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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방에 내가 없다
권지연 외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엄마가 된 뒤로 가방은 늘 무거웠다.
아이 옷, 물티슈, 간식, 약, 장난감, 혹시 몰라 챙긴 여벌옷까지.
작은 외출 하나에도 가방은 금방 가득 찼고, 정작 내 물건은 가장 마지막에 밀려났다.
이 책을 읽으며 그때의 내 가방을 떠올렸다.
그 안에는 아이를 위한 물건이 가득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없었다.
지금도 워킹맘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는 더 그랬다.
하루의 중심은 늘 아이였고, 가족이었고, 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쉬고 싶은 시간, 내가 좋아하는 작은 취향은 자꾸 뒤로 밀렸다. 엄마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아내니까 괜찮다고 넘겼고, 바쁘니까 나중에 하자고 미뤘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내 삶의 가방 밖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책 속에서 가방이라는 물건은 단순한 소지품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한 사람이 짊어지고 살아온 역할과 책임이 담겨 있었다.
엄마라는 이름, 아내라는 자리, 딸이라는 마음, 직장인이라는 무게가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 모든 것을 들고 다니는 나는 보이지 않았다.
이 설정이 씁쓸하면서도 너무 공감되었다.
제목 하나만으로도 마음 한쪽이 쿡 찔리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다 말고 내가 지금 들고 다니는 가방을 떠올렸다.
그리고 문득 울컥했다.
내 가방은 남편과 함께 먹을 점심 도시락 가방이었다.
나를 위한 가방이라기보다, 또 누군가를 챙기기 위한 가방이었다.
그 사실이 싫다기보다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다. 나는 아직도 나를 찾는 중인데, 여전히 내 손에는 누군가의 하루를 챙기는 가방이 들려 있었다.
이 책에는 여러 엄마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자의 삶은 다르지만, 그 안에 흐르는 마음은 비슷했다.
아이를 챙기느라 나를 잊었던 시간, 가족을 먼저 생각하느라 내 감정을 미뤘던 시간, 괜찮은 척하면서도 사실은 무척 외로웠던 마음들이 있었다.
그 글들은 나를 다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옆에 앉아 나도 그랬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읽는 동안 많이 위로받았다.
누군가 내 마음을 대신 꺼내 정리해준 느낌이었다.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겨둔 나의 서운함, 피곤함, 미안함, 공허함이 글 속에서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누군가의 고백은 때로 조언보다 더 큰 위로가 된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도 많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참 바쁘고 서툴렀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었고, 좋은 엄마이고 싶었고, 가족을 흔들림 없이 챙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커질수록 나는 점점 뒤로 밀렸다.
아이의 하루를 먼저 챙기고, 가족의 일정을 우선하고, 나의 마음은 늘 나중으로 보내버렸다.
돌아보면 그 시간의 나는 참 애썼고, 동시에 많이 외로웠다.
이 책이 좋았던 건 엄마의 희생을 아름답게만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엄마니까 괜찮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엄마도 자기 마음을 들여다봐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책이었다.
가족을 사랑하는 일과 나를 잃지 않는 일은 함께 갈 수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나를 찾는다는 것이 거창한 변화만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 일, 짧은 글로 오늘의 마음을 남기는 일,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는 일, 지금의 내 감정을 모른 척하지 않는 일.
그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다시 나를 내 가방 안에 넣어주는 것 같았다.
책을 덮고 나니 내 가방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보다, 그 안에 내가 있는지 묻고 싶어졌다.
나는 여전히 엄마이고, 아내이고, 일하는 사람이지만 그 이름들만으로 다 설명될 수 없는 사람이다.
나에게도 좋아하는 것, 바라는 것, 쉬고 싶은 마음, 다시 시작하고 싶은 시간이 있다.
이 책은 가족을 챙기느라 자신을 자주 잊고 살았던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특히 엄마라는 이름으로 오래 버텨온 사람이라면 분명 여러 번 멈춰 읽게 될 것이다. 나를 잃었다고 느낀 순간에도, 사실 우리는 다시 나를 찾아갈 수 있다.
이 책은 그 길 위에서 조용히 등을 토닥여주는 따뜻한 기록이었다.