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서 본 '만주국'의 위상 식민주의와 문화 총서 8
오카다 히데키 지음, 최정옥 옮김 / 역락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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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문학에서 본 만주국의 위상


 - 문광부 우수 학술 도서 중 하나입니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라는 오카다 히데키 교수가 쓴 책을 번역한 것인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인명을 한국어 독음으로 쓰지 않고 한자로만 표기한 것입니다. 가뜩이나 만주국 문학이라면 익숙하지 않은 차에 山丁, 古丁 등 만주인 작가 이름과 처음 보는 일본인 작가 이름이 나오니 중국어도 일본어도 잘 알지 못하는 저에게 이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좋은 책이고, 번역도 전반적으로 훌륭한 것 같지만 딱 하나 아쉬운 점이네요. 


 어쨌든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보통 만주국과 문학이라는 소재에 대해서는 나츠메 소세키 같은 일본 유수의 문인들이 남긴 만주 기행문에 대한 분석이나, 일제 식민기에 만주 지역에서 작품을 남긴 항일 문인들에 대한 연구들은 익숙한 것이지만, 정작 만주국 체제 내에서 문학 활동을 했던 작가들에 대한 책은 거의 처음 접해본 듯 합니다. 중국에서는 만주국을 僞 만주국이라고 부르면서, 가짜 국가로 취급하기 때문에 만주국의 어용 작가는 물론, 만주국 내에서 체제에 은근히 반대하는 작품을 써낸 작가들까지도 친일 작가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만주국, 만주문학에 대한 연구는 굉장히 단순한 논리 - 제국주의 파쇼 문학으로 몰아 붙이는 - 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구요. 한국에서도 중국 근현대 문학이라 하면 루쉰을 비롯한 '대륙' 작가들이나 대만 작가들, 아니면 근래의 현대 문학을 연구하지 만주국 문학은 아예 '변방'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식민 지배국이자, 가해자 입장에 있었던 일본에서 오히려 이러한 연구서가 나온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있고, 마지막에 흥미로운 부록들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1부는 만주국의 문학에 대해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는데, 특히 재만 일본 작가들의 작품들과 국가적인 문예 정책의 시행 과정, 그리고 이에 대한 중국인 작가들의 반응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름 만주국에 대한 책을 여럿 찾아본 편이라 생각해왔지만 저 스스로에게 아주 민망하게도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특히 재만 일본지식인들 사이에서 따롄 이데올로기와 신징 이데올로기의 대립 과정을 이렇게나 상세히 엿볼 수 있었던 것은 큰 성과였던 것 같습니다. 다롄은 만주국이 성립되기 이전부터 만주 지역에 진출해 있던 일본인들이 정치경제문화적 거점을 두고 있던 도시입니다. 만주 사변이 일어나게 된 계기를 마련한 곳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만주국이 건설되면서 만주 지역의 중심지는 만주국의 수도인 신징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신 국가 건설이라는 정치적 에너지는 신징에서 집중적으로 표출되게 되지요.

 이러한 정치적 상황은 각각 다롄 이데올로기와 신징 이데올로기라는 이념적 차이로 나타납니다. 다롄 이데올로기가 정치적 생기를 잃어버린,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것이라면 신징 이데올로기는 만주국의 건국 이상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려는 맹목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롄 거주 일본인과 신징 거주 일본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이러한 차이는 만주국 내 일본 지식인들에게서도 그대로 전이되는 양상을 보이구요. 이 것은 재만 일본 문인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문학에 있어서 다롄 이데올로기는 순수문학주의의 제창으로, 신징 이데올로기는 실천문학주의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두 입장은 '만주 문학의 독자성'을 둘러싼 논의에서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만주 문학을 일본문학의 연장이나, 하나의 일본 지방 문학으로 보는 것을 거부하고 일본에서 독립한 새로운 독자적 문학으로 창조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독자성' 논의라 할 수 있는데, 다롄, 신징 모두 이러한 '독자성'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에는 동의하고 있지만 이러한 독자성이 어떠한 방식으로 표출되어야 하느냐를 두고 갈등하게 됩니다.

 다롄의 입장에서 독자적인 만주문학이란, 만주에 거주하는 다양한 민족들이 각각 자신의 문학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만주국의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는 문학입니다. 따라서 제민족이 어떤 정치성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생활에서 우러난 문학을 써낼 때야 말로 진정한 '만주문학의 독자성'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신징의 입장에서 독자적 만주문학이란, 일단 만주국의 건국이념을 따르는, 새롭게 건설되는 문학입니다. 이 것은 만주국 건국에 영향을 끼친 정치철학, 그러니까 세기말적 번뇌와 발전의 한계에 부딪힌 근대를 '초극'하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에서 이러한 '근대의 초극' 시도는 결국 전쟁 상황과 맞물려 천황제 파시즘 / 전시 동원 체제로 마무리되는데, 신징 이데올로기 역시 역사적으로 마찬가지의 방향으로 흐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여러 차례 '근대의 초극'과 문학 사이의 관계를 지적한 바 있는데, 그러한 지적에서 우리는 '자본=스테이트'의 시대적 상황을 뛰어넘기 위해 많은 문인들이 '네이션'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살필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광신적 내셔널리즘으로 흐르고, 그 것이 아시아주의와 맞물려 중국인 작가들에게도 강요되었던 것이 만주국 문학의 비극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2부는 만주문학계에서 활동했던 주요작가들에 대한 연구입니다. 대표적 계몽주의자이며, 친일문학가로 악명을떨친 古丁, 향토문학을 제창하고 만주국의 구조적 수탈을 폭로하며 은연 중 항일 정신을 담은 작품들을 써냈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중공 수립 이후 친일 문학자로 몰리게 되었던 山丁, 만주국의 검열에 맞서 다양한 표현 기교로 항일/반제 문학을 써낸 王秋營, 사회주의 항일문학의 요람 하얼빈 문단 등이 다뤄지고 있습니다. 개개 작가들이 한국에 그리 잘 알려진 것이 아니라 영 따라가기 심심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검열에 맞서는 만주 작가들의 표현 기교는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어서 한번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주국 중국인 문학에는 몇 가지 반복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먼저, 중국인 작가들은 작품 속에서 일본인들을 잘 등장시키지 않습니다. 일본인 작가들이 의식적으로 중국인들을 주인공으로, 또 중국인의 생활을 그려내는 것으로 '만주 문학의 독자성'을 이룩하려고 했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데, 작중에 일본인을 등장시키면 인물을 묘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작가의 대 일본 인식을 드러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죠. 중국인 작가들은 일본인들을 등장시키지 않으면서도, 어떤 인물이 일본인임을 암시하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를 사용했다", "근방에서 자주 볼 수 없는 옷을 입고". "금니를 박아넣고 수염을 기른", "그는 외국인처럼 보였다" 등, '외국인=일본인'임을 암시하는 수법이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두번째로, 작품에 유난히 강간 당한 여성, 그리고 이에 대한 복수극의 모티브가 많이 등장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여성=중국'을 연상시켜 자연스럽게 항일 정신을 고취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이 것은 비단 만주국 문학 뿐 아니라 식민지 경험이 있는 국가라면 유사하게 등장하는 모티브라고 생각되는군요. 셋째로, 복수를 끝마친, 또는 어떤 사건으로 몰락해버린 사람들이 작품의 마지막에 어디론가 "떠나는" 장면으로 결말짓는 작품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떠난다'는 것은 체제에 저항하는 비적이 되러 간다는, 혹은 혁명의 길로 떠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더 구체적으로 '서북' 지역으로 떠난다는 표현은, 당시 만주국 서북 지역에 수립된 홍군의 해방구를 암시하던 것이구요. 이러한 구조적 특징 뿐 아니라 연재 작품과 단행본 사이에 개작이 자주 이루어진다는 점도 특기할 만 한데, 이 것은 단행본의 경우 100% 검열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연재본에서는 작가의 진의를 담아낸 표현을 쓰고, 단행본에서는 이러한 표현을 순화시키거나 제거하는 방법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만주국 문학은, 정말로 검열에 맞선 작가들의 진검 승부가 펼쳐졌던 장이였다고 할 수 있겠죠.

 이러한 표현 기법 뿐 아니라, 만주국에 널리 침투된 일본어에 대한 작가들의 대응도 특기할만 합니다. 당시 일상적으로 쓰였던 말이 '협화어'였는데, 이 것은 피진어의 한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섞어서, 또 그 나름의 문법을 만들고 의미를 창출한 언어였는데, 여기에 맞서 순수한 중국어를 사용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킬 것을 주장한 작가도 있을 뿐 아니라, 같은 발음을 가진 협화어 단어를 일부러 사용하여 반일적인 표현을 중의적으로 나타내는 기법을 사용한 작가들도 있었으며, 협화어라는 새로운 언어의 중요성을 의식하고 일종의 언어 실험을 시도한 작가도 있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만주국에 일본어 검정시험과 중국어 검정시험이 국가적으로 실시되고 있었다는 사실인데, 이를테면 관료가 되기 위해서는 일본어 구사가 필수 였고, 일반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워낙 다양한 민족이 많은 만주국 특성상 중국어 검정을 통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중국어 검정시험에 응시한 사람중 많은 수가 식민지 조선인과 식민지 대만이었다는 사실은 동아시아의 슬픈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싶네요..

 

 책의 3부는 일본과 중국이라는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본 '만주국 문학'에 대한 연구입니다. 1942년 부터 3년에 걸쳐 일본제국은 '대동아문학자대회'라는 것을 열게 됩니다. 일본이 대외적으로 내세웠던 대동아주의를 선전하기 위한 문학대회라 할 수 있겠죠. 1,2회는 도쿄에서 열렸고, 3회는 중국 난징에서 열렸스빈다. 이때 일본과 중국쪽 참가자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문학적 언설을 펼쳤다고 하는데, 유독 만주국 참가자들은 굉장히 판에 박힌 말들을, 이를테면 문학을 통한 대동아의 근본 이념의 실현, 필승의 신념으로 문학적 선전에 나서야 한다, 등의 연설을 펼쳤다고 합니다. 굉장히 교과서적인, 개성없는 체제의 모범답안을 내세운 셈이죠. 앞서 잠간 얘기한 친일문학자 古丁이 그 대표적 논자였구요.

 이러한 '모범답안 제출'에 대해 필자는 당시 대동아공영권과 만주국의 관계를 통해 그 해답을 찾습니다. 대동아공영권의 중추국가들은 이른바 '일만화', 곧 일본, 만주국, 중화민국이였습니다. 이미 조선과 대만은 일본에 포함된 것으로 인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찾아볼 수 없죠. 그러나 중화민국은 사실 대륙에서 충칭 국민당 정부, 옌안 공산당 정권과 혼전을 빚고 있었기 때문에, 중화민국 인민들이 '대동아'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일본인 문학자들은 어차피 대동아공영권의 리더인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아시아의 단합을 목적으로 한 '대동아공영'을 선전하기 마땅한 입장이 아니었구요. 자연스레 만주국 대표로 나온 중국인 고정이나, 또 백계 러시아인 만주 문학자 등이 대동아이념을 선전하기 가장 좋은 케이스였다 할 수 있겠죠. 이러한 정치적 이유로 참가하게 된 만주국 문인들은 문학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국책에 맞는 발언을 하기를 요구받았습니다. 이 것은 일본의 정치적 노예로 이용되어야 했던 만주국의 현실이자, 또 그 꼭두각시 역할을 해야했던 중국인 작가들의 현실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할 수 있겠죠.


그러나 대표적인 친일문학자로 악명 높은 古丁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이러한 고민은 우리에게 친일문학자로 각인되어있는 인물들, 예를 들어 춘원 이광수 같은 사람들을 볼 때도 필요한 자세인 것 같구요.

 이 책은 2부에서 古丁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상당한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습니다. 古丁은 베이증대학출신으로, 만주국 관료를 역임하면서 문학 작품을 써낸 작가입니다. 그는 대표적인 만주 중국인 문인으로 일본까지 소개되었을 정도로 뛰어난 작가였습니다. 일본어에도 능통해, 만주국을 방문하는 일본 문화인들과도 두루 교류가 있었으며, 만주국 문화행정에도 깊이 관련하고 있던 인물입니다. 그는 '사인주의'(많이 쓰고 많이 출판하여 문학의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를 내세워, 일본인의 자금을 빌려 출판 작업을 펼치고, 또 만주국의 문화행정에 협력한 친일파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古丁은 젊은 시절 사회주의 문학활동을 펼친 좌파 지식인 출신입니다. 베이징대 학생 시절, 그는 좌익 문학 활동을 벌이다 체포 당했고, 그후 변절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후 古丁은 수년간 은둔하다가, 그의 고향인 만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만주 문단의 황폐함에 놀라게 되죠. 당시 베이징 문단은 5.4 운동 이후 구문학을 축출하고 리얼리즘적인 신문학을 들여온 상태였지만, 문화적 불모지였던 만주에서는 여전히 통속적인 구문학이 번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古丁은 자신의 고향인 만주가 이토록 문화적으로 낙후된 것에 충격을 받고, '사인주의'의 방향으로 자신의 문학 활동을 변경합니다. 古丁의 이러한 활동은 불과 5~6년 만에 만주 문단의 주축을 신문학으로 발전시킬 정도로 왕성했던 것이지요. 그가 만주국에 협력하면서까지 자신의 '사인주의'를 밀고 나갔던 것은, 만주 인민의 계몽을 위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 만주의 상황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국가의 영속성'을 믿을 만큼 순진한 것이 못되었습니다. 古丁은 평생을 살면서 "국가가 세번이나 변하고, 지폐가 다섯 차례나 변한' 어지러운 만주에 있었습니다. 친일 문학 관료로 활동하면서도, 일본인들에게 "나는 일본이 만주국을 번성시키고 강력하게 만드는 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훗날 일본이 이 곳을 떠날 수 밖에 없게 된다면 설사 일본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이 시설 모두를 가지고 돌아갈 수는 없겠지요."라고 속내를 드러낸적도 있었죠. 그를 단지 "친일파"라고 부를 수 밖에 없을까요? 그는 단지 혼란스러운 자신의 고향 만주를 조금이라도 비참함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싶어했던 이는 아니었을까요?

 물론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친일의 꼬리표를 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특히 친일문제가 유난히 감정적으로 다뤄지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문제이구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너무나 쉽게 '친일파'라는 이름을 붙이기 이전에, 개인의 영달을 위하여 체제에 협력한 이와 그 이상의 무언가를 의도했던 이를 구분하여, 그들이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복원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것은 우리가 동아시아 전체의 근현대사를 압축하고 있는 '만주국'이라는 특정 주제를 통하여 고민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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