이 남는다. 이 책은 인간과 기후의 관계의 시작부터 그것이 어떻게 인간 사회에 영향을 미쳤는지 역사적 관점으로 바라본다. 지금까지 만난 책들은 현재의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말하고 앞으로 변해야 할 부분에 중점을 뒀다면 이 책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기후의 역사를 다양한 데이터로 조명한다.


인류에게 닥친 기후 위기에 이제 다각적인 연구와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산업화로 인한 화석 에너지 체제에서 원자력으로 발전했던 에너지 구조에서 수소 에너지, 천연가스 등 저자는 다양한 에너지가 국가 간 정치, 경제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밝힌다.


문제의 원인과 시작점을 알게 되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했다는 생각이다. 또한 #평친클나쓰 친구들과의 토론으로 잠시 잊었던 기후, 환경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인터뷰에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기후 변화와 그로 인한 문제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본인이 맡은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한다. 강의실 내에서 성공적인 강의를 통해 학생들이 기후 변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면 그들이 곧 사회로 진출해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장기적인 기반이 될 것이라고. <침묵이 범죄 에코사이드>의 저자 조효제 교수님의 강의에서도 같은 의미의 대답을 들은 기억이 난다.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사회로 가는 것이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일 것이다. 기후 위기에 대한 토론을 나누는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기후 행동이었고.


마지막이 아니기를 바라며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우리는 행동한다.


@ekida_library 의 피드에서 공개 토론 내용을 볼 수 있어요. 

@thing_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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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qns2024 빅퀘스천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았습니다.


#기후역사 #기후인문학 #기후알고가자 #평친클나쓰6월도서 #기후행동 #책 #책추천 #hongeunk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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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번째 레인
카롤리네 발 지음, 전은경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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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스물두번째레인 #카롤리네발 #전은경_옮김 #다산북스


집에 들어가기 싫은 날이 있었다. 아니 많았다. 들어가기 무서웠고 두려움은 나를 배회하게 했다. 열일곱 살, 열여덟 살이었을까. 배가 고팠고 아파트 관리실 뒤쪽엔 내일 배달할 우유 박스가 항상 있었다. 집에 못 들어 가서 배가 고팠던 나는 어느 날 우유를 훔쳤다. 누가 볼까 봐 우유를 들고 한참을 뛰어서 놀이터 구석에서 몰래 삼켰다.


나쁜 기억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나는 스스로 내 기억들을 지웠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방어기재 라고 여겼고. 그런데 틸다를 보고 내면 깊숙이 숨어 있던 나쁜 기억들이 떠올랐다. 집이 두려웠던 나, 학교를 가지 않는 방학이 두려웠던 나, 숨을 곳이 없는 숨 막히는 공간이었던 집. 그때의 내게 집이란 따뜻하고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인지 나는 공간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이고 집안 분위기를 피부로 느낄 만큼 민감하다. 아직도 싸늘하고 냉랭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주변 눈치를 보는 편이다.


알콜 의존에 술에 취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엄마. 대학을 다니면서 계산원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고 생활비를 해결하는 ‘틸다’와 어린 여동생 ‘이다’. 틸다는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가기 전 수영장에 들러 레인을 스물두 번 도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대도시에서의 대학 박사 과정 지원을 권하는 교수의 말에 틸다는 걱정이 앞선다. 이다 혼자서 불안정한 엄마를 감당할 수 있을까.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는 기회 앞에서 틸다는 동생을 남겨두는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갈등한다.


마를레네와 이반, 틸다는 단짝 친구로 함께 지내던 어느 날 이반이 사고로 사망하게 되고 틸다는 상실의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우연히 수영장에서 만나 시작된 틸다의 사랑의 상대는 이반의 형 빅토르이다. 그 역시 가족의 상실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이 둘은 서로를 의지하게 되는데…


과연, 틸다는 자신을 위해 살 수 있을까?


‘나쁜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의 두뇌에서 편도체는 공포와 불안 등 나쁜 기억을 담당하는데 나쁜 기억은 건망증과 인지 장애를 앓더라도 끝끝내 살아남는 무서운 지속력을 갖고 있다고. 그런 나쁜 기억을 없애는 것은 어렵고 좋은 경험으로 좋은 기억으로 왜곡해서 벗어나야 한다고 한다.


나의 두렵고 어두웠던 나쁜 기억은 살아오면서 켜켜이 쌓은 좋은 기억들-주변의 친구들, 나의 반려자-로 많이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기억들이 갑자기 튀어나오더라도 단단해진 마음으로 떨쳐낼 수 있게 되기까지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노력 중이다.


틸다와 이다가 가진 나쁜 기억들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일어날 좋은 경험으로 왜곡되길 바란다. 누구도 어떤 아이도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지 않을 권리가 있으니까.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소설은 조금만 버텨보라고, 힘을 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 나만의 레인을 하나 가져 보라고 권한다. 내가 힘들었던 시절 숨어 지내던 곳은 학교 도서관이었고 방과 후에 꼭 들려서 책을 빌려와서 읽곤 했으니 나의 레인은 책인 셈이다. 책으로의 도피는 나를 살아 있게 했고 아직도 유효하다. 세상의 모든 틸다와 이다에게 꼭 말하고 싶다.

“나도 그랬어. 너도 꼭 괜찮아 질 거야.” 라고.


*출판사에서 도서와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 받아서 작성하였습니다.

@ekida_library @dasanbooks

#책 #책추천 #성장소설 #독일문학 #책리뷰 #hongeunkyeong


여기 위에 그대로 머물러 있고 싶다. 여기 위에서는 아래의 모든 것이 너무나 작아 보인다. 여기 위에서 보면 엄마는 진분홍 하늘에서 철새 떼가 동시에 남쪽으로 출발해도 아무 관심도 없는, 수많은 작은 점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여기 위에서는 어떤 점이 술을 마시는지 주스를 마시는지, 뭔가를 마시기나 하는지 알아볼 수 없고 그 점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도 없다. 점은 그저 점일 뿐이다.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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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올로지 - 몸이 말하는,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는 것
이유진 지음 / 디플롯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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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바디올로지 #이유진 #디플롯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 구호처럼 각자의 몸 이야기를 개인적인 것이라고 치부하는 데서 비극이 발생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리 몸이 얼마나 오랫동안 정교하게 쌓아 올린 담론장 속에 놓이게 되는지, 몸은 어떻게 저항하면서 탈주하는지, 21세기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이 어디쯤 있으며 어디로 향하는지 질문하면서이 이 책을 썼다.” 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힌다.


가슴, 엉덩이, 머리카락, 섹스와 출산, 얼굴, 성형, 털, 포르노와 성폭력, 피부,냄새, 혀, 땀, 이빨, 숨과 호흡, 항문, 단식 등을 통해 몸의 기억들과 주저하고 증언하는 몸의 이야기, 소멸하는 신체와 그 이후의 세계까지 몸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담론을 빼곡히 담았다.


숏 커트에 주로 검은색 옷을 즐겨 입는 딸아이는 가끔 여성 화장실에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들어왔다가 자신을 보고 다시 나가는 사람도 있다고. 주변의 시선에서 남자인가? 하는 눈빛을 느꼈다고 한다. 우리는 아직 남자는 짧은 머리, 여자는 긴 머리라는 공식이 익숙하다. 남자아이가 머리를 기르면 미술 하냐, 음악 하냐? 여자 아이가 머리가 짧고 스포티한 의상을 즐겨 입으면 운동 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고정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각들이 사회적으로 정상, 비정상을 가르고 억압하는 도구가 되어 내 몸을 담론화하고 있다.


“때로 여성의 긴 머리는 유혹적이고 짧은 머리는 도전적이다. 남성의 긴 머리는 퇴폐적이고 지나치게 짧은 머리는 폭력적이다. 그렇다면 두발은 과연 어떠해야 ‘정상’인가?”


근대 이후 한반도에서 두발만큼 사회적 규제가 강력하고 촘촘하게 작동하는 신체 부위는 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남성들의 단발령으로 상투를 잘랐고 여성들은 대개 자발적으로 단발 유행을 따랐다. 1920년대에 근대는 ‘모단’으로 일컬어졌다. 신여성은 ‘모단걸’ ‘단발랑’으로 불렸는데 이 호칭엔 성적으로 문란하고 사치와 방종이 심하다는 편견이 들씌워졌다. 저항의 의미로 잘랐던 여성의 단발은 뜨거운 논란거리였고 남자들은 가부장제와 남성성에 대한 도전으로 이를 비난했다. 소설가 염상섭, 아동문학가 방정환 등 모던 보이 다수가 여자의 단발은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비판했고, ‘여자 단발 가부 토론’까지 열렸었다고!


2022년 이란의 반히잡 시위 이후엔 여성의 히잡을 인권 탄압으로 보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지만 여성의 머리카락은 자본과 정치권력이 작동하는 신체 구성물이라는 데는 아직 변함이 없다.


또한 인류학자들은 긴 머리카락을 절제되지 않는 섹슈얼리티, 통제되지 않는 생식력에 비유한다고! 왕자를 홀리는 라푼젤, 정성스레 빗질하며 어부들을 유혹하는 로렐라이, 아폴론이 애태우던 다프네의 빛나는 머리카락도 여성성의 표상이 된다. 갑작스레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면 “실연했냐”고 묻는 것은 머리카락 자르기가 여성성의 훼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저항을 위해 삭발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던지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이때 머리카락은 신념의 표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내가 내 머리를 깍을 것인가, 남이 내 머리를 깍을 것인가. 머리카락은 권력의 표현이라고. 남의 머리카락을 마음대로 하는 권력자고, 자기 머리카락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가 바로 힘이 있는 자라고 저자는 말한다.


내 몸이 만들어진 것이 나만의 것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었음을, 사회적으로 부여된 내 몸과 진짜 내가 생각하는 내 몸을 떠올려보면서 과연 내 생각이었던 것일까 라는 질문이 들었다. 권력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내 몸이 되는 것의 첫 번째로 이 책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내 몸을 더 사랑하는 계기가 되는 시간이기도.


#이키다서평단 으로 디플롯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kida_library

@dplotpress


#사회과학 #젠더 #여성 #몸 #책 #책추천 #강추 #hongeunk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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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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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폴오스터 #정영목_옮김 #열린책들


“왜 다른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은 영원히 사라진 반면 우연히 마주친 덧없는 순간들은 기억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지.”p.141


폴 오스터의 마지막 소설. #바움가트너 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교수로 재직 중이며 그의 이름은 나무를 가꾸는 사람 즉, 정원사라는 뜻이다. 기억의 정원에서 우연히 찾은 지난 날의 순간들을 통해 삶에 담긴 깊은 철학적 사유를 보여준다.


바움가트너는 아내를 상실하고 10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여러 일들 속에서 불에 타버린 냄비를 보고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한다. 46년을 함께한 아내 애나의 죽음은 그렇게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왔고 깊은 기억은 갑자기 튀어 나온다. 상실 후에도 애나 없는 삶을 계속 살아야 하는 그의 마음은 감히 어떨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리움은 애나의 타자기 소리도 들리게 하고 이미 끊어진 전화기로 전화도 걸려오게 하는데…


그는 이제 인간 그루터기,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었던 반쪽을 잃어버리고 반쪽만 남은 사람인데, 그래, 사라진 팔다리는 아직 그대로이고, 아직 아프다. 너무 아파서 가끔 몸에 당장이라도 불이 붙어 그 자리에서 그를 완전히 태워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p.37


육체의 상실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겪는 상실도 그 아픔의 깊이는 같을 것이다. 매 순간 아픔을 상기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까. 아니면 그 고통으로 인해 상실을 더 깊이 기억하고 싶을까.


이제 세부적인 것은 기억에 없지만, 한 가지, 어딘가에서 차를 세우고 피크닉 점심을 먹었던 일, 모래가 많은 땅에 담요를 펼치고 애나의 아름답게 빛나는 얼굴을 건너다 보았던 일은 떠오른다. 그때 그는 강렬한 행복감이 큰물처럼 밀려오는 바람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말했다. 이 순간을 기억하도록 해, 얘야. 남은 평생 기억해, 앞으로 너한테 일어날 어떤 일도 지금 이것보다 중요하진 않을테니까. p.242


살면서 꼭 기억해야 할 것들이 무엇일까 떠올려본다. 엄마가 나를 따뜻하게 포옹해준 적이 있었던가. 어릴 적 눈이 폴폴 날리던 겨울, 엄마 등에 업혀 병원에 다녀왔다. 눈이 그친 후 햇살이 비추었고 나는 마당에 나와 앉아서 귤을 까먹은 기억이 난다. 그때 귤의 달콤함이 생생하다. 내게 엄마의 사랑은 “사랑한다”는 단어가 아니라 눈 오는 날 나를 등에 업고, 달콤한 귤을 까주던 그때의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떤 큰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닌 기억들이 가끔 툭 떠오를 때가 있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서 다시 생각해 보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에 닿는다. 노년의 시간이란 어쩌면 균열 된 기억들을 잘 추스르면서 남은 시간을 마무리할 수 있는 선물 같은 것일까.


바움가트너의 기억들은 실타래처럼 얽혀 복잡하다. 그만큼 우리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또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삶이 이어지니 복잡함은 당연하다. 40을 훌쩍 넘게 살아가다 보니 삶이란 촘촘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각각의 삶에서 한 조각의 기억을 공유하는 것 만으로도 지금을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고 내일의 삶에 대한 기대 또한 충분하게,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상실 앞에 서면 나는 눈물부터 나는데 아무래도 내가 먼저 갈 것이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기 때문일 것이다. 홀로 남겨질 배우자가 나 없이 잘 살 수 있을지 너무 걱정된다. 아닌가? 기우일까?

미리 걱정하지 말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결론을 지어보자. 지금의 사소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갑자기 기억날 때 그 행복감을 위해서 말이다. 그래야 남은 이가 누구든 그 삶 또한 잘 살아 질 테니.


문장들에서 정신없이 헤매고 흠뻑 취해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최근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았다는.


@openbooks21 열린책들 서평단으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영미문학 #장편소설 #책 #책추천 #책리뷰 #hongeunkyeong

그는 이제 인간 그루터기,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었던 반쪽을 잃어버리고 반쪽만 남은 사람인데, 그래, 사라진 팔다리는 아직 그대로이고, 아직 아프다. 너무 아파서 가끔 몸에 당장이라도 불이 붙어 그 자리에서 그를 완전히 태워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P37

오늘 일을 일찍 중단하고 이 근사한 오후에 뒷마당에 나와 앉아 생각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것도 좋다. 단기 기억이란 걸 이렇게 짚어 가다 보니 장기 기억도 생각하게 되고, 장기라는 말과 함께 먼 과거의 이미지들이 마음의 저 먼 구석에서 깜빡거리기 시작하여, 갑자기 무엇을 발견할 수 있나 보기 위해 그곳의 덤불과 관목을 뒤져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 P135

이제 구름은 옮겨 가서 해는 가리지 않았지만 빛은 조금 변했다. 간신히 알아차릴만큼 미세한 변화지만, 그런 변화로 인해 사물이 더 진해지고 결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느낌이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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