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생존법 - 대한민국 99% 비즈니스 파이터 '을'들의 필살기
임정섭 지음 / 쌤앤파커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누구나 ‘갑(甲)’이 되고자 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 모두는 갑이자 ‘을(乙)’이다. 대기업의 사장도 소비자 앞에서는 을이 되며, 일개사원일지라도 하청업체 앞에서는 갑이 된다.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뀌고 뒤집히는 것이 갑을관계의 역학이다.

저자는 신문사 기자직을 박차고 나와 사업체를 운영하며 을의 세계에 눈뜬 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 1%의 갑에 가려져 있던 99%의 을을 조명한다. 어떤 갑의 횡포에도 꿈을 버리지 않은 채 냉혹한 사회를 버텨온 을의 힘이야말로 진짜 경쟁력이라고 보는 것이다. 갑의 자리에 오르려면 을의 자리를 거쳐야 하는 것이 비즈니스 세계의 순리. 저자는 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식, 즉 을의 생존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을의 생존법은 거침없고 화려한 갑의 방식과는 다르다. 처절하고 너절하며, 때로는 눈물겹다. 을은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굴욕을 모르는 것처럼 머리를 숙여야 하고, 작은 인연 하나하나에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 이 같은 갑을관계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책의 전제. 실려 있는 사례는 모두 저자가 직접 취재한 것이다. 각계각층의 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매우 생생하고 구체적이어서 당장 실천해볼 만하다. 그 모든 방법이 ‘열정’과 ‘겸손’을 바탕으로 하기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잡는 계기도 된다.

책을 읽고 나면 묘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날 굽어보던 까다로운 상사가, 날 흘깃거리며 앞서가던 동료가 실상 나와 같은 을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족과 함께 먹고살고자 일터에 나온다. 일의 성사를 위해 절해야 할 대상과 절 받아야 할 대상을 구분하고, ‘일=자기 자신’이라는 등식을 새긴 채 몸과 마음을 버려가며 뛴다. 그들이 사는 이유, 걸어가는 과정은 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고로 그들은 시종일관 할퀴고 경계해야 할 적이 아니다. 투닥거릴 땐 치열하게 투닥거리다가도 종국에는 다독이며 품어야 할 동반자인 것이다.

책이 주는 편안함은 무사안일주의와는 다르다. 깨인 을이 되기 위해 땀과 눈물을 흘리고 바닥에서 굴러도 본다며 의기충천한 뒤에 오는 ‘값진 휴식’과 같다. 뿐만 아니다. 열심히 살다보면 누군가 나를 도와주기도 하겠구나, 내가 갑이 되면 비슷한 길을 걷는 을들에게 손 내밀어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여유 또한 갖게 된다. 아무리 맹렬해도 저 혼자만 잘 살려고 하는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우쳐주는 것, 이 책이 지닌 또 하나의 미덕이다.

『을의 생존법』은 마라토너 같다. 갑만이 살길이라 말하는 단거리 달리기 같은 책들 속에서, 뚝심 있게 호흡을 고르고 운동화 끈을 고쳐 묶는 그런 책이다. 삶은 곧 마라톤임을 느끼기 시작한 모든 을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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