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은 역사다 - 전선기자 정문태가 기록한 아시아 현대사
정문태 지음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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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격동의 동남아시아 현대사, 학살과 저항, 독립과 분열이 계속 되는 역사를 따라 읽기가 괴롭다. 구체적인 내용을 생략하고 인상적인 부분은,

1) '정치 지도자'는 변한다. 무장 투쟁의 전설적인 지도자들도, 오랜 수감 생활에도 변절하지 않았던 이들도 권력을 잡는 순간 자신의 시야 밖을 보지 못한다.

2) 서구 국가들처럼 직접적으로 동남아시아 문제에 관여하지 않더라도, 한국 역시 이 지역에서의 경제적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다. 그러한 경제적 교류는 지역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확대 되고 있고, 한국의 모델은 이들에게 참조 대상이 된다.


"동티모르를 보자. 1975년 인도네시아 무력합병에 맞선 독립운동 조직들은 저마다 사회주의 이념을 내걸고 무장투쟁에 뛰어들었다. 동티모르 독립 영웅들인 현 총리 샤나나 구스망과 전 대통령 하무스 오르타는 마오를, 전 총리 마리 알카티리는 마르크스-레닌을 가슴에 품었던 자들이다. 그러나 독립 뒤 모두들 투쟁의 발판이었던 사회주의 정치 이념을 버리고 자본을 좇았고 그 결과 12년이 지났지만 동티모르에 남은 건 부정부패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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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 - 한국 사회를 뒤흔든 대자보들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5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 지음, 안녕들 하십니까 출판팀 엮음 / 오월의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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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안녕 못한 시대, 안녕하지 못하다는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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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8
김민하 지음 / 텍스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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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땅에서 혁명가(운동가, 직업 활동가, 진보적 직업 정치인 등 무엇이든 좋다)로 산다는 것은 매우 특이한 괴짜로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되어야함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사회불안을 야기하는 이상한 폭도들'이고, 자신을 반겨주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삶을 내팽개치고 남을 위하는 이상한 영웅들'이다.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그들이 그런 괴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하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미에서든 저런 의미에서든 '괴짜'로 살아가고 있다. (중략) 보통 대단한 운동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텔레비전도 보지 않고 날마다 진지한 책을 읽으며 밤을 지새웠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즉 '혁명가'도 그 수많은 '괴짜'들의 일원일 뿐이다. 괴짜들의 일원이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고, ‘혁명가’가 되는 것도 어떤 대단한 증표를 얻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각성할 기회는 생활 곳곳에 널려 있다. 집 밖으로 한발만 내딛으면 곧바로 정치의 영역이 펼쳐지는 것이다. (중략) 이 책은 바로 그런 수많은 ‘정치적 순간’들이 어떻게 평범한 사람을 레닌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김민하는 어린 시절의 자신이 어떻게 게임 매니아, 음악 매니아, PC통신 매니아로 자랐는지 보여줍니다. 가난한 탓에 친구의 게임기를 빌려서 했던 기억, 한번 산 게임은 돈이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잡았던 기억, 통신은 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서 야간 정액을 신청해 밤을 샜던 기억.. 흥미로운 것은 그가 PC통신을 하면서 나우누리의 허술한 서비스에 분노해 다른 사용자들과 게시판 시위를 벌였던 것이나, DC인사이드 초기의 전설적 사건인 '병욱 대첩'(서울대 학생 게시판 스누라이프에서 과외비는 40만원 이상으로 받자는 글을 올린 서울대생을 털어버린 사건) 등을 자신에게 있어서 어떤 정치 의식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 것은 사실 사이버테러나 이지메에 가까운 일이지만, 참여자들에게 있어서 어떤 '민중적 자력구제의 쾌감'을 주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이 사건이야말로 일종의 '징후'였다. 폐인들이 공유했던 이 사건의 정당성은 그들이 잠시 양심을 망각한 결과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서울대생의 과외비 동결론을 보고 느꼈던 분노는 그것이 정당한지 여부를 떠나서 매우 '민중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인터넷 시대에서 그들은 그 '민중적인' 분노를 매우 '민중적으로' 표현했다. 그들은 '사이버 테러'를 저지르는 내내 자신들의 손으로 부조리를 응징하는 '자력구제의 쾌감'을 공유했던게 분명하다."

 이러한 '사이버 민중주의자'들은 2002년이 되서야 드디어 어떤 성과를 내게 됩니다. 바로 노무현의 당선이죠. 물론 인터넷 여론이 노무현 단일 노선으로 결집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상대 후보였던 이회창이 지배권력층에 대한 민중적인 네거티브 의식과 결합하여 사이버 공간에서 내내 비웃음 당하고 비난당했던 것은 사실이죠.

 그다지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이들에게도 드라마틱한 노무현의 인생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 것은 저에게도 마찬가지였구요. 당시 인터넷 상에서는 '어디선가' 등장한 노무현 지지 논리가 빠르게 확산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제가 활동했던 사이트에서도 갑자기 노무현 지지 글이 올라와 상당히 당황스러웠었는데 - 서태지 팬사이트였음에도 불구하고! - 이렇게 인터넷 여론이 움직인 것은 당시 네티즌들의 '사이버 민중주의'와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능을 친 김민하는 초고속 인터넷 망을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인터넷 세상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그는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다가 스스로 정치에 무관심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게 2001년 말이었고, 막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치열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는 '딴지일보'를 발견하게 되는데, 당시 쌈마이 B급 언론을 표방했던 딴지일보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터넷 매체였고, 상당히 명확한 입장, 그러니까 안티 조선/H당 성향이 강렬했죠. 김민하는 딴지일보를 열독하다가 생소한 이름의 당을 만나게 됩니다. 그게 바로 민주노동당이었구요.

 당시 인터넷 여론이 주로 한나라 vs 민주당 구도로 편성되어, 노무현이냐 아니냐로 시끄럽던 상황에서 민노당은 '다른 스케일'의 정서와 세계관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것은 김민하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죠. (저 역시 그랬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대표적인 논객으로 진중권이 있었습니다. 김민하는 진중권의 글을 보고 흥미를 느끼게 되는데, 당시 진중권이 활동하던 사이트인 '깨끗한 손'(김문옥 지지 사이트였죠.)을 찾아들어가게 되지요. 그리고 여기서 인생이 뒤집히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좌파이론에 대한 수박겉핡기식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주된 교재는 진중권 선생이 인터넷에 쓰는 여러 진지한 글들과 왕년에 운동 좀 했다는 네티즌의 잡스러운 글들이었다. 그것들만으로 이론을 정확하고 섬세하게 공부할 수는 없었지만, 대강의 맥락을 통해 기본적인 계급론 정도는 습득할 수 있었다. 세상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이루어져있고 지금까지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는.. 이 한 문장 가지고도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제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접하면 그건 원래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알고보면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에도 거의 다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나름의 코멘트를 붙이기. 이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었죠. 여기서 김민하의 '각성'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는 푸코, 김규항, 유시민, 촘스키등의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문한 정치와 사회과학 관련 도서"들을 읽어나갔고, 레닌을 만납니다.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필요한 정치적 행동을 제시하고, 직접 행동하는 사람인 레닌은 김민하에게 깊은 감명을 주지요. 김민하는 이른바 운동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운동권으로 거듭난 그에게 02년 대선은 커다란 정치적 경험이 됩니다. 당시 진보정당 내부에서도 노무현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진보정당 후보를 지켜야 한다는 반대 여론 사이에서 커다란 충돌이 있었습니다. 아니, 당원도 아닌 나도 권영길을 지지하는데, 당원이라는 사람들이 노무현을 지지하다니?! 라는 충격에 그는 대선 직후 "내가 입당해서 당을 바꿔야 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 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계속해서 벌어지던 당 내 노선 싸움을 통해 점차 진보정당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굳힌 그는 진보누리가 생길 때 참여하면서, 점차 직업적 운동권의 길로 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활동가가 되기까지 단지 '키보드 배틀'의 과정만 있던 것은 아닙니다. 방학 동안 공장에서 알바를 했던 것도 활동가로서의 의식에 중요한 작용을 했죠. 두 달 동안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실내화를 강매한다거나 회사와 공장 노조가 담합한다거나 시급을 빼먹는다거나 강제 잔업을 시킨다거나 파견을 통해 탈법 행위를 한다거나 하는 일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노동사무소에 찾아갔지만, 사실 근로감독관 역시 공장과 입을 맞춘 상황.. 이러한 현실의 경험들은 그의 '의식화'를 점차 촉진 시키게 됩니다.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어뷰저를 적발하기 위해 다른 게이머들과 논쟁을 벌였던 것도 그에게 깨달음의 과정이었구요. 결국 사건의 진상을 밝히지 못하고, 게임을 떠나면서 그는 "싸움을 하려거든 만반의 준비를 하고 해야한다"는, 혁명가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후 그는 최연소 회원으로 민노당 범좌파 정파였던 '전진'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 회원으로 정당 활동에 가열차게 참여하게 되구요. 그러나 어린 나이와 현장 경험의 부족은 그에게 한계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는 현장 경험을 쌓겠다! 는 생각으로 노조 운동에서도 가장 과격하고 힘들다는 덤프연대 상근자를 자원하게 됩니다.

 덤프 노동자들은 자영업자로 취급되지만, 사실 자영업자가 아닌 특수 고용 노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지만,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고, 그들끼리 경쟁할 수 밖에 없는 구조에서 단합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있죠. 직종 특성 상, 투쟁의 양상도 과격한 물리적 시위로 갈 수 밖에 없구요. 이런 상황을 현장에서 겪으며 김민하는 노조도 중요하지만, 세상을 바꾸려면 결국 '당'과 '정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민노당 강남구위원회 상근자로 옮기게 되구요.

이 때 07년 대선후보 경선이 시작하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경선이 끝나고, 대선이 '패배'로 마무리 되고, 비대위가 실패하면서 분당이 되지요. 경선 국면에서  명망가 위주의 정당, 정파간 갈등, 낡은 사상을 추종하는 특정 조직 등의 문제에 대한 해묵은 상처들이 다시 불거지게 됩니다. 당원들은 당 사수파와 분당파로 나뉘었고, 당내 우파가 득세하며, 경선 이후 조직이 활력을 잃어가면서 김민하가 속했던 '전진' 역시 마찬가지의 내홍을 겪게 되죠. 이러한 당 안팎의 위기 상황에서, 김민하는 아빠가 됩니다.

어느날 갑자기 여자친구가 전한 임신 소식. 둘 다 한창 때인 20대 중후반의 나이에, 활동가로 할 일도 적지 않은 터에, 그리고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상황에서 그 것은 크리티컬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미 6개월. 여자 친구의 의사에 따라, 또 자신의 선택에 따라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그는 가까스로 양가 부모의 허락을 받고, 결국 아빠가 된 후에, 또 돈이 없기 때문에 집을 구하지 못하고 원거리 부부가 되는 상황에 닥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에 불만을 품은 20대'였던 김민하는 여기에 '아이의 미래를 염려하는 아빠'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되지요.

 

이 책은 김민하가 진보신당 상근자로 일하는 모습을 끝으로, 또 공익요원으로 입대를 앞둔 상황에서 마무리가 됩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김민하의 지금 모습은, 희망도 미래도 보이지 않은 상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음악에 미쳐 7년 동안 아마추어 밴드에 몰입하고, 준비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아이를 낳고 결혼하게 되고, 운동권 활동에 매진하여 학교는 뒷전이었고, 게다가 마땅한 돈벌이도 못하고 진보정당 상근자로 쥐꼬리 만한 월급을 받는, 게다가 스물 여덟이라는 나이에 아직 군 복무를 해야하는! 그야말로 '답이 안나오는' 인생. 집안이 빵빵한 것도 아니고, 또 부부 모두 활동가의 길을 걷기로 했으니 경제적 궁핍과 허름한 삶을 떠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 것은 김민하가 '못나서' 그런 것일까요? 20대는 집에 돈 없고 안정된 직장이 없다면 애를 낳아서도, 또 결혼 해서도 안되는 걸까요? 정당에서 일한다는 것은, 정말로 쥐꼬리만한 돈을 받으며 자원봉사하듯 일하는 것이어야 하나요? 20대의 2년이라는 세월을, 우리는 꼭 자유를 잃고 묶여 살아야하는건가요? 젊은이들을 이렇게, 금지와 강요의 삶으로 몰아넣은 것은 과연 누구인가요?

 

아기 아빠가 된 김민하는, 이 것들이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봅니다. 특정한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20대의 잘못도 아니고, 386 세대의 잘못도 아니고, 또 그 이전 세대의 잘못도 아닌, 우리 모두의 잘못이죠. 그리고 이 잘못을 반성하기 위해서, 실천하기 위해서,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김민하는, 그리고 그의 아내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운동과 정치에 대한 신념을 꾸준히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죠.

 

 비관적으로 보이는 상황에서도, 김민하나 그의 아내, 혹은 그 밖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정열적으로 움직이고 있따는 사실, 그것은 남다른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똑같이 힘들고 어려운,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어느날 갑자기 일상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레닌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아직까지 무언가 제대로 '실천'했다고 할 수 없는 저는, 비록 김민하의 생각에 100% 동의할 수 없을지라도 그가 삶 속에서 계속 선택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모종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그냥 감동에서 끝나버리면 안되겠죠. '감동'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자신을 누군가에게 잠깐 동일시했다가, 바로 타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그래도 나는 저렇게 살 수는 없을거야.."라고 중얼거리는 것에 불과하지 않나 싶습니다. 만약 책을 읽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면, 그 것은 책을 읽은 후의 자신이 읽기 전의 모습과 변해있을 때만 유효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민하는 그저 '학삐리'로 살아온 저에게, 두렵더라도 실패하더라도 손가락질 받더라도 네 희망을 보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가 '성공'할지, 아니면 '실패'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보정당에 몸을 던진 것처럼, 저 역시 제가 무엇을 할지 정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그를 제 삶의 한 '선배'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한윤형의 책이 인터넷 정치 담론의 흐름과 현실 정치의 사건들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기록하고 있다면, 김민하의 책은 진보정당의 과거와 현재를 '당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현실 정치에 관심은 있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고 다들 각자 자기 얘기만 하는 것 같다, 싶은 분들은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2) 한윤형과 김민하는 스스로를 '진중권 1세대'라고 부르는데요, 진보누리 같은 사이트는 정말 한 때 진중권을 비롯한 여러 논객들의 집합소였죠. 한윤형과 김민하는 가장 젊은 축에 속했던 것 같네요. 근데 그 때 그 논객들이 지금 뭐하고 있나 찾아보면 많이 씁쓸해지긴 합니다. orz 

3) 이 시리즈를 죽 살펴보면 진보신당 쪽 인사들이 주로 등장하는 것 같은데, 좀 아쉬운 부분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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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비엔나
칼 쇼르스케 지음, 김병화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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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비엔나>에서 다뤄지는 오스트리아 자유주의 세력의 흥망성쇠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부분이 많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19세기 말 빈의 예술문화의 심리적 양식에 반영되는 젊은 세대의 니힐/패배주의/개인화/격정적 낭만주의의 재래/대중적 민족주의 등의 특성이다.

 오스트리아의 부르주아 지식인들은 세계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개인적 감정의 주관적 수양으로 바꾸는 경향을 보였다. 그들은 세계를 행동의 무대가 아니라 감수성에 대한 우연한 자극의 연속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도취적이고 내향적이며, 외부의 실재 세계에 대해서 수동적 태도를 보이며 무엇보다도 정신적 상태에 민감했다.

 자유주의의 몰락이라는 정치적 재앙은 더 나아가 미적 유산들을 민감한 신경의 문화, 불안한 쾌락주의, 직설적 불안감으로 변화시켰다. 부르주아들의 나르시즘적 예술의 전당에서 양심으로 지탱되는 개인적 '프시케'가 현실 세계의 정치적 불안을 은폐하게 된다.

 이러한 낡은 문화의 폐허 속에서 현대의 '심리적 인간'이 등장하는데, 모순과 균열 속에서 태어난 심리적 인간들은 예전처럼 종교적 위안에 몸을 맡길 수도 없었다. 과학자 / 개척자-정복자 / 상인-모험가 라는 현대적 영웅들에 의하여 이미 기존의 종교적 신화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삶의 심리적 불안과 다민족주의적 국가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정치적 균열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들을 위하여 새로운 통합적 신화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통합적 신화의 창조자로서 현대 인간의 파손된 가치를 응집력 있는 미래 이미지로 주조해 나가는 '예술가' / '천재'의 역할이 요구되게 된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그 누구보다 이러한 역할에 부합하는 예술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빈의 문화예술가들은 바그너의 압도적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건축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특히 '바그너주의자'였던 건축가 지테는 역사주의적 건축을 주장하며 자본주의의 빠른 흐름 아래 해체되어가고 있던 전통적 공동체의 회복을 주창했다. 그에게 있어서 '광장'은 시민적 과거의 기억을 일깨우고 전통적 공동체의 가치를 복원하는 공간이었다. 그는 '광장의 문화'가 시민적 공동체를 부활시키고 자유주의 정치 흐름의 모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빈이라는 도시 공간의 '재건축'(광장의 문화)과 경제-주거 양식의 변화(급격한 도시화), 자유주의자들의 정치적 패배가 부르주아적 예술에 대한 '쏠림'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어쩐지 90년대 이후 '대중문화의 부활'이나 '광장의 기억'들과 상당히 닮아있지않은지? 그리고 이들이 결국에는 정치적 '사건'들에서 '미끄러지게' 된다는 것 마저도..

빈의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정신적 결핍에 대한 진단은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라는 훌륭한 지식 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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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 본 '만주국'의 위상 식민주의와 문화 총서 8
오카다 히데키 지음, 최정옥 옮김 / 역락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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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 본 만주국의 위상


 - 문광부 우수 학술 도서 중 하나입니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라는 오카다 히데키 교수가 쓴 책을 번역한 것인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인명을 한국어 독음으로 쓰지 않고 한자로만 표기한 것입니다. 가뜩이나 만주국 문학이라면 익숙하지 않은 차에 山丁, 古丁 등 만주인 작가 이름과 처음 보는 일본인 작가 이름이 나오니 중국어도 일본어도 잘 알지 못하는 저에게 이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좋은 책이고, 번역도 전반적으로 훌륭한 것 같지만 딱 하나 아쉬운 점이네요. 


 어쨌든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보통 만주국과 문학이라는 소재에 대해서는 나츠메 소세키 같은 일본 유수의 문인들이 남긴 만주 기행문에 대한 분석이나, 일제 식민기에 만주 지역에서 작품을 남긴 항일 문인들에 대한 연구들은 익숙한 것이지만, 정작 만주국 체제 내에서 문학 활동을 했던 작가들에 대한 책은 거의 처음 접해본 듯 합니다. 중국에서는 만주국을 僞 만주국이라고 부르면서, 가짜 국가로 취급하기 때문에 만주국의 어용 작가는 물론, 만주국 내에서 체제에 은근히 반대하는 작품을 써낸 작가들까지도 친일 작가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만주국, 만주문학에 대한 연구는 굉장히 단순한 논리 - 제국주의 파쇼 문학으로 몰아 붙이는 - 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구요. 한국에서도 중국 근현대 문학이라 하면 루쉰을 비롯한 '대륙' 작가들이나 대만 작가들, 아니면 근래의 현대 문학을 연구하지 만주국 문학은 아예 '변방'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식민 지배국이자, 가해자 입장에 있었던 일본에서 오히려 이러한 연구서가 나온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있고, 마지막에 흥미로운 부록들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1부는 만주국의 문학에 대해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는데, 특히 재만 일본 작가들의 작품들과 국가적인 문예 정책의 시행 과정, 그리고 이에 대한 중국인 작가들의 반응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름 만주국에 대한 책을 여럿 찾아본 편이라 생각해왔지만 저 스스로에게 아주 민망하게도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특히 재만 일본지식인들 사이에서 따롄 이데올로기와 신징 이데올로기의 대립 과정을 이렇게나 상세히 엿볼 수 있었던 것은 큰 성과였던 것 같습니다. 다롄은 만주국이 성립되기 이전부터 만주 지역에 진출해 있던 일본인들이 정치경제문화적 거점을 두고 있던 도시입니다. 만주 사변이 일어나게 된 계기를 마련한 곳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만주국이 건설되면서 만주 지역의 중심지는 만주국의 수도인 신징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신 국가 건설이라는 정치적 에너지는 신징에서 집중적으로 표출되게 되지요.

 이러한 정치적 상황은 각각 다롄 이데올로기와 신징 이데올로기라는 이념적 차이로 나타납니다. 다롄 이데올로기가 정치적 생기를 잃어버린,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것이라면 신징 이데올로기는 만주국의 건국 이상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려는 맹목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롄 거주 일본인과 신징 거주 일본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이러한 차이는 만주국 내 일본 지식인들에게서도 그대로 전이되는 양상을 보이구요. 이 것은 재만 일본 문인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문학에 있어서 다롄 이데올로기는 순수문학주의의 제창으로, 신징 이데올로기는 실천문학주의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두 입장은 '만주 문학의 독자성'을 둘러싼 논의에서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만주 문학을 일본문학의 연장이나, 하나의 일본 지방 문학으로 보는 것을 거부하고 일본에서 독립한 새로운 독자적 문학으로 창조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독자성' 논의라 할 수 있는데, 다롄, 신징 모두 이러한 '독자성'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에는 동의하고 있지만 이러한 독자성이 어떠한 방식으로 표출되어야 하느냐를 두고 갈등하게 됩니다.

 다롄의 입장에서 독자적인 만주문학이란, 만주에 거주하는 다양한 민족들이 각각 자신의 문학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만주국의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는 문학입니다. 따라서 제민족이 어떤 정치성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생활에서 우러난 문학을 써낼 때야 말로 진정한 '만주문학의 독자성'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신징의 입장에서 독자적 만주문학이란, 일단 만주국의 건국이념을 따르는, 새롭게 건설되는 문학입니다. 이 것은 만주국 건국에 영향을 끼친 정치철학, 그러니까 세기말적 번뇌와 발전의 한계에 부딪힌 근대를 '초극'하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에서 이러한 '근대의 초극' 시도는 결국 전쟁 상황과 맞물려 천황제 파시즘 / 전시 동원 체제로 마무리되는데, 신징 이데올로기 역시 역사적으로 마찬가지의 방향으로 흐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여러 차례 '근대의 초극'과 문학 사이의 관계를 지적한 바 있는데, 그러한 지적에서 우리는 '자본=스테이트'의 시대적 상황을 뛰어넘기 위해 많은 문인들이 '네이션'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살필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광신적 내셔널리즘으로 흐르고, 그 것이 아시아주의와 맞물려 중국인 작가들에게도 강요되었던 것이 만주국 문학의 비극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2부는 만주문학계에서 활동했던 주요작가들에 대한 연구입니다. 대표적 계몽주의자이며, 친일문학가로 악명을떨친 古丁, 향토문학을 제창하고 만주국의 구조적 수탈을 폭로하며 은연 중 항일 정신을 담은 작품들을 써냈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중공 수립 이후 친일 문학자로 몰리게 되었던 山丁, 만주국의 검열에 맞서 다양한 표현 기교로 항일/반제 문학을 써낸 王秋營, 사회주의 항일문학의 요람 하얼빈 문단 등이 다뤄지고 있습니다. 개개 작가들이 한국에 그리 잘 알려진 것이 아니라 영 따라가기 심심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검열에 맞서는 만주 작가들의 표현 기교는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어서 한번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주국 중국인 문학에는 몇 가지 반복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먼저, 중국인 작가들은 작품 속에서 일본인들을 잘 등장시키지 않습니다. 일본인 작가들이 의식적으로 중국인들을 주인공으로, 또 중국인의 생활을 그려내는 것으로 '만주 문학의 독자성'을 이룩하려고 했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데, 작중에 일본인을 등장시키면 인물을 묘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작가의 대 일본 인식을 드러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죠. 중국인 작가들은 일본인들을 등장시키지 않으면서도, 어떤 인물이 일본인임을 암시하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를 사용했다", "근방에서 자주 볼 수 없는 옷을 입고". "금니를 박아넣고 수염을 기른", "그는 외국인처럼 보였다" 등, '외국인=일본인'임을 암시하는 수법이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두번째로, 작품에 유난히 강간 당한 여성, 그리고 이에 대한 복수극의 모티브가 많이 등장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여성=중국'을 연상시켜 자연스럽게 항일 정신을 고취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이 것은 비단 만주국 문학 뿐 아니라 식민지 경험이 있는 국가라면 유사하게 등장하는 모티브라고 생각되는군요. 셋째로, 복수를 끝마친, 또는 어떤 사건으로 몰락해버린 사람들이 작품의 마지막에 어디론가 "떠나는" 장면으로 결말짓는 작품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떠난다'는 것은 체제에 저항하는 비적이 되러 간다는, 혹은 혁명의 길로 떠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더 구체적으로 '서북' 지역으로 떠난다는 표현은, 당시 만주국 서북 지역에 수립된 홍군의 해방구를 암시하던 것이구요. 이러한 구조적 특징 뿐 아니라 연재 작품과 단행본 사이에 개작이 자주 이루어진다는 점도 특기할 만 한데, 이 것은 단행본의 경우 100% 검열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연재본에서는 작가의 진의를 담아낸 표현을 쓰고, 단행본에서는 이러한 표현을 순화시키거나 제거하는 방법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만주국 문학은, 정말로 검열에 맞선 작가들의 진검 승부가 펼쳐졌던 장이였다고 할 수 있겠죠.

 이러한 표현 기법 뿐 아니라, 만주국에 널리 침투된 일본어에 대한 작가들의 대응도 특기할만 합니다. 당시 일상적으로 쓰였던 말이 '협화어'였는데, 이 것은 피진어의 한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섞어서, 또 그 나름의 문법을 만들고 의미를 창출한 언어였는데, 여기에 맞서 순수한 중국어를 사용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킬 것을 주장한 작가도 있을 뿐 아니라, 같은 발음을 가진 협화어 단어를 일부러 사용하여 반일적인 표현을 중의적으로 나타내는 기법을 사용한 작가들도 있었으며, 협화어라는 새로운 언어의 중요성을 의식하고 일종의 언어 실험을 시도한 작가도 있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만주국에 일본어 검정시험과 중국어 검정시험이 국가적으로 실시되고 있었다는 사실인데, 이를테면 관료가 되기 위해서는 일본어 구사가 필수 였고, 일반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워낙 다양한 민족이 많은 만주국 특성상 중국어 검정을 통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중국어 검정시험에 응시한 사람중 많은 수가 식민지 조선인과 식민지 대만이었다는 사실은 동아시아의 슬픈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싶네요..

 

 책의 3부는 일본과 중국이라는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본 '만주국 문학'에 대한 연구입니다. 1942년 부터 3년에 걸쳐 일본제국은 '대동아문학자대회'라는 것을 열게 됩니다. 일본이 대외적으로 내세웠던 대동아주의를 선전하기 위한 문학대회라 할 수 있겠죠. 1,2회는 도쿄에서 열렸고, 3회는 중국 난징에서 열렸스빈다. 이때 일본과 중국쪽 참가자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문학적 언설을 펼쳤다고 하는데, 유독 만주국 참가자들은 굉장히 판에 박힌 말들을, 이를테면 문학을 통한 대동아의 근본 이념의 실현, 필승의 신념으로 문학적 선전에 나서야 한다, 등의 연설을 펼쳤다고 합니다. 굉장히 교과서적인, 개성없는 체제의 모범답안을 내세운 셈이죠. 앞서 잠간 얘기한 친일문학자 古丁이 그 대표적 논자였구요.

 이러한 '모범답안 제출'에 대해 필자는 당시 대동아공영권과 만주국의 관계를 통해 그 해답을 찾습니다. 대동아공영권의 중추국가들은 이른바 '일만화', 곧 일본, 만주국, 중화민국이였습니다. 이미 조선과 대만은 일본에 포함된 것으로 인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찾아볼 수 없죠. 그러나 중화민국은 사실 대륙에서 충칭 국민당 정부, 옌안 공산당 정권과 혼전을 빚고 있었기 때문에, 중화민국 인민들이 '대동아'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일본인 문학자들은 어차피 대동아공영권의 리더인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아시아의 단합을 목적으로 한 '대동아공영'을 선전하기 마땅한 입장이 아니었구요. 자연스레 만주국 대표로 나온 중국인 고정이나, 또 백계 러시아인 만주 문학자 등이 대동아이념을 선전하기 가장 좋은 케이스였다 할 수 있겠죠. 이러한 정치적 이유로 참가하게 된 만주국 문인들은 문학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국책에 맞는 발언을 하기를 요구받았습니다. 이 것은 일본의 정치적 노예로 이용되어야 했던 만주국의 현실이자, 또 그 꼭두각시 역할을 해야했던 중국인 작가들의 현실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할 수 있겠죠.


그러나 대표적인 친일문학자로 악명 높은 古丁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이러한 고민은 우리에게 친일문학자로 각인되어있는 인물들, 예를 들어 춘원 이광수 같은 사람들을 볼 때도 필요한 자세인 것 같구요.

 이 책은 2부에서 古丁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상당한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습니다. 古丁은 베이증대학출신으로, 만주국 관료를 역임하면서 문학 작품을 써낸 작가입니다. 그는 대표적인 만주 중국인 문인으로 일본까지 소개되었을 정도로 뛰어난 작가였습니다. 일본어에도 능통해, 만주국을 방문하는 일본 문화인들과도 두루 교류가 있었으며, 만주국 문화행정에도 깊이 관련하고 있던 인물입니다. 그는 '사인주의'(많이 쓰고 많이 출판하여 문학의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를 내세워, 일본인의 자금을 빌려 출판 작업을 펼치고, 또 만주국의 문화행정에 협력한 친일파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古丁은 젊은 시절 사회주의 문학활동을 펼친 좌파 지식인 출신입니다. 베이징대 학생 시절, 그는 좌익 문학 활동을 벌이다 체포 당했고, 그후 변절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후 古丁은 수년간 은둔하다가, 그의 고향인 만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만주 문단의 황폐함에 놀라게 되죠. 당시 베이징 문단은 5.4 운동 이후 구문학을 축출하고 리얼리즘적인 신문학을 들여온 상태였지만, 문화적 불모지였던 만주에서는 여전히 통속적인 구문학이 번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古丁은 자신의 고향인 만주가 이토록 문화적으로 낙후된 것에 충격을 받고, '사인주의'의 방향으로 자신의 문학 활동을 변경합니다. 古丁의 이러한 활동은 불과 5~6년 만에 만주 문단의 주축을 신문학으로 발전시킬 정도로 왕성했던 것이지요. 그가 만주국에 협력하면서까지 자신의 '사인주의'를 밀고 나갔던 것은, 만주 인민의 계몽을 위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 만주의 상황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국가의 영속성'을 믿을 만큼 순진한 것이 못되었습니다. 古丁은 평생을 살면서 "국가가 세번이나 변하고, 지폐가 다섯 차례나 변한' 어지러운 만주에 있었습니다. 친일 문학 관료로 활동하면서도, 일본인들에게 "나는 일본이 만주국을 번성시키고 강력하게 만드는 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훗날 일본이 이 곳을 떠날 수 밖에 없게 된다면 설사 일본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이 시설 모두를 가지고 돌아갈 수는 없겠지요."라고 속내를 드러낸적도 있었죠. 그를 단지 "친일파"라고 부를 수 밖에 없을까요? 그는 단지 혼란스러운 자신의 고향 만주를 조금이라도 비참함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싶어했던 이는 아니었을까요?

 물론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친일의 꼬리표를 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특히 친일문제가 유난히 감정적으로 다뤄지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문제이구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너무나 쉽게 '친일파'라는 이름을 붙이기 이전에, 개인의 영달을 위하여 체제에 협력한 이와 그 이상의 무언가를 의도했던 이를 구분하여, 그들이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복원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것은 우리가 동아시아 전체의 근현대사를 압축하고 있는 '만주국'이라는 특정 주제를 통하여 고민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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