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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 - Breathles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올해 저예산의 독립영화들을 몇 편 봤다. 현재까지 그 중에서 젤 가슴이 아픈 영화다.
탄탄한 구성과 잔인함과 따스함의 자연스런 조화.
어느새 가슴으로 이해하는 온갖 상황들.
영화내내 들리는 거칠고 노골적인 욕지거리들,
계속되는 구타의 소리. 발로 차는소리, 쇠파이프로 때리는 소리, 망치로 찍는 소리, 침 뱉는 소리, 칼드는 소리, 아이들 울음소리, 매맞는 엄마의 절규, 포장마차 때려부수는 소리, 유리잔 깨지는 소리....... 그 무엇보다도 삶을 그대로 내보이는 소리들이 계속 머리와 심장을 흔들어댔다.
시대를 잘 못 타고 났는지 부모를 잘 못 만나는 지
지지리도 못난 부모들, 특히나 애비들 밑에서
곱디 고운 영혼들이, 연한 새싹들이 멍들고 찢기고 급기야 성장을 멈추었다.
껍데기 몸덩이는 커갔지만 상처받은 영혼들은 비틀어지고 옹이로 굳어져 자라지 않고
멈출 수 없는 엄청난 양의 분노는 보이지않게 거대하게 줄기 안에 뿌리안에 고여있었다.
조금이라도 그 거죽을 드러내면 피분수가 되어 모든 것들을 삼켜버릴 정도로. 멈추지 않는 분노, 영혼이 날아가 버린 무차별 폭력으로 ......
내가 자랄때 즈음은 앞집이나 옆집이나 한 동네에 60% 이상 이런 아버지의 가정폭력이
난무했다. 평상시 동네 어른이니까 인사했지만 한바탕 난리가 나서 보게 되면 점잖고 사람좋아 보이는 아저씨들마저도 이미 사람이 아닌 눈빛으로 아이들을, 자기 마누라를 흠씬 두들기고 있었다. 뭐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일생일대 절대 발설할 수 없는 (이미 동네 사람들이나 일가 친척들은 거의 알고 있지만) 가족의 비밀. 세상일 어떻게 돌아가는 줄 아는 시점인 초등학교 3학년쯤이면 이미 비밀이 되고 4학년 쯤이면 집에 친구들을 데리고 오지 않는다.웬만해선. 그리고 중고등학교가 되면 이건 내 인생에 없는 완전한 비밀이거니와 그 비밀스러움의 정도만큼 나는 더 쾌활함과 밝음의 정도가 높아있는.
매맞는 엄마를 보고 자라는 자식들의 가슴과 머리는 어떠할까? 여린 팔로 말려보기도 하지만 이미 인사불성에 인면수심의 상태인 아버지의 폭력도 자식이라고 예외이지 않을 때가 부지기수다.
세상을 살 희망이 없으며 누구도 믿을 수가 없다.
이 세상에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고 믿고 온전히 나를 맡기는 존재인 부모들에게서 상처받은 영혼들은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
하느님이 인간에 부탁한 것이 아이들이다. 폭력을 당하고 보고 자란 아이, 평화가 뭔지 모르고 평화를 누릴 줄 모르고 오히려 불편해 한다.
긴장과 고성과 일촉측발의 불안이 그들이 머물 수 있는 환경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만든다. 불안과 분쟁과 긴장과 폭력의 상황을.
고단한 영혼을 누일 곳이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일은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다. 온갖 폭력.
평생가는 것이다. 물론 성숙해지면 자신이 감당할 수 있고 돌볼 힘이 있지만 그렇다고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처는 있지만 돌볼 어른인 내가 있는 것이다.
더욱 엄청나고 잔인한 사실들은 폭력이 대물림 되는 것이라는 것.
어느 대에서는 손을 묶고 다리를 부러뜨리더라도 이 대물림을 막아야 한다.
다시는 아이들 영혼을 다치지 않게 하기위해서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저소득계층의 아이들을 돌보는 민간차원의 공부방을 운영하는
내 친구들에게 새삼 감사를 느꼈다.
하느님도 계시지만 아이들은 온기를 느끼고 쓰다듬어 주고 격려해주고
따스한 야단도 쳐 줄 살아있는 사람의 사랑이 절실하다.
경쟁의 시대, 빈부격차가 극도화된 양극화의 사회에서 삶의 질이라는 말조차 사치인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적 패배자들이 대량 양산되면서
예전처럼 물리적인 폭력말고도 온갖 폭력이 아이들에게 무방비상태로 가해지고 있다.
똥파리가 똥파리 되기 쉬운, 아니 똥파리가 똥파리 될 수 밖에 없는
힘의 논리가 위에서 아래로 중력의 법칙을 타고 내려오는
철저하게 그런 사회가 되어 있다.
본인이 직접 주연으로 연기한 양익준 감독의 얘기를 들으며 마무리를 한다.
"상훈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바로 저"
"이렇게 깔깔 웃는 양익준도 있고, 폭력적인 양익준도 있고, 성적인 양익준도 있고, 외롭고 슬픈 양익준도 있죠. 인간은 수억가지 자기를 갖고 있어요. 완전히 산화되어야 또 다른 지점에서 시작하죠. 앞으로 계획은 없어요. 가족에 대해, 저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