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과자는 어떻게 다를까?

잠깐 떠올려 보아도 모양과 식감의 차이가 느껴질 테지만, 우리 한 뼘만 더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자. 먼저 빵은 서양인의 주식이고, 과자는 기호식품이다. 빵에는 발효를 일으키는 이스트가 들어가지만 과자엔 고 녀석이 빠진다. 빵을 만들 땐 단백질 많은 강력분을 쓰고 과자를 만들 땐 단백질 적은 박력분을 쓴다. 조직을 부드럽게 하는 설탕과 유지는 과자를 만들 때 더 많이 들어간다.

케이크는 과자에 포함되는 녀석으로 제과과정 때 다뤄진다. 하지만 빵을 만들어 보니 케이크 만들기는 비교적 쉬울 것 같았고, 배우지 않았어도 할 수 있을 듯했다. 지난 토요일, 처음으로 케이크를 구워 봤다. 생일을 맞는 친구 ㅌ을 위해서였다.

집에 코코아 가루와 계피가루가 있었다.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어 계피 토핑을 올리기로 했다. 알고 보니 계피 토핑은 플레인 케이크에 어울리고, 초콜릿 케이크 위에는 슈거파우더를 뿌리는 것이 더 아름다운 법이었지만. 그러나 난생 처음 시도하는 사람에게 ‘법’이 통하랴. 초콜릿 케이크가 얼마나 진할지, 계피 토핑은 얼마나 달달할지 짐작도 못한 채 첫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재료
초콜릿 케이크:
박력분 140g, 소금 1/2작은술, 베이킹 파우더 1작은술, 설탕 50g, 코코아 가루 80g, 버터 60g, 달걀 2개, 우유 60ml, 바닐라향 1작은술, 레몬주스 1큰술
계피 토핑: 박력분 40g, 황설탕 30g, 버터 26g, 계피가루 2작은술
 
   

레몬주스가 없어 집에서 낸 매실액을 쓰고, 중간에 버터가 떨어져 토핑을 만들 땐 올리브유를 썼다. 그 외엔 모두 앞의 재료를 따랐다. 

먼저 박력분, 소금, 베이킹파우더, 코코아 가루를 섞어 체에 내렸다. 다른 그릇에 버터를 녹인 뒤 달걀과 섞었다. 여기에 체에 내린 가루 재료를 천천히 붓고 우유, 바닐라향, 매실액을 넣어 저었다. 이때 전기핸드믹서를 쓰면 훨씬 쉬운데 아직 못 샀기에 부실한 거품기로 어깨 빠져라 젓는 수밖에 없었다.

어림잡아 300번쯤 저었던 것 같다. 진득한 크림 상태가 된 뒤에야 섞기를 멈췄다. 아침에 부랴부랴 사 온 파운드케이크 틀 두 개에 그 반죽을 나누어 부었다. (원래 제빵기 오븐을 틀 삼아 굽고 케이크 상자에 담으려 했는데, 상자가 없어 사지 못했다. 들고 다니거나 보관하기가 수월한 파운드케이크 틀을 사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이얼을 ‘180도’와 ‘30분’에 맞춘 미니오븐에 넣음으로써 계피 초콜릿 케이크 만들기 끝.

생일모임 장소는 신사동이었다. 최소한 약속 1시간 30분 전부터 나갈 채비를 해야 하는데 케이크를 굽느라 많이 지체됐다. 서둘러 옷을 입고 식힌 케이크 한 개를 포장했다. 한 조각은 따로 잘라 쿠키 상자에 담은 뒤 집을 나섰다.

여유와 관록을 쌓아 가는 대기업 비서 ㅌ, 성실한데 야무지기까지 한 재무계 인재 ㅈ, 누구보다 유능한 은행원 ㅅ언니, 그리고 책만 만지작거리다 뒤늦게 주제파악을 마친 나. 스무 살에 처음 만난 우리 넷은 지금껏 서로의 생일을 챙긴다. 함께 미팅을 하고 시험공부를 하고 취업설명회에 갔던 때만큼 자주 보진 못해도, 만나면 여전히 즐겁고 편안하다. 사귄 지 얼마 안 된 남자친구나 특이한 직장 동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8년 전보다 더 실컷 웃을 수 있다.

다들 고유한 알맹이를 간직한 채 조금씩 철이 들었고, 예뻐졌고, 나이에 맞게 우아해졌다. 저마다 운전, 일본어, 보드, 요리처럼 뚜렷한 취미와 지향도 갖게 됐다. 계피 초콜릿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며 새삼 생각했다. 너희를 만난 건 행운이야. 너희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해. 서로에게 서운했던 시간도 있지만, 쉽게 밀어 내지 못하고 함부로 상하게 하지 못하는 우리가 만나서 이 우정은 이어지는 게 아닐까?

ㅌ의 의연한 직장생활이 보기 좋다. ㅈ이 야근할 일이 줄어 다행이다. ㅅ언니가 시작한 사랑에 내 맘이 설렌다. 앞으로도 쭉 그들이 아름답게 늙어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들 또한 나를 느긋이 지켜봐 주길 바란다. 시간이 흐르면 이 글쓰기도 더 맛깔스러워지고 케이크 굽는 솜씨도 발전할 테니 말이다.

처음 만든 케이크는 어설펐지만 분명 성공작이었다. 모두 맛있게 먹고 아낌없이 감동해 주었다. 집에 남겨 둔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었다 다음날 먹어 보니 그 맛과 향이 한결 진했다. 구운 뒤 바로 먹어야 맛난 빵과는 달랐다. ㅌ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생일이 지나도 기쁘고 따뜻한 일이 많이 생길 거야’라고. 생각해 보면 우리 곁엔 지날수록, 묵힐수록, 오래 나눌수록 좋은 것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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