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지금 저는 집 앞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와 있어요.

방에서 글이 써지지 않는 날, 도서관에서 책이 읽히지 않는 날, 약속이 없어 한가로운 날 망설이지 않고 오는 곳이에요.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파는데 저는 아이스크림 대신 커피를 골라요. 배가 고플 땐 포테이토 샌드위치를 함께 주문하기도 하고요. 5천 원에 동전 몇 개만 보태면 반나절 쓸 자리를 마련할 수 있어요.

낯선 동네에 다녀오는 길, 어쩌다 고개를 들었는데 까치 한 마리를 보았어요. 나뭇가지를 문 녀석이었어요. 저걸로 뭘 하려나 궁금해져 날갯짓을 쫓았지요. 제가 선 곳에서 불과 몇 발짝 떨어진 나무 위에 앉더라고요.

아, 거기엔 짓다 만 둥지가 놓여 있었어요. 자신이 물어 온 나뭇가지를 그 위에 올리는 까치의 모습이 살뜰했어요. 나뭇가지를 올린 뒤 부르르 몸을 털고 꺅꺅 지저귀는 모습까지도요. 알맞은 나뭇가지 한 개를 찾아내는 데 들이는 비행과 휴식이란, 그 녀석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어머니가 허리 아프다고 하실 때마다, 또는 머리가 아프다고 하실 때마다 생각해요. 우리 집을 가꾸어 오는 동안 너무 애쓰셨기 때문일 거라고. 지난 설을 쇠면서도 많이 힘드셨지요? 그래서 어머니를 위해 요리하고 싶었어요. 오직 어머니가 맛있게 드실 수 있는, 어머니의 피로를 풀어 줄 요리를요.

홍합은 겨울부터 봄까지가 제철이래요. 피부미용에 좋고 빈혈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더구나 갱년기 여성의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고 해 ‘딱’이다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 홍합맑은국을 끓이기로 한 거예요. 어제 저녁이었지요? 손쉽게 끓였지만 제 마음으로 간을 한 국이었답니다.

또 먹고 싶다 하시면 언제든 만들어 드릴게요. 홍합, 대파, 마늘, 소금, 후추만 있으면 끓일 수 있거든요. 냉장고 사정이나 입맛에 따라 콩나물, 두부를 넣어도 되고요. 홍합 삶은 물을 걸러 모든 재료를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니 참 쉬워요. 드시고 나서 싱겁다 하셨으니 다음에 만들 땐 소금을 더 넣어 볼게요.

옛날부터 어머니는 잔소리를 길게 하신 적이 없어요. 제 스펙을 챙기기 보다는 대화를 많이 나누려고 힘쓰셨으니까요. 어머니가 읽어 주셨던 《닐스의 신기한 모험》부터 《대지》, 《햄릿》, 《전쟁과 평화》, 《인간의 굴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이루는 대목들은 제 마음속에 쌓여 작은 집이 되었지요. 어머니가 물어다 주신 가지들로 일찍이 집을 가졌었지요.

어머니, 이제는 저 스스로 집을 지어야 해요. 낑낑거리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 아니, 참 어려워요. 호화로운 집을 바라는 게 아닌데도 그래요. 언젠가 어머니 앞에서 삼층집을 지어 드리겠다고 큰소리쳤지요? 그때를 생각하면 부끄럽고, 부끄럽고, 부끄럽기만 해요.

아직도 저는 가늠하지 못해요. 어떤 나무에 둥지를 틀어야 평화로울지, 어디로 가서 나뭇가지를 찾아야 효율적일지, 몇 번이나 나뭇가지를 물어 날라야 할지 꿰뚫을 수 없어요. 그렇지만 늘 기억할게요. 어머니가 지어 주신 집과 그 집을 이루는 부엌을. 뽀오얀 국이 끓고 있는 저녁을. 어머니, 홍합맑은국 다음엔 무엇을 만들어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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