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노래 - 나무는 말하고 그녀는 듣는다
진재운 지음 / 생각의힘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처음에는 나무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펼쳤다.
그런데 읽을수록 이 책은 나무보다 사람을 더 깊이 바라보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나무의 생김새나 숲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데 머무는 책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남기며 살아가는지 묵직하게 묻는 책이었다.
​
진재운 작가는 기자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오랜 시간 자연과 생명,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기록해온 사람이다.
그런 시선으로 만난 한 여인의 삶이 이 책 안에 깊게 담겨 있다.
​
책 속 여인은 나무를 단순한 식물로 보지 않는다.
나무마다 다른 사투리가 있고, 숲에도 저마다의 언어가 있으며, 사람은 그 앞에서 자신이 믿어온 지식과 속도와 소유를 다시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나무가 다른 삶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
사람은 늘 비교하며 산다.
누군가는 더 빨리 가고, 누군가는 더 많이 갖고, 누군가는 더 멋진 이름을 남기는 것처럼 보여 마음이 자주 흔들린다.
​
나도 살아오면서 내 자리와 내 속도를 믿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남들이 정해놓은 안정적인 길과 보기 좋은 삶의 기준 앞에서 내가 잘못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자주 흔들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나무는 자기 자리에서 자기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큰 위로가 되었다.
​
크게 자라는 나무도 있고, 느리게 자라는 나무도 있고, 꽃보다 그늘을 먼저 내어주는 나무도 있다.
그 모든 나무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책 속 여인은 이름 대신 숲을 남기고 싶어 한다.
이 부분에서 오래 멈춰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흔적이 꼭 이름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누군가에게 쉬어갈 그늘을 남기는 일, 누군가가 다시 숨 쉴 수 있는 숲을 남기는 일,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한 믿음을 심어주는 일이야말로 더 오래 남는 삶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책은 빠르게 읽히는 책이 아니었다.
문장 하나를 읽고도 자꾸 멈추게 되는 책이었다.
​
나무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인간의 삶을 말하고, 숲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
특히 죽음과 남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무겁지만 이상하게 따뜻했다.
삶이 끝을 향해 간다는 사실을 두려움으로만 보지 않고, 남은 시간을 더 진하게 살아내는 태도로 바라보게 해주었다.
​
나무는 말이 없지만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곁에 있는 존재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법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속도만 정답이라고 믿지 않는 법을 말하고 있었다.
삶을 소유하려 하기보다 오래 바라보고 돌보는 법을 말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기 자리에서 끝까지 살아내는 일이 얼마나 단단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알려주고 있었다.
​
이 책을 읽고 나니 숲을 걷는 마음이 조금 달라질 것 같았다.
이전에는 나무를 풍경처럼 지나쳤다면, 이제는 나무마다 저마다의 시간이 있고 상처가 있고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한 사람의 삶을 다 알 수 없고, 오래 바라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다시 배웠다.
​
나무의 노래는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좋지만,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고 싶은 사람에게 더 깊게 닿을 책이다.
​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조금 느리게 살아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에게도 잘 맞는 책이다.
​
무엇을 이루었는지보다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오래 남을 책이다.
​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무가 아니라 나를 읽었다.
그리고 내 삶도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내 방식대로 뿌리내려도 괜찮겠다는 조용한 용기를 얻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별들의 무희가 시작되고
정차조 지음 / 지식과감성#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처음 표지를 봤을 때부터 밤하늘 같은 색감에 마음이 먼저 갔다.
푸른빛과 보랏빛이 섞인 표지가 참 예뻤고, 제목에서부터 시적인 느낌이 강하게 전해졌다. 별, 무희, 시작이라는 단어가 함께 있으니 단순한 소설이라기보다 마음속 깊은 곳으로 천천히 들어가는 이야기일 것 같았다.
​
이 책은 우리가 매일 쓰는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사랑, 기도, 돈, 성공, 가족, 희망 같은 단어들이 처음에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태어났다는 설정이 참 인상 깊었다.
말은 처음부터 상처가 아니었고, 사랑은 처음부터 명령이 아니었고, 걱정은 처음부터 통제가 아니었다는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
읽다 보면 내가 평소에 쉽게 쓰던 말들이 떠올랐다.
괜찮다는 말을 하면서 사실은 괜찮지 않았던 순간도 생각났다.
걱정한다는 말로 상대를 위한다 했지만, 사실은 내 기준에 맞추고 싶었던 마음도 떠올랐다.
사랑한다는 말 안에 내 뜻대로 해 주길 바라는 욕심이 숨어 있던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
이 책은 말의 의미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보여준다.
사랑한다는 말은 어느 순간 내 뜻대로 해가 되고, 걱정한다는 말은 너는 틀렸다가 되고, 괜찮다는 말은 울음을 덮는 말이 된다.
돈은 사람 사이를 흐르는 길이 아니라 사람 위에 앉은 왕이 되고, 성공은 자기답게 피어나는 일이 아니라 남보다 높이 올라가는 일이 된다.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단어들이 이렇게 다시 보이니 마음이 꽤 묵직해졌다.
​
좋았던 건 이 책이 어렵게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문장은 차갑지 않았다.
시장 골목, 밥상, 병원 대기실, 장례식장, 회사 회의실, 가족 단체방 같은 현실적인 공간들이 함께 나오면서 이야기가 멀리 떠 있지 않았다.
​
별과 밤의 이미지로 시작하지만 결국 도착하는 곳은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자리였다.
특히 몸에 대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말이 생기기 전에도 몸은 떨릴 수 있고, 발끝은 방향을 가질 수 있고, 손끝은 부름이 될 수 있다는 부분이 좋았다.
말보다 먼저 몸이 말하는 순간들이 있다.
병원 대기실에서 잡는 손, 장례식장에서 말없이 건네는 물, 식탁 앞에 밀어 주는 반찬, 화해하고 싶지만 말이 안 나와 문 앞에 놓는 국그릇 같은 장면들이 떠올랐다.
몸은 오래된 언어라는 말이 그래서 더 깊게 와닿았다.
​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엄마 생각도 났다.
살아 있을 때 더 자주 고맙다고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았던 날들도 생각났다.
말하지 못한 마음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줄 알았는데, 어떤 말은 오래 남아 마음속에서 계속 자리를 찾는다는 걸 다시 느꼈다.
​
이 책은 누군가에게 화려한 위로를 건네는 책은 아니다.
대신 오늘 하나의 말을 다르게 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오늘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고, 오늘 고맙다고 말할 수 있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단한 변화가 아니어도 말 하나가 달라지면 관계의 방향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남긴다.
​
문장들이 시처럼 흘러서 천천히 읽기 좋았다.
​
줄거리만 빠르게 따라가는 책이라기보다는 문장 하나하나를 붙잡고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이 많았고, 책장을 덮은 뒤에도 내가 오늘 쓴 말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동안보다 읽고 난 뒤에 더 오래 남는 책이었다.
​
좋은 말을 잃어버렸지만 아직 다시 말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닿았으면 좋겠다.
​
사랑한다는 말이 어려워진 사람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이 늦어버린 사람에게도,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이 책은 조용히 말을 건넨다.
​
우리가 잃어버린 단어들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시 좋은 방향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이다.
​
『별들의 무희가 시작되고』는 말에 관한 소설이지만 결국 사람에 관한 소설이다.
우리가 쓰는 말이 누군가를 살리는 쪽으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작게 만드는 쪽으로 가고 있는지 묻는 책이다.
​
읽고 나니 오늘 내가 하는 말 하나를 조금 더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고르고 싶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고요의 옷장 ㅣ 북다 청소년 문학 4
박사랑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표지부터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푸른빛이 도는 옷장과 연꽃, 반짝이는 조각들이 어딘가 비밀스럽고도 다정하게 느껴졌다.
제목은 조용했지만 표지는 이상하게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책을 펼치기 전부터 이 옷장 안에는 누군가 말하지 못한 마음이 숨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고요의 옷장』은 나로 살기 어렵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을 아주 신선한 방식으로 풀어낸 장편소설이다.
주인공 유진은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온전히 편하지 못한 아이처럼 보였다.
친구 관계도 어렵고, 엄마의 기대와 말도 버겁고, 자기 마음을 설명하는 일조차 쉽지 않은 아이였다.
그런 유진 앞에 나타난 옷장은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잠시 세상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문처럼 느껴졌다.
​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나 대신 살아주는 나”라는 설정이었다.
하얀 니트를 입으면 또 다른 내가 밖으로 나가 하루를 대신 살아주고, 진짜 나는 옷장 안에 머물 수 있다는 설정이 처음엔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읽을수록 이건 판타지가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만 사라지고 싶을 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으면 할 때, 해야 할 일도 만나야 할 사람도 전부 버거울 때, 누군가 내 자리에 대신 서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
유진이 옷장 안에 숨는 장면은 편안하면서도 슬펐다.
그 안은 안전하고 조용하다.
배고픔도 없고, 갈등도 없고, 실수도 없다. 하지만 그곳에는 진짜 삶도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편안한 일이면서 동시에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는 걸 이 책은 조용히 보여준다.
내가 피한다고 해서 내 하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누군가 대신 살아준다고 해서 내 마음까지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묵직하게 남았다.
​
주연이라는 인물도 좋았다.
유진이 교실에서 주연의 등을 보고 안도하는 장면은 작지만 오래 남았다.
누군가 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숨이 쉬어지는 관계가 있다.
꼭 대단한 말이나 거창한 위로가 아니어도, 같은 공간에 있어주는 사람 하나가 아이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느껴졌다. 그래서 이 책은 판타지 성장소설이지만 결국 사람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엄마와 유진의 관계도 마음에 남았다.
엄마는 유진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늘 편안하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아이는 엄마의 기대와 말 속에서 자꾸 작아지고, 괜찮은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오래 흔들린다.
읽으면서 아이의 마음도, 엄마의 마음도 동시에 보여서 더 아팠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아이가 말하지 못하고 삼키는 마음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됐다.
​
이 책은 청소년소설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충분히 깊게 다가온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비교 속에서 작아지고, 내 자리를 잃은 것 같은 날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유진의 옷장은 아이만의 공간이 아니라 어른의 마음속에도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
좋았던 점은 이야기가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힌다는 점이다.
설정은 특별하지만 문장은 편하고, 감정은 과하지 않게 쌓인다. 그래서 읽는 동안 유진의 마음을 따라가기가 어렵지 않았다.
표지는 예쁘고 몽환적인데, 안쪽 이야기는 생각보다 현실적이고 아프다.
그 균형이 좋았다.
​
『고요의 옷장』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그 마음을 오래 바라본다.
숨고 싶은 마음도 나의 일부이고, 약한 마음도 내가 안아야 할 마음이라는 것을 천천히 알려준다.
결국 이 책이 건네는 위로는 단순히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다시 나로 살아가도 된다는 다정한 허락처럼 느껴졌다.
​
책을 덮고 나니 나도 내 안의 옷장을 생각하게 됐다.
힘들 때마다 숨고 싶었던 마음,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쳤던 마음, 누군가 알아줬으면 했던 마음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 책은 청소년에게도 좋지만, 어릴 적의 나를 아직 마음속에 데리고 사는 어른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독서에 전부를 걸어보세요 -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는 유일한 길
박가을 지음, 김윤지 그림 / 체인지업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글자를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책은 잠깐의 위로가 되고, 어떤 책은 오래 묻어둔 마음을 조용히 꺼내 보게 만든다.
그리고 가끔은 한 권의 책이 지금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알려주는 작은 거울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꽤 오래 남는 독서 에세이였다.
​
제목처럼 독서에 전부를 걸어보라는 말이 처음에는 조금 크게 느껴졌지만, 읽다 보니 그것은 무조건 많은 책을 읽으라는 뜻이 아니었다.
​
한 권의 책에서 내 삶에 옮길 수 있는 한 가지를 찾고, 그것을 오늘의 행동으로 이어가 보자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 추천을 넘어, 책을 읽는 이유와 책을 읽은 뒤의 삶을 함께 생각하게 만드는 인생 에세이로 다가왔다.
​
작가의 이야기가 더 깊게 와닿았던 건 건강을 잃었던 시간과 책을 통해 다시 일어선 경험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몸이 무너지는 시간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고, 책 속 문장 하나를 붙잡으며 하루를 견뎌냈다는 이야기가 쉽게 지나가지 않았다.
​
나도 최근에 입원해서 몸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마음까지 지쳐가던 순간에도 내 곁에는 책이 있었다.
책이 통증을 없애주지는 못했지만, 그 시간을 혼자 버티고 있다는 느낌을 조금 덜어주었다.
그래서 작가가 책을 통해 자신을 다시 세웠다는 말이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
나 역시 오랜 시간 병원에서 일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였고, 시간이 지나며 책임자 자리까지 갔다.
그만큼 열심히 살았고, 버티며 쌓아온 시간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일을 잘 해내는 사람으로만 남아 있었고, 정작 나 자신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남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왜 그만두었냐고, 아깝지 않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퇴사하고 나서야 오히려 숨이 쉬어졌다.
그제야 내가 나로 돌아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퇴사 후 매일 책을 읽게 된 내 모습은 나도 신기했다.
예전에는 책을 읽는 시간이 따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책을 읽는 시간이 나를 돌보는 시간이 되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복잡했던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으며 내 상황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고, 내가 지나온 시간도 조금은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책은 나에게 대단한 정답을 주기보다,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도록 붙잡아 주었다.
​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읽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책을 읽고 감동했다는 말에서 멈추지 않고, 그 안에서 한 가지 행동을 꺼내 내 삶에 적용해보자는 제안이 현실적이었다.
원북 원액션이라는 말처럼, 한 권의 책에서 하나의 행동만 건져 올려도 삶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었다.
​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말해서 더 좋았다.
감사한 일을 떠올리기, 나를 몰아붙이지 않기, 마음에 남은 문장을 생활 속에서 다시 떠올리기 같은 것들이 결국 나를 바꾸는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책을 많이 읽어도 삶이 그대로인 것 같아 허무했던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책을 읽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도 좋을 책이다.
​
무너진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
다시 나를 찾고 싶은 사람,
읽은 문장을 삶으로 옮기고 싶은 사람에게 조용히 건네고 싶은 에세이 추천 도서다.
​
나에게 이 책은 독서가 취미를 넘어 삶의 방향이 될 수 있다는 걸 다시 알려준 책이었다.
책은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지만, 내가 나를 잃지 않도록 곁에서 조용히 붙잡아 줄 수는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니 앞으로는 좋은 문장을 기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문장을 내 하루에 하나씩 옮겨보고 싶어졌다.
​
결국 독서는 책장 안에 머무는 일이 아니라, 내 삶으로 걸어 들어오는 일이라는 것을 이 책이 따뜻하게 알려주었다.

#박가을 #에세이 #독서기록 #신간추천 #체인지업북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고 있는가
김태현 지음 / 프로방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사랑에 관한 책이라고 하면 조금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까 걱정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설명하려고 하면 참 복잡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관계에서는 설렘보다 익숙함이 앞서고, 사랑이라는 말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데 책을 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걱정이 사라졌다.
어려운 이론으로 사랑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었다.
부모와 자식, 연인과 부부,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관계 속에서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고 표현해야 하는지를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
읽는 내내 사랑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마음을 여러 번 돌아보게 됐다.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주고받는 말 한마디와 작은 행동에서 드러난다는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남았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편하다는 이유로 말을 쉽게 하기도 하고, 잘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부족한 점은 누구보다 빠르게 발견하기도 한다.
​
책을 읽다가 남편 생각이 나면서 뜨끔한 순간도 있었다.
나는 남편의 악필을 볼 때마다 왜 이렇게 글씨를 못 쓰느냐며 웃고 놀리곤 했다. 장난이라고 생각했고 오래 함께 산 부부니까 이 정도 말은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문득 나는 남편의 좋은 점을 발견했을 때도 그만큼 쉽게 입 밖으로 칭찬했나 생각하게 됐다.
​
생각해보니 단점은 참 빨리 보면서 장점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잘해주는 일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 생각했고, 부족한 부분은 눈에 띌 때마다 이야기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단점을 모른 척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부족함까지 그 사람의 일부라고 인정하면서 좋은 점 역시 당연하게 넘기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를 내 기준에 맞는 사람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와 다른 부분이 있을 때마다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서로가 지치게 된다.
오랜 관계일수록 사랑은 상대를 고치는 일이 아니라 다름을 이해하고 적당한 거리를 지키면서도 곁을 내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서는 마음을 조금 비워보기로 했다.
남편의 부족한 점 하나를 찾기 전에 내가 좋아했던 장점 하나를 먼저 떠올려보려고 한다. 잘못한 것을 지적하는 말보다 잘하고 있는 것을 알아주는 말을 한 번 더 해보려고 한다.
아주 사소한 변화일 수 있지만 이런 작은 말들이 모여 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되고 결국 부부의 시간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
부모를 향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오래 남았다.
늘 강할 것만 같았던 부모가 약해지고 아픈 모습을 마주하고서야 미처 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을 떠올리는 마음은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 같다.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다음으로 미뤄둔 표현들이 언젠가는 후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해서 그 마음이 저절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고맙다는 말도 해야 알 수 있고, 걱정하는 마음도 표현해야 전해진다.
너무 가까워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오히려 더 자주 표현해야 하는 이유다.
​
이 책은 완벽한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랑에는 실망도 있고 상처도 있으며 때로는 후회도 따른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시 사랑을 선택하고, 상대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 자신 역시 지나치게 몰아붙이지 않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이 부분이 좋았다.
사랑을 잘한다는 것이 무조건 참고 희생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에게 모든 것을 맞추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나 자신까지 잃어버린다면 그 관계 역시 오래 건강하게 이어가기 어렵다.
상대를 돌보는 만큼 나를 돌보고, 상대의 다름을 존중하는 만큼 내 마음도 존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
특히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무 잘하려고 애쓰다가 오히려 지칠 때가 있다는 부분에도 공감했다.
좋은 아내, 좋은 남편, 좋은 자식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낼 필요는 없다.
사랑은 완벽함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부족한 채로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책을 덮으며 제목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후회 없이 사랑한다는 것이 매 순간 완벽하게 사랑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화를 내지 않고, 실수하지 않고, 한 번도 상처를 주지 않는 관계는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오히려 후회 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표현을 너무 오래 미루지 않는 일에 가깝다고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의 단점을 고치려고 애쓰기 전에 좋은 점을 한 번 더 바라보는 것, 고맙다고 생각했다면 고맙다고 말하는 것, 마음이 멀어지기 전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처럼 작은 행동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
처음에는 사랑에 대한 어려운 이야기를 만나게 될까 걱정했지만 읽고 나니 오히려 내 일상을 가장 많이 돌아보게 한 책이었다.
사랑을 새롭게 배우기보다 그동안 너무 익숙해져 잊고 있던 사랑의 태도를 다시 꺼내준 느낌이었다.
​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상대의 장점보다 단점을 먼저 찾고 있지는 않은지,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가 내 마음대로 달라지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됐다.
​
나부터 조금 달라져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남편의 악필을 보고 또 웃게 되는 날에도 그보다 먼저 내가 좋아하는 남편의 장점을 하나 떠올려보고 싶다.
사랑은 어쩌면 이렇게 사소한 순간마다 어떤 마음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나 자신도 함부로 소모하지 않으면서 오늘 할 수 있는 사랑을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읽고 새롭게 생각하게 된 후회 없이 사랑하는 방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