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비엔나
칼 쇼르스케 지음, 김병화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세기말 비엔나>에서 다뤄지는 오스트리아 자유주의 세력의 흥망성쇠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부분이 많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19세기 말 빈의 예술문화의 심리적 양식에 반영되는 젊은 세대의 니힐/패배주의/개인화/격정적 낭만주의의 재래/대중적 민족주의 등의 특성이다.

 오스트리아의 부르주아 지식인들은 세계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개인적 감정의 주관적 수양으로 바꾸는 경향을 보였다. 그들은 세계를 행동의 무대가 아니라 감수성에 대한 우연한 자극의 연속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도취적이고 내향적이며, 외부의 실재 세계에 대해서 수동적 태도를 보이며 무엇보다도 정신적 상태에 민감했다.

 자유주의의 몰락이라는 정치적 재앙은 더 나아가 미적 유산들을 민감한 신경의 문화, 불안한 쾌락주의, 직설적 불안감으로 변화시켰다. 부르주아들의 나르시즘적 예술의 전당에서 양심으로 지탱되는 개인적 '프시케'가 현실 세계의 정치적 불안을 은폐하게 된다.

 이러한 낡은 문화의 폐허 속에서 현대의 '심리적 인간'이 등장하는데, 모순과 균열 속에서 태어난 심리적 인간들은 예전처럼 종교적 위안에 몸을 맡길 수도 없었다. 과학자 / 개척자-정복자 / 상인-모험가 라는 현대적 영웅들에 의하여 이미 기존의 종교적 신화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삶의 심리적 불안과 다민족주의적 국가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정치적 균열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들을 위하여 새로운 통합적 신화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통합적 신화의 창조자로서 현대 인간의 파손된 가치를 응집력 있는 미래 이미지로 주조해 나가는 '예술가' / '천재'의 역할이 요구되게 된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그 누구보다 이러한 역할에 부합하는 예술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빈의 문화예술가들은 바그너의 압도적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건축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특히 '바그너주의자'였던 건축가 지테는 역사주의적 건축을 주장하며 자본주의의 빠른 흐름 아래 해체되어가고 있던 전통적 공동체의 회복을 주창했다. 그에게 있어서 '광장'은 시민적 과거의 기억을 일깨우고 전통적 공동체의 가치를 복원하는 공간이었다. 그는 '광장의 문화'가 시민적 공동체를 부활시키고 자유주의 정치 흐름의 모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빈이라는 도시 공간의 '재건축'(광장의 문화)과 경제-주거 양식의 변화(급격한 도시화), 자유주의자들의 정치적 패배가 부르주아적 예술에 대한 '쏠림'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어쩐지 90년대 이후 '대중문화의 부활'이나 '광장의 기억'들과 상당히 닮아있지않은지? 그리고 이들이 결국에는 정치적 '사건'들에서 '미끄러지게' 된다는 것 마저도..

빈의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정신적 결핍에 대한 진단은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라는 훌륭한 지식 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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