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자장면을 시켜 먹자고 했다. 중국요리를 시켜 먹은 지도 꽤 됐고, 냉장고엔 그럴듯한 찬거리가 없었다. 뭔가 시켜 먹기에 알맞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중국집 자장면에 조미료가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알아? 스파게티 먹자. 토마토소스 스파게티 해 줄게.”

제빵 수업 때 쓰고 남은 토마토 페이스트가 있었다. 토마토는 없어도 방울토마토는 넉넉했다. 고기나 해산물을 넣으면 더 맛나겠지만, 아쉬운 대로 달걀을 스크램블 해 올리면 괜찮을 듯했다. 그렇게 해서 준비한 재료는 달걀, 양파, 양배추, 마늘, 방울토마토, 토마토 페이스트, 케첩, 파슬리, 올리브유, 소금, 설탕, 스파게티 면. 양식 수업 때 배운 이탈리안 미트 소스를 본보기 삼기로 했다.

먼저 양파와 마늘을 다졌다. 양배추는 다지기 애매해서 사방 1cm 크기로 썰어 봤다. 방울토마토도 다져 주었다. 원래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껍질과 씨를 제거하는 ‘콩카세’를 해야 하는데, 방울토마토는 워낙 작은 녀석이라 잎만 떼어 내고 그대로 썼다.

여기까지 준비해 놓고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렸다. 올리브유를 두른 뒤 마늘, 양파, 양배추 순으로 넣어 볶았다. 재료들이 잘 어우러질 즈음 불을 끄고 토마토 페이스트 2큰술(2인분 기준)을 넣었다. 토마토 페이스트를 태우지 않으려고 불을 껐는데, 능숙한 분들은 불을 켠 채 냄비만 들어 올려 조리해도 괜찮겠다. 불을 한 번 켤 때마다 꽤 많은 전력이 소비된다고 하니 말이다.

토마토 페이스트의 시큼한 냄새가 가신 뒤 토마토와 케첩을 넣고 조금 더 볶았다. 양식실기 조리법엔 케첩이 나오지 않지만, 맛을 좋게 하기 위해 넣어 줄 필요가 있다. 토마토의 껍질과 씨를 빼고 다져서 여러 시간 끓인 뒤 농축시킨 토마토 페이스트엔 간이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냄비에 물 2컵 반과 파슬리 줄기를 넣고 졸여질 때까지 두었다. 그동안 파슬리 잎을 다졌다. 완성접시 한가운데에 올라갈 장식용으로, 한식의 고명 같은 구실을 하는 녀석이다. 이 녀석을 다지는 일은 상당히 귀찮다. 마늘과 파를 다질 때와 달리 녹색 물이 나와 칼을 씻어 줘야 하며, 곱게 다지고 나면 면보로 싸 흐르는 물에 헹구어 진한 향과 색소를 뺀 뒤 꼭 짜서 보슬보슬하게 준비해야 한다. 냉장고에 있으니 썼지 없다면 생략했을 애물단지다.

면 삶을 물을 올리고 나서 소스를 살폈다. 제법 걸쭉했다. 파슬리 줄기를 건져 내고 설탕 1큰술과 소금 1/4큰술을 넣어 마무리했다. 그리고 우유와 버터를 뺀 스크램블드에그를 만들었다. 다음 과정은 일일이 쓰지 않아도 짐작하리라 본다. 삶은 면에 소스를 끼얹어 볶아 낸 것이 전부니까.

이제 맛 이야기를 할 차례다. 조금 망설여진다. 솔직하게, 중국집 자장면보다 맛나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생은 소스 양이 부족하며 싱겁다고 했다. 저번에 만든 알리오 올리오보단 나았는지 접시를 다 비웠지만 꾸역꾸역 먹은 것처럼 보였다. 소스가 부족했던 이유는 면이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라 해 두자. 싱거운 맛은? 소금을 너무 조금 넣었나? 내 딴에는 모자란 듯 적당히 쓴다고 여겼는데. 고기가 빠져서 감칠맛이 떨어졌나? 그렇지만 모든 스파게티에 고기가 들어가는 건 아니잖아.

짭짤함에 비해 달달함이 도드라지는 느낌도 받았는데, 방울토마토를 검색해 보니 그 까닭을 알 것 같았다. 방울토마토는 일반 토마토에 비해 당도가 훨씬 높다고 한다. 그런 방울토마토를 쓴 데다 고기를 뺐고, 케첩을 넣었고, 심지어 설탕까지 투하했으니 전에 만들었던 이탈리안 미트 소스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별 생각 없이 요리를 만들고 먹는 사람들이야 지나치겠지만, 냄비란 하나의 세계 속에서 사소한 선수교체는 ‘오묘한 맛’과 ‘음식의 신비’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방울토마토가 일반 토마토와 다른 점은 또 있다. 관리하기 쉽고, 장기적으로 재배할 수 있으며, 오래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당도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알려면 자료를 더 찾아봐야겠다.

이번 방울토마토 달걀 스파게티를 통해 대표적인 스파게티 세 가지를 다 해 본 셈이다. 맛을 내기 가장 쉬운 스파게티는 까르보나라, 그 반대인 녀석은 알리오 올리오임을 알았다. 그리고 아직은 손수 만든 스파게티보다 사 먹는 스파게티가 훨씬 맛나다는 사실도. 부족한 요리였으나 이런저런 깨달음을 얻게 해 주었다. 만들어 보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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